고통과 무료함 사이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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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무료함 사이
해 질 녘, 산 그림자가 길게 내려와 마루를 덮고 있었다. 바람은 잦아들었고, 시간은 잠시 멈춘 듯 고요했다. 달삼은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다가 입을 열었다.
“스승님, 사람의 삶이 왜 이렇게 흔들리는지 알 것 같으면서도 알 수가 없습니다.”
스승은 아무 대답 없이 찻잔에 물을 따랐다. 물이 찻잔에 닿으며 낮은 소리를 냈다.
“어떻게 흔들린다는 것이냐.”
“힘들 때는 너무 괴롭고, 아무 일 없을 때는 또 견딜 수 없이 지루합니다. 편한 순간이 오래 가지 않습니다.”
스승은 찻잔을 달삼 앞에 놓으며 물었다.
“지금은 어떠냐.”
달삼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금은… 고요합니다.”
“그 고요함이 오래 가겠느냐.”
달삼은 고개를 저었다.
“아마도 아닐 것입니다.”
스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인간의 삶은 늘 두 곳을 오간다. 고통과 지루함 사이를.”
달삼이 조용히 되물었다.
“왜 그렇습니까.”
스승은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녁빛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고통은 무엇에서 오느냐.”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입니다.”
“지루함은.”
“더 이상 원하는 것이 없을 때입니다.”
스승은 그 말이 끝나기를 기다린 듯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인간은 늘 두 곳을 오간다. 가지지 못하면 괴롭고, 가지면 금세 싫증이 난다.”
달삼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럼 우리는 끝없이 괴롭거나 지루할 수밖에 없는 겁니까.”
스승은 손에 들고 있던 낙엽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렇게 묻는 순간, 이미 한쪽에 서 있는 것이다.”
“한쪽이라니요.”
“고통을 피하려 하고, 지루함을 벗어나려 하는 마음.”
달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스승은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고통이 오면 너는 어떻게 하느냐.”
“피하려 합니다.”
“지루함이 오면.”
“다른 것을 찾습니다.”
스승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더 흔들린다.”
바람이 다시 한 번 지나갔다. 어둠이 조금 더 가까워졌다.
“고통은 밀어낼수록 깊어지고, 지루함은 채우려 할수록 커진다.”
달삼이 낮게 말했다.
“그럼 받아들여야 합니까.”
“받아들인다는 말도 정확하지 않다.”
스승의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다.
“그저 바라보아라.”
“바라본다는 것은…”
“고통이 오면, 그것이 무엇인지 보아라. 지루함이 오면, 그것이 왜 생겼는지 보아라.”
달삼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하면 달라집니까.”
“달라진다.”
짧은 대답이었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너는 흔들리는 쪽이 아니라, 흔들림을 보는 쪽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달삼의 얼굴에 미묘한 변화가 스쳤다.
“고통도, 지루함도…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스승은 마루 끝을 바라보았다.
“삶은 고통과 지루함 사이를 오가는 움직임이다. 그러나 그 움직임을 따라다니는 자는 늘 흔들리고, 그 움직임을 바라보는 자는 그 가운데서도 서 있을 수 있다.”
달삼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았다.
“스승님.”
“말해라.”
“지금 이 고요함도… 언젠가 지루함이 될까요.”
스승은 잠시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
달삼의 얼굴에 잠깐 당혹이 스쳤다.
“그럼 지금도 불완전한 것 아닙니까.”
스승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왜입니까.”
“지금은 지금이기 때문이다.”
달삼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벌레 소리, 멀리서 스치는 바람, 손끝에 닿는 공기의 온기. 아무것도 특별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은 비어 있지 않았다. 스승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삶은 흔들린다. 그러나 그 흔들림을 그대로 두는 순간, 그 안에서도 중심은 생긴다.”
달삼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으로, 고통도 지루함도 아닌 자리에서 안온히 앉아 있을 수 있었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