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하루를 일 년으로 접는 사람 ― 서종환 상임고문의 《하루를 이렇게 산다》를 읽고 ㅡ 청람 김왕식

하루를 일 년으로 접는 사람 ― 서종환 상임고문의 《하루를 이렇게 산다》를 읽고 ㅡ 청람 김왕식

[하루를 이렇게 산다]

상임고문 서 종 환

나는 머지않아 코리안드림이 실현되는 한반도 자유통일과 북방경제권이 닥아오는 국제 정세와 당면한 현실을 실감하면서 하루빨리 통일의 그날이 오도록 하는 염원을 실천하는 하루를 이렇게 산다.

하루를 일년같이 산다.

일년은 12달이고 24절기로 구성되고 하루는 24시간이다.

이제 하루 24시간을 4계절로 산다.

한밤 12시부터 새벽 6시까지는 겨울철로,

아침 6시부터 낮 12시 까지는 봄철로,

한낮 12시부터 저녁 6시까지는 여름철로,

그리고 저녁 6시부터 한밤 12시까지는 가을철로 산다.

어느날은 겨울이 저녁 10시부터 시작되여 새벽 4시에 봄철을 맞기도 하고

때로는 아침 7시에 봄이 시작되기도 하고

한낮 1시에 여름철이 오면 가을은 저녁 7시에 시작되기도 한다.

통일의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통일 농사에 알맞게 봄철로 부터 24절기를 시작하여 하루를 산다.

봄철(아침 6시ㅡ 낮 12시)에는 아침 6시에 봄 소식을 알리는 2월 입춘이 시작되여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그리고 곡우까지 세달 6절기가 지나야 한낮 12시가 되어 여름철로 접어든다.

여름철(낮 12시ㅡ 저녁6시)은 낮 12시가 되어 5월 입하로 시작하여 소만, 망종, 하지, 소서, 그리고 대서를 지나서 가을철이 온다.

가을철(저녁 6시ㅡ 밤12시)은 저녁 6시에 8월 입추가 와서 처서, 백로, 추분, 한로에 이어 상강을 지나 겨울철로 접어든다.

겨울철(밤 12시ㅡ 새벽 6시)은

한밤 12시에 11월 입동을 시작으로 소설, 대설, 동지, 소한과 대한 절기을 지나야

또 다른 새해를 맞는다.

이렇게 하루를 일년같이 산다.

왜 이렇게 하루를 사는가 ?

십 수년 동안 [통일을실천하는사람들]을 출범하여 살아온 세월이 만추의 수확으로 이어져 어느날 갑자기 도래할 통일의 그날을 앞당기기 위하여

아무리 (위)기가 와도 (하)늘이 두쪽이 나더라도 우리가 (여)러분과 함께하고 있음에 무한 감사하고 고마움을 표현하는 마음을 담아 우리함께 [위하여]를 합창하고자 함입니다.

ㅡ 서종환

하루를 일 년으로 접는 사람

― 서종환 상임고문의 《하루를 이렇게 산다》를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사람은 대개 시간을 시계로 잰다.

몇 시에 일어나고, 몇 시에 밥을 먹고, 몇 시에 잠드는지를 기록하며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시간을 시계로 재지 않는다. 계절로 재고, 사명으로 재고, 기다림으로 잰다.

서종환 상임고문의 《하루를 이렇게 산다》를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시계가 아니라 농부의 손이었다.

농부는 시계를 믿지 않는다.

봄을 보고 씨를 뿌리고, 바람을 보고 논에 물을 대며, 하늘을 보고 수확을 준비한다.

그에게 시간은 숫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이다.

서종환 고문의 글도 그렇다.

그는 하루를 24시간으로 보지 않는다.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로 나누어 바라본다.

그 안에 다시 24절기를 심어 놓는다.

언뜻 보면 단순한 시간 관리법처럼 보인다.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이것은 일정표가 아니다.

한 사람의 인생철학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기다림의 철학이다.

우리는 흔히 통일을 정치의 언어로 말한다.

경제적 효과를 이야기하고, 외교적 전략을 논하며, 국제정세를 분석한다.

서종환 고문은 그것을 농사의 언어로 말한다.

봄이 오면 씨를 뿌리고,

여름이 오면 가꾸고,

가을이 오면 거두고,

겨울이 오면 다음 봄을 준비하는 일.

그에게 통일은 사건이 아니라 계절이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선물이 아니라 오랜 시간 땅속에서 자라나는 씨앗이다.

하여, 그의 글에는 조급함이 없다.

외려 놀라울 정도로 긴 호흡이 있다.

오늘 하루를 일 년으로 살아가는 사람.

이 표현 속에는 시간을 늘리는 비밀이 숨어 있다.

사람들은 대개 하루를 하루로 소비한다.

그는 하루를 한 해처럼 경작한다.

봄의 희망을 품고,

여름의 열정을 태우고,

가을의 성찰을 거치고,

겨울의 인내를 견디며 살아간다.

하여, 하루는 단순한 하루가 아니라 한 편의 생애가 된다.

글을 읽으며 불현듯 조선시대 선비들의 일기를 떠올렸다.

그들은 작은 화분 하나를 기르면서도 천하를 생각했고, 창밖의 달을 보면서도 세상의 이치를 헤아렸다.

서종환 고문의 글에도 그런 시선이 있다.

개인의 일상 속에 민족의 미래를 담고,

하루의 시간 속에 한반도의 내일을 담고 있다.

그의 글은 계획표가 아니라 기도문처럼 읽힌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마지막 부분이다.

“아무리 (위)기가 와도

(하)늘이 두쪽이 나더라도

우리가 (여)러분과 함께하고 있음에…”

‘위하여’라는 노래 제목을 풀어낸 방식은 단순한 언어유희를 넘어선다.

위기와 하늘과 여러분.

세 단어를 엮어 하나의 노래로 만들고, 하나의 다짐으로 만든다.

그 안에는 함께 가겠다는 의지가 있다.

혼자가 아니라는 약속이 있다.

통일이라는 거대한 이상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이 함께 걸어가는 길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며 서종환 고문이 시간을 바라보는 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을 잃어버린다.

그는 시간을 심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를 견딘다.

그러나

그는 하루를 경작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일을 기다린다.

그는 내일이 올 수 있도록 오늘을 준비한다.

어쩌면 이 글의 진짜 주제는 통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통일을 기다리는 한 인간의 자세인지도 모른다.

씨앗을 심고도 조급해하지 않는 농부의 마음.

겨울을 지나도 봄을 의심하지 않는 나무의 마음.

비록 눈앞에 보이지 않더라도 끝내 올 것을 믿는 사람의 마음.

그 마음이 글 전체를 흐르고 있다.

좋은 글은 정보를 남기지 않는다.

태도를 남긴다.

서종환 고문의 《하루를 이렇게 산다》가 남기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하루를 살아도 계절처럼 살라는 것.

오늘을 살아도 미래를 품고 살라는 것.

무엇보다,

끝내 올 봄을 믿으며 살라는 것이다.

그의 하루는 시계 속에서 흐르지 않는다.

한반도의 들판을 지나고,

24절기의 바람을 지나고,

통일이라는 먼 지평선을 향해 천천히 흘러간다.

그가 말하는 하루는 하루가 아니다.

희망이라는 이름의 한 해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