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과 유머로 전장을 건넌 사람 ― 서종환 선생의 대학 생활과 군대생활을 중심으로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서종환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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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과 유머로 전장을 건넌 사람
― 서종환 선생의 대학ㆍ군대 생활을 중심으로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Ⅰ. 들어가는 말
인간의 삶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지식이라 말하고, 어떤 사람은 노력이라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운명이라 말한다.
서종환 선생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그 모든 것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믿음의 힘이다.
그 믿음은 단순한 낙관이 아니다. 막연히 잘될 것이라는 가벼운 기대도 아니다. 전쟁의 바다를 건너면서도 살아 돌아올 수 있다는 생의 의지이며, 가난하고 불편한 시골방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이며, 사랑하는 사람과의 미래를 놓치지 않으려는 뜨거운 결심이다.
서종환 선생의 삶에는 한국 현대사의 거친 파도가 고스란히 밀려와 있다. 월남 파병, 전쟁의 긴장, 젊은 병사의 불안, 귀국 후의 고시 공부, 행정고시 합격, 공직 생활, 문화공동체에 대한 애정까지 그의 생애는 한 개인의 이력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전후 한국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흔들리고, 버티고, 다시 일어섰는가를 보여주는 한 사람의 살아 있는 기록이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그가 자신의 고난을 지나치게 비장하게 말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는 전쟁을 이야기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죽음의 공포를 말하면서도 인간적인 해학을 곁들인다. 젊은 병사가 살아 돌아오기 위해 부적처럼 품었던 사연조차 그는 부끄러움으로 감추지 않고 삶의 한 장면으로 풀어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서종환 선생의 삶은 독특한 빛을 얻는다.
비극을 비극으로만 남겨두지 않는 사람.
두려움을 웃음으로 건너는 사람.
운명을 원망하기보다 자기 신념으로 다시 엮어내는 사람.
그의 생애적 가치철학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삶은 완벽한 조건 속에서 빛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현실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려는 마음에서 빛난다. 파도는 배를 흔들지만, 배 안의 사람을 반드시 침몰시키지는 못한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흔들리면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다.
서종환 선생의 믿음은 종교적 신앙과 인간적 신념, 그리고 자기암시의 힘이 서로 맞물린 형태를 띤다. 그는 성경의 말씀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붙들고, 바라는 것을 현실로 끌어당기려 했다. 그래서 그의 삶은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라 믿음이 어떻게 한 사람의 태도를 바꾸고, 태도가 어떻게 운명을 움직이는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또한 그의 삶에는 유머가 있다. 유머는 가벼운 농담이 아니다.
그것은 절망을 견디는 고급한 정신의 기술이다. 웃을 수 없는 자리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은 이미 절반쯤 운명을 이긴 사람이다. 전쟁터로 향하는 배 안에서도, 낯선 이국의 군영에서도,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도 그는 삶을 너무 무겁게만 들지 않았다. 그 가벼움은 경박함이 아니라 성숙한 내공이었다.
그의 생애는 전쟁과 고시, 사랑과 공직, 그리고 공동체 정신이 하나의 대나무 숲처럼 어우러진 이야기이다. 대나무가 오랜 시간 땅속에서 뿌리를 넓힌 뒤 하늘을 향해 곧게 솟듯, 서종환 선생의 삶도 보이지 않는 시간의 축적 위에서 세워졌다. 전쟁은 그의 담력을 단련했고, 사랑은 그의 삶에 방향을 주었으며, 공부는 그의 미래를 열었고, 공직은 그의 신념을 사회적 책임으로 확장시켰다.
따라서 그의 삶을 읽는 일은 한 개인의 회고를 읽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한 시대의 청년이 어떻게 두려움을 지나 성숙에 이르렀는가를 살피는 일이며, 신념과 유머가 어떻게 인간을 지탱하는 두 기둥이 될 수 있는가를 확인하는 일이다. 서종환 선생의 생애는 말한다. 인생의 바다는 누구에게나 거칠지만, 마음속에 믿음의 닻을 내린 사람은 끝내 자기 항구로 돌아온다고.
Ⅱ. 전쟁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은 사람
1969년 1월.
젊은 병사 서종환은 부산항 제3부두를 떠나 베트남을 향하는 파월선에 몸을 실었다. 부두에는 가족들의 눈물이 남아 있었고, 배 위에는 젊은 병사들의 침묵이 떠돌고 있었다. 떠나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그 길의 끝을 알지 못했다. 살아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지금의 세대에게 전쟁은 역사책 속 기록일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젊은이들에게 전쟁은 현실이었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현실이었다. 총성과 포연, 죽음과 부상, 생존과 공포가 일상처럼 기다리고 있는 낯선 땅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인간은 무엇을 붙드는가.
이성보다 먼저 희망을 붙든다.
논리보다 먼저 기원을 붙든다.
서종환 선생 역시 그랬다.
그가 가슴속 깊이 간직한 것은 무기가 아니었다. 전쟁 교범도 아니었다. 여러 사람의 恥毛가 들어 있는 작은 비닐봉지였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실소가 나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 파월 장병들에게 그것은 단순한 미신이 아니었다. 살아 돌아오고 싶다는 간절함이 만들어낸 일종의 정신적 방탄복이었다.
전쟁은 인간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그 극단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안을 견딘다. 누군가는 십자가를 품고, 누군가는 가족사진을 품고, 누군가는 편지 한 장을 품는다. 서종환 선생에게는 작은 비닐봉지가 그러한 역할을 했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파월선에 승선한 첫날 밤, 심한 멀미와 혼란 속에서 그 비닐봉지가 사라진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 그것이 없어진 사실을 발견했을 때 그는 눈앞이 캄캄해졌다고 회상한다. 전쟁터에 도착하기도 전에 생명의 부적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은 단순한 물건 분실 이상의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는 침상과 바닥을 뒤지고 화장실을 샅샅이 뒤졌다.
마침내 하수구 망에 걸려 있는 비닐봉지를 발견했을 때의 안도감은 단순한 기쁨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시 살아갈 용기를 되찾은 순간이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우연한 발견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때때로 객관적 사실보다 믿음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중요한 것은 비닐봉지 자체가 아니었다.
끝까지 살아남겠다는 그의 의지였다.
그 의지가 비닐봉지라는 상징 안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의 회고는 비장하지 않다.
외려 곳곳에서 웃음이 묻어난다.
훈련소 인근 식당의 주모 이야기, 동료 병사들의 괴상한 부적 전설, 청량리역에서 약혼녀를 기다리던 장면, 그리고 결국 형수와 약혼녀의 도움으로 확보한 마지막 치모 이야기까지.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전쟁 이야기가 인간 냄새 나는 해학으로 채워져 있다.
바로 여기에 서종환 선생의 특별함이 있다.
그는 과거를 영웅담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자신을 신화 속 주인공처럼 꾸미지도 않는다.
외려 서툴고 우스꽝스러운 젊은 날의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독자는 웃게 되고, 웃음 끝에서 더 깊은 진실과 만나게 된다.
인간은 완벽해서 위대한 것이 아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앞으로 걸어가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다.
전쟁터에서도 그의 이런 태도는 계속된다.
파월선 의무실에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병사를 찾는다는 방송이 나오자 그는 주저하지 않고 나선다. 당시만 해도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병사는 많지 않았다. 그는 의무관과 대화를 나눈 뒤 곧바로 통역 업무를 맡게 된다.
두통 환자와 소화불량 환자, 각종 질환을 호소하는 병사들과 미군 의료진 사이에서 그는 자연스럽게 가교 역할을 수행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의 영어 실력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서울법대 시절의 학업.
국제 청년 지도자 과정 참가 경험.
미국 방문 경험.
젊은 시절 쌓아온 준비가 이국의 파월선 위에서 예상치 못한 기회로 이어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인생을 설명할 때 우연을 말한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우연은 스쳐 지나갈 뿐이다.
준비된 사람만이 우연을 기회로 바꾼다.
서종환 선생의 삶이 바로 그러했다.
의무실 통역 경험은 훗날 중대장의 눈에 띄게 만들었고, 그것은 다시 주월사령부 전속이라는 새로운 길로 이어졌다.
겉으로 보면 우연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 우연의 배후에는 언제나 준비와 성실이 있었다.
배움에 대한 열정.
자신을 단련하려는 노력.
어떤 자리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태도.
그것들이 기회의 문을 조금씩 열어주었다.
서종환 선생의 전쟁 이야기는 총과 포탄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한 청년의 이야기이며, 두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품었던 인간의 이야기이다.
전쟁은 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인간의 본질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거울이 되기도 했다.
서종환 선생의 회고록을 읽다 보면 전쟁의 참혹함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삶을 향한 긍정이다.
비닐봉지 하나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낯선 배 안에서도 기회를 발견하며, 절망의 가능성 속에서도 웃음을 발견하는 힘.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그가 전쟁에서 얻은 가장 큰 훈장이었는지도 모른다.
Ⅲ. 신념은 운명을 움직이는 또 하나의 이름
서종환 선생의 생애를 관통하는 핵심어를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신념”일 것이다.
그는 전쟁터에서도 살아 돌아올 것을 믿었다.
고시 공부를 하면서도 합격을 믿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미래를 믿었다.
그리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국가와 공동체의 미래 또한 믿었다.
사람들은 흔히 성공한 사람을 바라보며 재능이 있었다고 말한다. 머리가 좋았다고 말하고,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물론 그것들도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면 능력보다 앞서 존재하는 것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자신에 대한 확신이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졌더라도 스스로를 믿지 못하면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반면 평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자신의 가능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예상치 못한 곳까지 도달하는 경우가 많다.
신념은 미래를 미리 보는 눈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먼저 걸어가는 용기이다.
씨앗 하나를 떠올려 보자.
씨앗은 어둠 속에 묻힌다.
차가운 흙 아래에서 비를 맞고 바람을 견딘다.
겉으로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씨앗은 조용히 뿌리를 내린다.
자신이 언젠가 나무가 될 것이라는 생명의 약속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씨앗에게 그런 내적 본능과 믿음이 없다면 어둠을 견뎌낼 이유가 없다.
대나무 또한 마찬가지다.
대나무는 땅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다.
사람들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 시간 동안 뿌리는 사방으로 넓어지고 깊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죽순이 되어 땅 위로 올라오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성장한다.
그 폭발적인 성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던 준비의 시간들이 만든 결과이다.
서종환 선생의 삶 또한 그러했다.
파월 복무를 마치고 귀국한 그는 화려한 도시가 아니라 충북 청원의 고향 시골집으로 돌아간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시절 그의 고향에는 전기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밤이 되면 세상은 어둠에 잠겼고, 공부를 하려면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야 했다.
여름에는 더위와 싸워야 했고, 겨울에는 추위와 싸워야 했다.
교통도 불편했고 정보도 부족했다.
오늘날처럼 인터넷도 없었고, 손쉽게 자료를 구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다시 책을 펼쳤다.
남들은 전쟁을 마치고 돌아와 휴식을 생각할 때 그는 또 다른 전투를 시작했다.
총을 내려놓고 책을 들었다.
전장의 적 대신 자신의 한계와 싸우기 시작했다.
그 과정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았다.
불편함은 일상이었고 미래는 불확실했다.
결과를 보장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있었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 믿음은 허황된 낙관이 아니었다.
전쟁을 견딘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끈기에서 나온 확신이었다.
죽음이 가까운 곳에서도 버텨낸 사람이었기에 공부의 어려움은 견딜 수 있었다.
총성이 들리던 곳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었기에 책상 앞의 고독은 감당할 수 있었다.
그의 고시 공부는 단순한 입신양명의 과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가는 과정이었다.
마침내 행정고시 10회 합격이라는 결실을 맺는다.
그러나 이 합격을 단순한 시험 합격으로만 보는 것은 부족하다.
그것은 한 인간이 자신의 가능성을 얼마나 끝까지 신뢰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그의 삶 속에서 사랑 또한 신념의 영역이었다는 사실이다.
파월 중에도 그는 약혼녀와의 인연을 포기하지 않았다.
내무반 동료들과 함께 고민하고 방법을 찾으며 관계를 지켜냈다.
귀국하여 결혼에 이르는 과정 역시 믿음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사랑도 결국 신념이다.
함께할 미래를 믿지 못하면 어떤 관계도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국가와 공동체를 향한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문화회와 문공회의 역사와 전통을 이야기하며 공동체의 지속성을 강조한다.
대나무가 한 줄기만으로 숲을 이루지 못하듯 사람 역시 혼자서는 역사를 만들 수 없다.
선배가 길을 열고 후배가 이어받으며 하나의 정신이 전승될 때 공동체는 성장한다.
그가 평생 강조해 온 것도 바로 이러한 연결의 가치였다.
하여, 서종환 선생에게 신념은 단순한 개인적 성공의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삶을 지탱하는 뿌리였고, 관계를 이어주는 다리였으며, 공동체를 성장시키는 정신적 자산이었다.
성경은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한다.
서종환 선생의 생애는 그 말씀을 하나의 인생 이야기로 풀어낸 사례와도 같다.
전쟁터에서는 생환을 믿었고,
고향집에서는 합격을 믿었으며,
사랑 앞에서는 미래를 믿었고,
공직에서는 국가를 믿었다.
그 믿음은 결국 그의 삶을 한 걸음씩 앞으로 움직였다.
운명은 어느 날 갑자기 바뀌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념이 오랜 시간 축적되다가 어느 순간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놓는다.
서종환 선생의 삶은 그 사실을 웅변한다.
신념은 단순한 생각이 아니다.
인간이 자신의 미래를 향해 던지는 가장 강력한 약속이다.
그 약속을 끝까지 놓지 않는 사람에게 삶은 때때로 예상보다 더 넓은 길을 열어준다.
Ⅳ. 사랑도 국가도 결국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서종환 선생의 삶을 들여다보면 전쟁과 고시, 공직과 사회활동 못지않게 깊은 울림을 주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사람에 대한 믿음이다.
그의 인생에는 수많은 사건들이 등장한다. 월남전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도 있고, 행정고시 합격이라는 개인적 성취도 있으며, 공직자로서의 책임과 공동체를 위한 헌신도 있다. 그 모든 이야기를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실은 결국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
사람과 사람의 신뢰.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운명.
그 출발점은 젊은 날의 사랑이었다.
서울법대 학생회장 시절, 한일협정 비준 반대운동과 관련하여 구치소에 수감되었던 청년 서종환. 자유를 빼앗긴 공간에서 맞이한 첫 면회는 훗날 평생의 동반자가 될 안금숙 여사와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생각해 보면 인생은 참으로 묘하다.
누구도 감옥의 면회실에서 미래의 배우자를 만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한다.
인연은 늘 가장 예상하지 못한 문을 통해 들어온다.
찬란한 꽃밭보다 어두운 복도에서,
환한 광장보다 좁은 면회실에서,
때로는 가장 힘겨운 시기에 찾아온다.
두 사람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후 약혼에 이르고, 군 입대와 파월이라는 거대한 시련이 찾아온다.
오늘날에는 전화 한 통, 영상통화 한 번으로도 마음을 전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편지 한 장이 전부였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이국땅에서 서로를 기다리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전쟁은 총탄만으로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다.
기다림으로도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그리움으로도 사람을 흔든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 시간을 견뎌냈다.
흥미로운 장면은 주월사령부 내무반에서 벌어진 일화이다.
약혼녀가 미국 유학을 떠날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 내무반 전우들이 모두 모여 머리를 맞댄다.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다소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그 안에는 전우애라는 이름의 따뜻한 공동체 정신이 숨어 있다.
남의 연애 문제를 자신의 일처럼 걱정하고,
남의 미래를 위해 대책회의를 열고,
결국 결혼이라는 결론까지 도출해내는 모습은 마치 한 편의 인간극장을 보는 듯하다.
총성이 들리는 전쟁터에서도 사람들은 사랑을 이야기했다.
내일의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그 장면은 중요한 사실 하나를 보여준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전쟁은 사람을 황폐하게 만든다.
불신을 만들고, 공포를 만들고, 적대감을 만든다.
그 전쟁 한복판에서도 사람은 또 사람으로 인해 살아난다.
동료의 격려 한마디가 절망을 견디게 하고,
고향에서 온 편지 한 장이 내일을 기다리게 하며,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가 삶을 포기하지 못하게 만든다.
서종환 선생은 평생 이러한 인간관계의 가치를 소중히 여겼다.
그가 회고록 곳곳에서 사람 이야기를 자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쟁의 영웅담보다 전우들의 이야기가 많고,
성공의 자랑보다 함께했던 사람들의 추억이 많다.
그에게 인생은 혼자 이룬 업적의 목록이 아니라 함께 걸어온 사람들의 얼굴로 기억되는 여정이었다.
이러한 태도는 공직생활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그가 문화회와 문공회의 역사와 전통을 강조하는 이유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문화회는 단순한 친목단체가 아니다.
그 안에는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정신과 가치가 축적되어 있다.
선배들이 남긴 발자국 위를 후배들이 걸어가고,
후배들이 다시 새로운 길을 만들어 다음 세대에게 넘겨준다.
그 과정 속에서 개인은 언젠가 무대를 떠나지만 공동체의 정신은 남는다.
서종환 선생은 바로 이 점을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개인을 넘어 공동체를 향해 있었다.
나무 한 그루는 숲이 될 수 없다.
수많은 나무가 뿌리를 나누고 바람을 함께 견디면 숲이 된다.
한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다.
혼자서는 역사를 만들 수 없다.
수많은 만남과 신뢰, 협력과 우정이 모여 비로소 한 시대를 만든다.
그가 대나무의 정신을 자주 이야기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대나무는 홀로 자라는 듯 보이지만 땅속에서는 뿌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연결이 숲을 지탱한다.
인간사회 역시 다르지 않다.
보이지 않는 신뢰가 공동체를 지탱하고,
보이지 않는 사랑이 가정을 지탱하며,
보이지 않는 책임감이 국가를 지탱한다.
사랑도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국가도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문화도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그리고 역사는 언제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서종환 선생의 생애는 그 단순하지만 깊은 진실을 보여준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사랑을 지켰고,
공직의 길에서도 사람을 잊지 않았으며,
은퇴 이후에도 공동체를 위해 마음을 보탰다.
그의 삶은 성공한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을 믿고, 관계를 믿고, 공동체를 믿었던 한 인간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 기록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조용히 말을 건넨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거대한 제도나 화려한 구호가 아니라,
끝내 사람을 믿는 마음이라고.
Ⅴ. 맺음말
― 웃을 줄 아는 신념이 가장 강하다
한 사람의 생애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일은 쉽지 않다.
수십 년의 세월 속에는 수많은 만남과 이별이 있고, 성공과 실패가 있으며, 환희와 좌절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시대의 격랑을 온몸으로 건너온 사람의 인생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서종환 선생의 삶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신념을 가졌고, 그 신념을 너무 무겁게 들지 않았다.”
이 문장은 어쩌면 그의 인생 전체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표현일지 모른다.
그에게는 분명 신념이 있었다.
그 신념은 타인을 억누르는 독선으로 변하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을 지키되 다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할 줄 알았다.
그에게는 열정이 있었다.
그 열정은 맹목적인 광기로 흐르지 않았다.
뜨겁게 살아가되 삶의 여백을 잃지 않았다.
그에게는 성공이 있었다.
행정고시 합격이라는 성취가 있었고, 공직자로서의 보람 있는 삶이 있었으며, 공동체를 위한 다양한 활동이 있었다.
그 성공은 교만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감사의 마음이 더욱 깊어졌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자신의 인생을 웃으며 이야기할 줄 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할 때 두 가지 극단으로 흐르기 쉽다.
하나는 과거를 지나치게 미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나치게 후회하는 것이다.
서종환 선생은 그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젊은 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월남전으로 향하던 배 안에서 잃어버린 부적 이야기도 웃으며 말한다.
주모에게서 음모를 받아 부적처럼 간직했던 이야기도 숨기지 않는다.
전우들과 함께 약혼녀를 붙잡기 위한 작전을 세웠던 이야기 역시 유쾌하게 회상한다.
그 웃음 속에는 자기 삶에 대한 건강한 수용이 있다.
인생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감사할 만한 여정이었다는 고백이 담겨 있다.
생각해 보면 삶은 늘 거센 파도와 닮아 있다.
누구도 잔잔한 바다만을 항해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에게는 전쟁이 파도였고,
어떤 사람에게는 가난이 파도였으며,
어떤 사람에게는 실패와 좌절이 파도였다.
파도는 사람을 시험한다.
때로는 방향을 잃게 하고, 때로는 포기하고 싶게 만든다.
어떤 사람은 파도에 휩쓸린다.
어떤 사람은 파도를 원망하며 평생을 보낸다.
서종환 선생은 달랐다.
그는 파도를 피하려 하지 않았다.
그 파도 위에서 노를 저었다.
월남전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물결 앞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켰고,
낯선 이국의 군영에서도 배움을 멈추지 않았으며,
귀국 후에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새로운 미래를 준비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인연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그의 삶은 늘 다음을 향해 움직였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신념은 현실을 부정하는 힘이 아니다.
외려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다.
많은 사람들이 신념을 거창한 이념이나 철학으로 생각한다.
서종환 선생의 삶에서 신념은 훨씬 더 생활적이고 인간적이다.
오늘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내는 것.
지금의 어려움을 견디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믿는 것.
나라와 공동체를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그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그의 신념은 추상적이지 않았다.
구체적인 삶 속에서 실천되었다.
또한 그의 인생은 믿음과 준비가 만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준다.
믿음만으로는 부족하다.
준비 없는 낙관은 공허하다.
준비만으로도 부족하다.
믿음 없는 노력은 쉽게 지친다.
그는 믿었고, 동시에 준비했다.
영어를 공부했고,
책을 읽었으며,
자신을 단련했다.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의 삶에 등장하는 수많은 우연들은 사실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온 필연에 가까웠다.
주월사령부 전속도,
행정고시 합격도,
공직자로서의 성장도,
그 모든 과정에는 보이지 않는 준비의 시간이 존재했다.
그 준비를 지탱한 힘이 바로 신념이었다.
오늘 우리는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지만 미래는 더욱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흔들리며, 자신이 가는 길을 의심한다.
이럴 때 서종환 선생의 생애는 하나의 조용한 이정표가 된다.
그의 인생은 거창한 영웅서사가 아니다.
한 인간이 시대를 통과하며 자신의 길을 만들어간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언제나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 곁에는 늘 웃음이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그의 생애가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큰 유산인지 모른다.
인생을 움직이는 가장 강한 힘은 특별한 재능이나 뛰어난 환경이 아니다.
자신이 가는 길을 끝까지 믿는 마음이다.
그 믿음에 웃음을 잃지 않는 여유가 더해질 때 사람은 어떤 폭풍도 견뎌낼 수 있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오래 기억되는 사람은 늘 그런 사람들이다.
삶의 무게를 견디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사람.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품었던 사람.
끝까지 사람을 믿었던 사람.
서종환 선생의 생애는 바로 그런 인간 승리의 기록이며, 신념과 유머가 함께할 때 인생은 더욱 깊고 아름다워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한 편의 살아 있는 교과서라 할 것이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