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루 장편소설 《독약 같은 여자》 추천의 글ㅡ 청람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삶의 끝자락에서 피어나는 가장 위험한 온기 — 김미루 장편소설 《독약 같은 여자》 추천의 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사람은 때로 사랑 때문에 무너진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사랑 때문에 다시 살아가기도 한다.
김미루의 《독약 같은 여자 ㅡ 도서출판 청람서루 김왕식 대표)》는 바로 그 역설의 심연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단순한 연애담도, 감각적 욕망을 소비하는 통속적 서사도 아니다. 외려 인간이 삶의 끝자락에서 무엇으로 자신을 붙들고 존재를 증명하는가를 집요하게 탐색한 하나의 존재론적 기록에 가깝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지닌 가장 독창적인 미학은 ‘이메일 서사’라는 형식에 있다. 작가는 이메일을 주고받는 방식을 통해 감정의 흐름과 존재의 흔들림을 놀라울 만큼 리얼하게 구현해 낸다. 이는 단순한 편지체 구성을 넘어선다. 시간차를 두고 도착하는 문장들, 기다림 속에서 증폭되는 감정, 삭제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고백들까지 모두 서사의 일부가 된다.
즉각적으로 소비되는 대화가 아니라, 쓰고 기다리고 다시 읽는 과정을 통해 감정은 더욱 농밀해지고, 언어는 단순한 전달 수단이 아니라 살아 있는 감각 기관처럼 기능한다.
이러한 방식은 한국문학에서 흔치 않은 매우 실험적인 시도다. 김미루는 디지털 시대의 소통 방식인 이메일을 단순한 장치로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 자체를 하나의 문학적 구조로 끌어올린다. 현실과 허구, 기록과 감정, 욕망과 고백이 메일이라는 공간 안에서 교차하며 독자는 마치 실제 누군가의 비밀스러운 메일함을 들여다보는 듯한 생생한 몰입감을 경험하게 된다.
특히 브라질과 서울이라는 먼 거리, 그리고 죽음과 삶이라는 거대한 간극 사이에서 두 인물은 끝내 만나지 못한다. 그러나 만나지 못하기에 오히려 더 깊이 스며든다. 얼굴도 체온도 없는 자리에서, 오직 문장만으로 서로를 감각하고 흔들리며 살아간다.
말기 암 환자인 쥴리아의 언어는 단순한 유혹이 아니다. 그것은 “나는 아직 살아 있다”는 처절한 외침이며, 사라져 가는 존재가 마지막으로 붙드는 생의 감각이다. 그녀의 문장은 때로 위험할 만큼 뜨겁지만, 그 안에는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고독과 두려움이 응축되어 있다.
김미루는 사랑을 미화하지 않는다. 사랑은 이 작품 안에서 독처럼 스며들고, 사람을 흔들고 무너뜨린다. 그러나 동시에 그 독은 죽어가던 감각을 다시 깨우고, 무너진 존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기묘한 힘으로 작용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작품은 독특하다. 욕망을 타락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인간이 끝내 살아 있으려는 마지막 본능으로 읽어낸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 작품의 문체다. 감정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깊고 농밀하다. 절제와 노출이 교차하며, 독자는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인물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끌려 들어간다. 읽고 있는 것이 소설인지, 누군가의 실제 고백인지 경계가 흐려질 만큼 생생하다.
부록 「헛된 망상과 오래된 기억」 또한 인상적이다. 그것은 단순한 추가 수록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욕망과 기억이 어떻게 현재의 감각을 형성하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심리적 기록이다. 본편이 절제된 슬픔이라면, 부록은 억눌린 욕망의 그림자에 가깝다. 두 텍스트는 서로를 비추며 작품 전체의 밀도를 더욱 깊게 만든다.
《독약 같은 여자》는 쉽게 읽히는 작품이 아니다. 그러나 오래 남는 작품이다. 읽는 동안보다 책을 덮은 뒤 더 깊게 흔들리는 소설이다. 누군가는 이 작품을 위험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학은 원래 안전한 곳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인간 존재의 가장 연약한 곳, 가장 외로운 곳, 가장 숨기고 싶은 곳을 통과할 때 비로소 오래 살아남는 문장이 탄생한다.
김미루의 《독약 같은 여자》는 바로 그런 작품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대신, 사람은 왜 끝내 누군가를 통해 살아 있으려 하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은 책장을 덮은 뒤에도 오래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