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미루 작가의 《독약 같은 여자》 는 독자를 내팽개쳤다

김미루 작가의 《독약 같은 여자》 는
독자를 내팽개쳤다

독자를 내팽개쳤다

이상한 작가 김미루

얼핏,

김미루 작가의 《독약 같은 여자》 는 독자를 내팽개쳤다.

그러나 끝까지 읽고 보니 ㅡ

요즘 책들은 대체로 독자에게 친절하다. 글씨는 커졌고, 문장은 짧아졌고, 여백은 넓어졌다. 독자가 숨 쉴 공간까지 계산해 준다. 눈이 피로하지 않게 만들고, 생각이 오래 머물지 않게 배려한다. 심지어 문장도 독자를 힘들게 하지 않으려 조심한다. 상처도 순하게 설명하고, 철학도 쉽게 풀어주고, 외로움조차 카페 음악처럼 부드럽게 포장한다.

그러나 며칠 전 출간된 독약 같은 여자는 이상했다. 이 책의 작가와 편집자는 독자와 야합하지 않았다.

오히려 독자를 버렸다.

요즘 출판계의 금기를 정면으로 거슬렀다. 독자가 편하게 읽도록 만들지 않았다. 눈에 잘 들어오게 친절히 설명하지도 않았다.

글씨는 작았고, 페이지는 빽빽했으며, 메일과 독백과 사유는 조용히 뒤엉켜 있었다. 심지어 편집은 약간 어설퍼 보이기까지 했다. 처음에는 당황스럽다.

“왜 이렇게 불친절하지?”

“왜 이렇게 숨 막히게 만들었지?”

“왜 독자를 배려하지 않지?”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독자는 화를 내며 책을 덮지 않는다. 오히려 점점 더 깊이 빠져든다. 마치 오래된 골목 안쪽으로 잘못 들어선 사람처럼.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한데, 어느 순간부터 그 골목의 냄새와 침묵과 어둠이 묘하게 익숙해진다.

별안간 알았다.

자신이 지금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처음으로 ‘어딘가에 도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독약 같은 여자》의 가장 위험한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작품은 독자를 손님처럼 대하지 않는다.

독자를 고객으로 보지도 않는다. 오히려 공범처럼 끌고 들어간다.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메일을 몰래 훔쳐보는 기분이 든다. 남의 방 불 꺼진 새벽을 엿보는 느낌이다.

그래서 독자는 편안하지 않다. 하지만 이상하게 행복하다. 생각해 보면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인지도 모른다. 너무 친절한 것에는 오래 머물지 못한다. 너무 환한 곳에서는 깊은 고백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약간 어둡고, 약간 불편하고, 약간 길을 잃은 곳에서 인간은 자기 속마음을 만난다.

김미루 작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독자를 배려하는 대신 독자를 방치했다.

설명하는 대신 침묵했고, 친절하게 안내하는 대신 독자가 스스로 길을 잃게 만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 무책임함이 묘한 몰입을 만든다. 보통의 책은 독자를 위해 길을 닦아준다. 그러나 《독약 같은 여자》는 길을 일부러 울퉁불퉁하게 남겨둔다. 독자는 문장을 읽다가 멈칫하고, 다시 돌아가 읽고, 어떤 문장 앞에서는 한참 머문다. 마치 사람의 마음속 폐허를 혼자 걷는 느낌이다.

특히 작은 활자는 놀라울 정도로 집요하다. 눈을 가까이 가져가게 만들고, 시선을 오래 붙잡아둔다. 편안히 훑어 읽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독자는 어느 순간 눈이 조금 아픈 상태로 문장을 응시하게 된다. 그런데 바로 거기서 이상한 일이 생긴다.

눈이 피로해질수록 감정은 더 깊이 침잠한다. 활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활자 속에 숨어 있는 사람의 체온을 더듬게 된다. 편집자는 그것을 ‘어설픈 몰입도’라고 말했다고 한다.

참 이상한 표현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그것만큼 정확한 말도 없다. 완벽한 편집은 눈을 만족시키지만, 어설픈 편집은 감정을 흔든다. 매끈한 디자인은 소비를 부르지만, 약간 삐걱거리는 구조는 인간을 오래 머물게 만든다.

문학도 그렇다.

너무 잘 쓴 문장은 때로 독자를 감탄시키는 데서 끝난다. 하지만 약간의 틈과 흔들림이 있는 문장은 독자의 상처와 연결된다.

《독약 같은 여자》는 그 틈을 안다. 이 작품은 아름답게 잘 만들어진 책이라기보다, 누군가 오래 앓다가 남긴 메일함 같다.

밤마다 혼자 열어보던 편지함. 삭제하지 못한 문장들. 끝내 보내지 못한 고백들. 이미 끝난 사랑인데도 차마 지우지 못한 기록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자꾸 이상한 기분이 든다.

문학작품을 읽고 있다는 느낌보다, 인간의 오래된 외로움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에 가깝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작품은 독자를 압도한다.

독자를 만족시키려 하지 않았던 작가와 편집자의 엉뚱한 자존심.

그 불친절함.

그 어설픔.

그 시대착오적인 고집.

아이러니하게도 그것들이야말로 독자를 가장 깊이 행복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인간은 결국 완벽하게 정리된 세계보다, 조금 금 가 있고 조금 흔들리는 세계 안에서 자기 마음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약 같은 여자》는 단순한 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한 시대가 잃어버린 ‘느린 몰입’에 대한 반항처럼 느껴진다. 빠르게 넘기고 소비하는 시대 속에서, 이 책만 홀로 독자에게 말한다.

“천천히 아파하라.”

“천천히 들여다보라.”

“그리고 오래 외로워하라.”

참 이상한 책이다. 독자를 버렸는데, 독자는 그 버려진 자리에서 오히려 자기 마음을 만나게 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