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서울역 지하도에서 만난 한 사람의 성전 ㅡ청람

서울역 지하도에서 만난 한 사람의 성전 ㅡ청람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한 걸인의 낡은 성경책 ― 서울역 지하도에서 만난 한 사람의 성전

서울역 지하도로 내려가면, 도시의 얼굴이 조금 달라진다. 지상에서는 사람들이 목적지를 향해 걷는다. 기차 시간에 맞추어 뛰는 사람,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는 사람, 전화기를 귀에 붙인 채 짧은 대답만 던지는 사람, 커피 한 잔을 들고 하루의 속도 속으로 사라지는 사람들.

그들에게 서울역은 출발지이거나 도착지이다. 그런데 지하도 한구석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서울역은 집이다. 머무는 곳이다. 피할 수 없는 오늘의 바닥이다.

그곳에 한 노인이 있었다. 여든 중반쯤 되었을까. 허리는 오래된 활처럼 굽어 있었다. 얼굴에는 세월이 갈라놓은 마른 논바닥 같은 주름이 깊었다.

그는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바닥에는 종이박스 서너 장이 깔려 있었다. 그것이 그의 자리였다. 그의 침대였고, 그의 방이었고, 그의 세상 한 칸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걸인이라 부를 것이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는 분명 가진 것이 없어 보였다. 옷은 낡았고, 손은 거칠었으며,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그의 한켠에 놓인 물건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겉장이 떨어져 나간 성경책 한 권. 돋보기 하나. 낡은 영어 사전 한 권. 성경은 영어 성경이었다.

순간 가슴 안쪽에서 무언가 조용히 움직였다. 서울역 지하도, 종이박스 위, 허리 굽은 노인, 낡은 영어 성경, 돋보기, 영어 사전.

이 조합은 쉽게 설명되지 않았다. 세상은 사람을 너무 빨리 해석한다. 옷차림으로 판단하고, 사는 곳으로 등급을 매기며, 손에 쥔 것으로 그 사람의 생을 계산한다.

거리의 노인은 가난한 사람. 지하도의 노숙자는 실패한 사람. 박스 위의 잠은 버려진 생애.

우리는 그렇게 빨리 결론을 내린다. 그런데 그 곁에 놓인 낡은 영어 성경은 그런 판단을 가만히 멈추게 했다. 가난은 그의 옷에 있었을지 모른다. 가난은 그의 잠자리에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의 허기와 추위와 외로움 속에 있었을지 모른다. 다만 그의 영혼마저 가난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한 권의 책이 사람의 품격을 모두 말해 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그 책이 성경이고, 그것도 영어 성경이며, 그 옆에 낡은 사전까지 놓여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는 단순히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무언가를 읽고 있었다. 읽는다는 것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읽는 사람은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다. 읽는 사람은 자기 안에 작은 등불 하나를 켜 두고 있는 사람이다. 더구나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문장을 읽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자기 생을 문장 앞에 세우는 일이다. 자기 상처를 말씀 앞에 내려놓는 일이다. 자기 허기를 세상의 동정이 아니라 하늘의 위로 앞에 펼쳐 놓는 일이다.

그의 성경책은 낡아 있었다. 낡았다는 것은 오래 버려졌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성경은 버려진 책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손에 붙들린 책 같았다. 모서리가 닳고, 종이가 얇아지고, 겉장이 떨어져 나간 것은 책이 학대받은 흔적이 아니라 사랑받은 흔적일 수 있다. 새 책은 깨끗하지만 아직 사람의 체온을 모른다. 낡은 책은 더럽혀진 것이 아니라 사람의 눈물과 손때를 기억한다. 그 노인의 성경은 아마 수많은 밤을 함께 지났을 것이다.

비가 오던 밤. 찬 바람이 지하도 입구로 밀려오던 밤. 취객의 발소리가 거칠게 지나가던 밤. 경비원의 시선이 매섭게 닿던 밤. 잠은 오지 않고 몸은 아프며,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던 밤.

그 밤마다 노인은 돋보기를 꺼냈을 것이다. 영어 사전을 더듬었을 것이다. 한 단어를 찾고, 한 구절을 읽고, 다시 멈추었을 것이다. 그에게 말씀은 설교단 위의 장식이 아니었을 것이다. 찬란한 조명 아래 펼쳐지는 성경 봉독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에게 성경은 추위를 견디는 담요였고, 굶주린 마음에 얹는 한 조각 빵이었으며, 버려진 듯한 날에도 자신이 완전히 버려지지 않았다는 증표였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성경을 너무 좋은 자리에서만 읽으려 한다.

따뜻한 방. 밝은 조명. 깨끗한 책상. 밑줄 그을 형광펜. 차 한 잔.

그 모든 것이 귀하다. 다만 서울역 지하도 한구석의 낡은 성경은 묻고 있었다. 말씀은 깨끗한 책상 위에서만 살아 있는가. 하나님은 안락한 의자에 앉은 사람에게만 말씀하시는가. 가장 낮은 바닥에 앉은 사람의 손에 들린 성경은 오히려 더 뜨겁지 않은가. 그 노인을 보며 ‘성자 걸인’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함부로 붙일 수 없는 말이다. 성자라는 이름은 인간이 쉽게 줄 수 있는 훈장이 아니다. 걸인이라는 이름도 사람의 전부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 순간의 노인은 이상하게도 두 단어 사이에 있었다. 겉으로는 걸인이었다. 안으로는 순례자였다. 그의 집은 없었으나, 그에게는 붙들 문장이 있었다. 그의 식탁은 빈약했으나, 그에게는 매일 펼치는 말씀의 양식이 있었다. 그의 신분은 낮아 보였으나, 그의 곁에는 하늘의 언어가 놓여 있었다.

누가 부자인가. 은행 잔고가 많은 사람인가. 큰 집에 사는 사람인가. 많은 사람이 이름을 알아주는 사람인가. 물론 그것들도 삶의 한 조건이다. 가난을 미화해서는 안 된다. 노숙의 고통을 낭만으로 꾸며서도 안 된다. 추위는 실제로 살을 에고, 배고픔은 실제로 사람의 존엄을 흔든다. 거리에 내몰린 삶을 아름다운 장면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무례한 일이다. 그럼에도 가난한 사람을 가난으로만 보는 일 또한 잔인하다. 그 노인은 가난했으나 비어 있지 않았다. 낡았으나 무너져 있지 않았다. 외로워 보였으나 완전히 혼자는 아니었다.

그 곁에 성경이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성경을 가지고 산다. 반드시 종교의 책이 아니어도 좋다. 어떤 사람에게는 어머니의 유언이 성경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실패 뒤에 얻은 한 문장이 성경이며, 어떤 사람에게는 오래 품어 온 양심 하나가 성경이다. 사람이 끝내 붙들고 살아가는 마지막 말. 그 말이 곧 그 사람의 성전이다. 그 노인에게는 그 마지막 말이 진짜 성경이었다. 영어 성경이라는 사실도 마음을 붙잡았다.

왜 영어였을까. 젊은 날에 영어를 공부한 사람이었을까. 미군 부대 근처에서 일한 적이 있었을까. 선교사를 만난 적이 있었을까. 어느 교회에서 얻은 책이었을까. 누군가 그에게 건넨 마지막 선물이었을까.

알 수 없다. 다만 낡은 영어 사전이 함께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는 모르는 단어를 그냥 넘기지 않았을 것이다. 한 단어를 찾아가며 읽었을 것이다. 그 장면은 한 인간의 품위를 보여 준다. 사람은 집을 잃어도 배움을 잃지 않을 수 있다. 돈을 잃어도 문장을 사랑할 수 있다. 세상이 자기 이름을 지워 버려도, 스스로 자기 영혼의 글자를 읽을 수 있다. 그는 구걸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번역하는 사람이었다. 어둠을 빛으로 번역하고, 가난을 기도로 번역하며, 외로움을 말씀으로 번역하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그를 바라보는 시선도 번역되어야 한다. 걸인에서 사람으로. 노숙자에서 순례자로. 불쌍한 존재에서 존엄한 존재로. 도움의 대상에서 우리를 가르치는 스승으로.

그날 서울역 지하도에서 내가 본 것은 한 노인의 궁핍만이 아니었다. 인간이 끝까지 잃지 않을 수 있는 품격이었다. 사람은 무엇을 소유했는가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무엇을 붙들고 있는가로도 드러난다.

누군가는 권력을 붙들고 산다. 누군가는 돈을 붙들고 산다. 누군가는 자존심을 붙들고 산다. 누군가는 원망을 붙들고 산다.

그 노인은 낡은 성경을 붙들고 있었다. 겉장이 떨어진 성경. 글자를 보기 위해 돋보기가 필요한 성경. 모르는 단어를 찾기 위해 사전이 필요한 성경. 그것은 화려한 신앙이 아니었다. 잘 차려입은 경건도 아니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믿음도 아니었다. 바닥의 믿음이었다.

삶이 더 내려갈 곳 없는 듯 보이는 자리에서, 그래도 하늘을 놓지 않는 믿음. 몸은 굽었으나 마음의 무릎은 말씀 앞에 꿇어 있는 믿음. 세상은 그를 지나쳐도, 그는 한 구절 앞에서 멈출 줄 아는 믿음.

그 믿음 앞에서 많은 말이 부끄러워진다. 우리는 너무 쉽게 믿음을 말한다. 너무 쉽게 은혜를 말한다. 너무 쉽게 사랑을 말한다. 그런데 진짜 믿음은 때로 말이 아니라 자리로 증명된다. 어디에 앉아 있느냐보다 무엇을 붙들고 있느냐로 증명된다. 무엇을 가졌느냐보다 무엇을 놓지 않았느냐로 증명된다. 서울역 지하도 한구석의 성경책은 설교하고 있었다.

목소리 없는 설교였다. 강단 없는 설교였다. 청중 없는 설교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듣지 못했을 것이다. 바쁜 발걸음은 그 설교를 밟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설교는 분명했다. 인간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깊다. 가난한 자리에도 영혼의 왕국은 세워질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금박 성경에만 머물지 않는다. 겉장 떨어진 영어 성경 한 권 속에서도 살아 숨 쉰다. 어쩌면 그 노인은 우리에게 묻고 있었는지 모른다.

당신의 곁에는 무엇이 놓여 있는가. 당신이 가장 힘든 밤에 펼치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의 영혼을 아직 살려 두는 문장은 무엇인가.

집으로 돌아와서도 그 장면이 오래 떠나지 않았다.

허리 굽은 노인. 박스 서너 장. 겉장 떨어진 영어 성경. 돋보기. 낡은 영어 사전.

그것들은 가난의 목록이면서 동시에 은혜의 목록이었다. 서울역 지하도는 그날 잠시 예배당이 되었다. 벽은 제단이 되었고, 종이박스는 낡은 기도방석이 되었으며, 노인의 손에 들린 성경은 촛불이 되었다. 사람들은 무심히 지나갔다. 그 무심함 속에서도 한 사람의 영혼은 말씀을 읽고 있었다. 그 앞에서 고개가 숙여졌다. 누가 누구보다 위에 있는가.

누가 누구를 가르칠 수 있는가. 누가 누구를 불쌍히 여길 수 있는가.

가난한 노인이 나를 가난하게 만들었다. 그의 빈손이 내 마음의 빈 곳을 보게 했다. 그의 낡은 성경이 내 안의 새것 같은 허영을 부끄럽게 했다. 그의 돋보기가 내 눈의 어두움을 비추었다.

성자 걸인.

그 말은 그를 높이려는 말이기보다, 그 앞에서 내가 낮아졌다는 고백에 가깝다. 세상은 그를 지나쳤다. 하늘은 그를 지나치지 않았을 것이다. 낡은 성경 한 권을 곁에 두고 하루를 견디는 사람. 그는 지하도 구석에 앉아 있었으나, 어쩌면 가장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