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우리의 과거를 부르고, 예수님은 이름을 부르신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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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우리의 과거를 부르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이름을 부르신다
사람은 과거를 기억합니다. 한 번의 실패를 오래 기억하고, 한 번의 실수를 쉽게 잊지 않습니다. 세상은 사람을 이름으로 부르기보다 과거의 흔적으로 부르는 데 익숙합니다.
“실패한 사람.” “전과가 있는 사람.” “넘어진 사람.” “상처 입은 사람.”
과거는 어느새 한 사람의 이름이 되어 버립니다. 세상은 낙인을 기억하지만, 하나님은 존재를 기억하십니다.
성경은 이 진리를 수없이 증언합니다. 모세는 살인자의 과거를 안고 광야로 도망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의 죄를 먼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하나님은 그의 과거가 아니라 그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사무엘상의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들판에서 양을 치는 어린 목동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을 보셨습니다.
세상은 현재의 모습을 보았고, 하나님은 아직 피어나지 않은 미래를 보셨습니다. 신약으로 오면 더욱 선명해집니다. 세리 삭개오는 탐욕의 상징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죄인이라 불렀습니다. 예수님은 뽕나무 아래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야.”
주님은 죄인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은 돌을 맞아야 할 죄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죄를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가능성을 바라보셨습니다. 베드로 역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라면 배신자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그의 실패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은 다시 그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와 대화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넘어짐으로 자신을 정의합니다. 하나님은 다시 일어섬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렇게 전합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 말씀에는 놀라운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군중 속 한 사람을 부르지 않으십니다. 수많은 사람 가운데 바로 ‘나’를 아십니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존재를 안다는 뜻이며, 존재를 안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은 사람의 이력을 읽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심장을 읽으십니다. 세상은 지나온 발자국으로 사람을 판단합니다. 하나님은 앞으로 걸어갈 길을 바라보십니다. 하여, 믿음은 과거를 지우는 일이 아닙니다. 과거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더 크게 믿는 일입니다.
우리 삶에도 넘어짐은 있습니다. 후회가 있고, 눈물이 있으며,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상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오늘도 과거의 이름으로 우리를 부르지 않으십니다.
실패자라고도, 죄인이라고도, 패배자라고도 부르지 않으십니다. 사랑하는 자녀라고 부르십니다. 그 이름 속에는 용서가 있고, 회복이 있으며, 새로운 시작이 있습니다.
씨앗은 흙 속에 묻혀 있다고 자신의 생애가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겨울나무는 잎을 잃었다고 자신의 계절이 끝났다고 절망하지 않습니다. 창조주께서 그 안에 숨겨 놓은 생명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과거는 우리의 운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우리의 운명입니다. 세상은 오늘도 우리의 상처를 기억할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그 음성을 듣는 순간 사람은 비로소 과거의 포로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약속을 향해 걸어가는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인생은 과거가 결정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 이름을 부르시는 순간부터 새롭게 시작되는 은혜의 이야기입니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