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조지아 오키프 ― 본질을 향해 홀로 걸어간 한 예술가의 증언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조지아 오키프  ― 본질을 향해 홀로 걸어간 한 예술가의 증언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조지아 토토 오키프(1887년 11월 15일 미국 위스콘신 주 선 프레리 출생, 1986년 3월 6일 사망

조지아 오키프

― 본질을 향해 홀로 걸어간 한 예술가의 증언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조지아 토토 오키프(1887년 11월 15일 미국 위스콘신 주 선 프레리 출생, 1986년 3월 6일 뉴멕시코 산타페에서 서거)는

미국 현대미술의 지형을 바꾸어 놓은 단단한 영혼의 화가였다.

그녀의 삶은 화려한 무대나 미술계의 스포트라이트에 기대지 않았고,

오직 “나의 눈으로 본 세계는 내가 그리는 세계”라는 단일한 신념으로 구축되었다.

평생을 통틀어 유행이나 평가에 흔들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키프는 예술가라기보다 하나의 원리처럼 존재했다.

20세기 초, 여성 예술가에게 주어진 세상의 시선은 결코 관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키프는 그 어떤 틀에도 자신을 맞추지 않았다.

그녀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외부의 비난이 아니라,

자신을 속이는 행위였다.

그녀는 자신의 시선과 감각을 지키는 일을 생의 중심 좌표로 삼았다.

스스로를 미술사적 틀에 넣어 해석하려는 이들에게조차

그녀는 단호히 말했다.

“나는 그저 내가 보는 것을, 내가 느끼는 방식으로 그릴 뿐이다.”

이 간명한 문장은 그녀의 생애·가치관·작품 미의식을 모두 요약한다.

교사의 길을 걷던 젊은 시절, 그녀는 이미 ‘단순화’라는 예술적 원칙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모사하는 일에 흥미를 잃은 그녀는

보이는 형태를 최대한으로 비우고 압축해

그 안의 본질적 리듬만 남기려는 실험을 계속했다.

이러한 탐구는 뉴멕시코로 건너가면서 절정에 도달한다.

1929년, 그녀는 뉴멕시코의 사막과 산, 건조한 바람, 대지의 균열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이후 오키프는 삶의 대부분을 뉴멕시코 애버큐키와 고스트 랜치, 아비큐 지역에서 보냈고,

그곳에서 ‘페달런트 산(Pedernal)’을 마주한다.

그녀는 이 산을 가리켜 이렇게 선언했다.

“내가 죽으면 가져가도 좋을 만큼 나의 산이다.”

이 말은 소유가 아니라 귀속의 고백이었다.

그녀에게 산은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비추어 주는 정신의 거울이었다.

바람이 지나간 흔적, 햇빛의 결, 암석의 침묵—

그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본질의 형태였다.

꽃 그림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이 “여성적”이라 말할 때,

오키프는 외려 꽃 속 깊은 심연을 들여다보며

그 내부가 지닌 긴장과 울림을 거대한 화면으로 확대했다.

그녀는 말한다.

“사람들은 제대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보도록 크게 확대한다.”

여기에는 그녀의 미의식이 정교하게 담겨 있다.

세상은 너무 빨리 움직이고,

사람들은 너무 쉽게 지나친다.

그러므로 예술은

‘가려진 본질을 다시 보여주는 일’이어야 한다는 것이

오키프의 분명한 입장이었다.

미술계는 그녀에게 ‘아메리칸 모더니즘의 어머니’라 이름 붙였지만

정작 오키프는 그런 칭호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눈이 가리키는 방향을 잃지 않는 일이었다.

색채는 절제되어야 하고,

형태는 단순해야 하며,

감정은 과장되어서는 안 된다는

내면의 규율을 평생 유지했다.

1986년 3월 6일,

9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오키프는 자기만의 속도로 세계와 대화했다.

그녀의 작품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은 단순하다.

“자기만의 눈을 지키는 사람은, 어떤 시대에도 자기만의 산을 갖는다.”

세상은 비교와 속도를 요구하며

끊임없이 우리의 시선을 흔든다.

그러나 오키프는 혼란 속에서도

자기만의 바라봄으로 세계를 단단히 붙들어냈다.

본질을 보는 눈,

본질을 지키는 삶,

본질을 향해 단 하나의 줄기로 걸어간 의지—

이것이 그녀가 남긴 가장 투명한 유산이다.

그녀의 고요한 화폭 앞에서

우리 또한 깨닫는다.

세상은 바뀌지 않아도,

우리가 바라보는 방식이 바뀌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것을.

조지아 오키프는 결국,

세계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새롭게 그린 화가였다.

조지아 오키프에게 바치는 헌시

― 대지의 침묵을 색으로 번역한 영혼에게

바람의 속도가 마음을 스칠 때

당신은 그 미세한 떨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붓끝으로 붙잡았다.

세상이 말하지 않는 것들,

말하지 못해 사라지는 것들을

당신은 고요의 안쪽에서 데려와

빛의 형태로 다시 세웠다.

꽃잎 한 장이 열릴 때

우리는 그 안에 작은 향기만 보았지만

당신은 그 깊은 곳에서

우주의 맥박이 뛰는 것을 보았다.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크게 들린다는 사실을

당신은 우리 대신 오래 듣고 있었다.

사막의 먼지와 바람이 스치던 언덕,

페달런트 산의 묵은 침묵 앞에서

당신은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배웠고

그 중심으로 세계를 응시했다.

산은 당신의 그림자를 품고

당신의 영혼을 오래 기억해

지금도 서쪽 하늘 아래

당신을 부르고 있다.

당신의 색채는 목소리였다.

말하지 않아도

대지는 당신의 언어가 되었고

하늘은 당신의 은유가 되었고

시간은 당신의 붓 터치를 따라

조용히 빛의 결을 배웠다.

당신의 삶은

아무것도 크게 꾸며지지 않았지만

어떤 생애보다 넓게 펼쳐져 있었다.

당신은 말없이 가르쳤다.

자기만의 눈을 지키는 사람이

가장 멀리까지 날아가는 법을.

이제 당신이 사랑하던 산과 바람이

당신의 묵묵한 영혼을 대신해

우리에게 속삭인다.

“제대로 보라.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당신의 그림 앞에서

우리는 한 번 더 배운다.

세계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사람만이

새로운 빛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조지아 오키프여,

당신의 침묵은 지금도 밝게 울린다.

당신을 따라 걷는 이들에게

대지의 숨결은 여전히

새로운 색을 빚어 주고 있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