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오지윤 화백 ㅡ해가 지지 않는 바다의 마음 — 오지윤 화백 예술의 심연과 광휘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오지윤 화백 ㅡ해가 지지 않는 바다의 마음  — 오지윤 화백 예술의 심연과 광휘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오지윤 화백과 그의 작품

해가 지지 않는 바다의 마음

— 오지윤 화백 예술의 심연과 광휘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해가 지지 않는 바다는 외롭지 않다. 어둠이 밀려와도 그 밑바닥에서는 언제나 빛이 태어나기 때문이다. 오지윤 화백의 회화 세계는 바로 그 심해의 탄생지에서 비롯된다. 그는 색을 칠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의 결을 바다처럼 흔들어 빛으로 이끌어 올리는 수행자다.

그의 작업 앞에 서면 우리는 한 폭의 화면이 아니라 ‘깊이’와 만난다. 색은 그의 손에서 더 이상 시각의 요소가 아니라, 마음을 꺼내 보이는 또 하나의 신체가 된다.

그 시작은 놀랍도록 소박했다. 10여 년 전, 깊은 산사의 새벽 마당. 모두가 잠든 한겨울, 동자승 하나가 싸리빗자루를 끌며 마당을 쓸던 그 흔적. 어둠을 깨우던 빗질 소리는 파도였고, 싸리비 끝에서 떨리던 잔울림은 묵언 수행자의 숨결이었다.

작가는 그 순간을 ‘심해의 울림’이라 불렀다. 소년의 삶을 묻는 연민과, 싸리결 사이로 번지던 평온이 하나로 겹치던 찰나. 바로 그 떨림이 훗날 그의 전 작업의 원형이 되었다.

그의 화면을 덮는 수천, 수만 번의 붓질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바람이 모래를 깎아 지형을 만들고, 파도가 바위를 두드려 결을 빚는 것처럼, 오지윤의 붓은 색을 쌓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켜켜이 눕힌다. 색의 농담濃淡, 방향, 압력은 모두 호흡이며, 화면 전체는 거대한 명상일지에 가깝다. 특히 깊은 청색은 그가 사랑하는 색이다.

이 청색은 단순한 안료顔料의 농도가 아니라 인간 마음의 가장 낮고 깊은 층위를 비추는 심해의 빛이다. 어둠보다 더 어둡고, 빛보다 더 빛나는 그 음영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침묵을 다시 듣게 된다.

때로는 화면 전체가 붉게 변모한다. 농익은 선혈에 가까운 붉음이, 관람자의 깊은 곳을 건드리는 이유는 그 색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기억’의 울음이기 때문이다. 아픈 과거를 감추지 않고 끌어올린 붉음은 오히려 치유의 온도로 작용한다.

작가가 말한 하이퍼그라피아의 시간—밤낮 없이 그림을 그려야 하는 충동의 계기—는 바로 이 붉음에서 새로운 언어가 되었다. 고통을 그리다 고통을 넘어서는 순간, 그는 비로소 작가로서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다시 태어났다.

그의 작품 아래에는 항상 ‘그물’이 있다. 화면을 지탱하는 최초의 저층에는 베드로의 그물망이 깔린다. 이는 단순한 밑그림이 아니라 신앙의 구조이자, 인간 존재의 원형을 상징하는 기초다. 삶이라는 바다에서 놓치는 것을 받아내는 그물, 길 잃은 영혼을 끌어올리는 그물, 절망을 붙들어 희망으로 전환하는 그물. 그물 아래서부터 작업은 시작되고, 그물 위로 색과 시간과 사유가 도란도란 쌓여 간다.

홍가이 박사가 그를 ‘단순한 서양화를 넘어 독보적인 현대미술가’라 명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지윤 화백의 화면은 서구의 조형 언어 위에 동양의 수행과 기독교적 영성靈性이 결합한 드문 형태의 예술적 혼성이다.

그의 작품에서 종종 등장하는 한지는 단순한 재료적 선택을 넘어 세계관의 확장이다. 한지는 숨 쉬는 종이며, 빛을 안쪽에서 발광시키는 신비한 물성의 기록지다. 작가의 청색과 붉음은 한지에 닿는 순간, 더 이상 표면의 색이 아니라 ‘스며드는 색’으로 변모한다. 한지는 빛을 흡수하고 다시 밀어내며, 색의 결을 깊게 파고든다. 그 위에 마지막으로 얹히는 순금의 화룡점정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그것은 깊고 어두운 심연을 지나온 이들에게 건네는 희망의 제단이며, 절박한 삶의 파도 위에 떨어지는 마지막 빛이다.

순금은 그렇게 ‘구원의 잔광’이 된다.

작가의 작업은 결국 하나의 명제에 닿는다. “어둠의 바다에도 빛은 지지 않는다.” 그의 캔버스는 파도처럼 흔들리고, 심해처럼 깊어지며, 빗질처럼 고요하게 묻힌다. 파도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삶도 그러하다. 오지윤의 회화는 절망의 시간을 지나 새로운 생을 이끌어 올리는 그물이고, 마음이 다시 빛을 기억하도록 이끄는 통로이다.

오지윤 화백의 노정은 화가의 여정이 아니라, 인간존엄의 노정이다. 상처에 빛을 얹고, 고통에 색을 더하며, 이름 없는 이들의 침묵마저도 한 폭의 바다로 승화시키는 길. 그래서 그의 작품은 ‘그림’이 아니라 ‘생의 복원’이다. 그의 화면 앞에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 대답은 어쩌면 이미 그의 그림 속에 있다.

해가 지지 않는 바다에서, 아직 지지 않은 마음에서.

오지윤 화백의 해가 지지 않는 그림 앞에서

청람 김왕식

당신의 붓끝에서

바다가 다시 태어난다

어둠보다 먼저 흔들리는

심해의 숨결이

한지 결 사이로 조용히 번져간다

싸리빛 새벽을 쓸던

어린 동자의 마음처럼

당신의 화면에는

말보다 먼저 울리는

고요한 파도 소리가 있다

수천 번 겹쳐 올린 호흡 위로

한 줄기 빛이 내려앉는다

삶의 그물 아래 놓였던

인연의 상처들이

그 빛 하나에 조용히 풀려간다

짙은 푸른빛을 건너

당신은 더 깊은 층으로 나아간다

그곳에서 만난 어둠은

끝이 아니라

빛이 머물 자리를 찾는 새벽의 초입이다

때로는 붉다

심장에서 막 길어 올린

뜨거운 생의 결이

캔버스 위에서

묵언처럼 타오른다

그 붉음 끝에서

잃었던 시간이

다시 반짝인다

마침내

순금 한 점이 화면에 내려앉는 순간

침몰하던 하루가 조용히 떠오른다

절망의 파도 끝에

빛이 어떻게 머무는지

당신의 작품은

오래도록 일러준다

해가 지지 않는 바다는

멀리 있지 않다

당신의 손끝,

당신의 숨결

그리고 건져 올린

그 깊은 고요 속에 있다

오늘도 당신의 그림 앞에서

한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바다가 되는지 드러난다

어둠의 심연에서 길어 올린 빛이

인간 존엄의 마지막 등불처럼

아직,

지지 않고 있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