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꽃으로 흘린 눈물 ― 김계희 〈여름에 스며드는 봄〉을 보다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꽃으로 흘린 눈물 ― 김계희 〈여름에 스며드는 봄〉을 보다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이태환 목사님

꽃으로 흘린 눈물

― 김계희 〈여름에 스며드는 봄〉을 보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청담동 이림 아트 하우스.

김계희 화백의 개인전 〈여름에 스며드는 봄〉에서 한 작품 앞에 이르러 발걸음이 멈췄다. 화면은 환했다. 그러나 그 밝음은 햇살처럼 가볍게 내려앉은 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랜 밤을 통과한 뒤에야 얻은 빛, 어둠을 기억하는 빛이었다. 꽃들은 피어 있었지만, 그 뿌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십자가의 그림자를 붙들고 있었다.

그 순간 함께한 이태환 목사가 조용히 말했다.

“저것은 꽃이 아니라, 십자가의 눈물입니다.”

그 말은 해석이 아니라 계시처럼 들렸다. 설명이 아니라, 이미 마음 깊은 곳에서 알아보는 인식에 가까웠다.

십자가 위의 예수는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침묵은 가장 깊은 언어가 되었고, 그 언어는 눈물이 되어 흘렀다. 그 눈물은 억울함도, 포기의 흔적도 아니었다. 끝내 인간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단, 사랑이 스스로를 낮추는 마지막 몸짓이었다. 김계희의 그림 속 꽃은 바로 그 눈물이 땅에 닿은 이후의 모습이다. 상처로 굳지 않고, 절망으로 말라붙지 않고, 꽃으로 변형된 눈물. 이는 슬픔의 장식이 아니라, 사랑이 끝까지 자신을 내어준 결과다.

이 작품의 꽃들은 막 피어난 존재가 아니다. 이미 많은 시간을 건너온 존재들이다. 색채는 화사하지만, 그 화사함 아래에는 오래 견뎌온 밤의 결이 숨어 있다. 채찍이 지나간 자리, 못이 박힌 자리, 외면과 조롱이 겹겹이 쌓인 시간을 통과한 뒤에야 가능한 색이다. 그래서 이 꽃들은 장식이 아니라 증언이다. 말없이 서서, 그러나 분명하게 말한다. 버려지지 않았다고. 사랑은 찢겨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여름에 스며드는 봄〉이라는 제목은 계절의 질서를 거슬러 흐른다. 봄은 원래 먼저 오지만, 이 봄은 여름 속으로 들어간다. 이미 뜨거워진 시간, 이미 상처가 남은 세계 안으로 조심스럽게 스며든다. 이는 부활이 고난을 삭제하는 사건이 아님을 말한다. 부활은 상처 위에 덧칠된 환희가 아니라, 상처를 품은 채 다시 시작되는 생의 호흡이다. 김계희의 회화는 이 지점에서 신학이 아니라 삶과 만난다.

이 그림 앞에 오래 서게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십자가를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말없이 가르친다. 눈물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다만 형태를 바꿀 뿐이라고. 눈물은 땅으로 스며들고, 시간과 만나 꽃이 된다고. 김계희의 〈여름에 스며드는 봄〉은 예수의 희생을 재현하지 않는다. 대신 그 사랑이 오늘의 세계에서 어떻게 숨 쉬며 살아남는지를 보여준다.

십자가에서 흘린 눈물은 지금도,

이렇게 조용히 꽃으로 피고 있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