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만월산 용연사 주지 설암 스님 '흙을 일구며 마음을 건너다'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흙을 일구는 설암 스님
■
흙을 일구며 마음을 건너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설암 스님을 이해하는 길은 사상이나 교리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한 인간이 어떤 시간을 통과해 왔는가, 그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그의 현재가 보인다. 그는 밀양에서 태어났다.
2남 3녀의 막내.
집안은 늘 소란했고, 사람 냄새가 짙었다. 말보다 행동이 먼저 나가는 집안이었다. 계산은 서툴렀으나 의리는 분명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눈치 빠른 아이가 아니었다. 대신 한 번 마음 준 사람을 쉽게 놓지 않는 아이였다. 잘 웃었고, 화도 숨기지 않았다. 삶은 그에게 미리 길을 깔아주지 않았다. 그는 늘 몸으로 부딪히며 길을 배웠다.
청년기의 그는 열혈이었다.
세상이 불합리하면 물러서지 않았고, 사람을 대할 때 요령을 부리지 않았다. 그 탓에 손해도 많았고 상처도 적지 않았다. 그는 삶을 회피하지 않았다. 패배 앞에서도 도망치지 않았고, 실패를 변명으로 감싸지 않았다.
그 시절의 그는 수행을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자기 몫의 삶을 정직하게 살아내고 있을 뿐이었다. 훗날 그의 말과 시에서 느껴지는 체온은, 바로 이 시절의 뜨거운 시간에서 비롯된다.
어느 해 늦여름,
그의 삶은 방향을 바꾸는 한 장면과 마주한다. 지인의 권유로 삼척 신흥사에 들른 날이었다. 땅을 구경하러 가는 길은 가벼웠다. 그날이 인생의 분기점이 되리라 그는 상상하지 못했다. 신흥사에서 만난 화광 스님은 말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들려준 봉암사 선방 이야기, 수행자의 일상, 절제된 침묵. 설명은 없었고 설득은 더더욱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설암은 그 자리에서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해가 기울어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밤이 깊어지자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그때 화광 스님은 말없이 책 한 권을 건넸다. “잠 안 오면 보시오.” 그것이 전부였다. 별이 쏟아질 듯한 여름밤, 설암은 홀로 앉아 책장을 넘겼다. 이해하려 애쓰지도 않았다. 그런데 한 단어가 그를 붙잡았다. ‘자성’. 밖에서 답을 찾던 시선이 안으로 꺾이는 순간이었다. 그날의 환희심은 번개처럼 왔다가 사라졌다. 깨달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다만, 이전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살 수 없겠다는 예감이 그를 흔들었다.
그의 선택은 극적인 출가담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세상을 버리고 도망치듯 산으로 들어간 사람이 아니다. 삶을 포기하지 않은 채, 삶을 통과해 수행으로 들어간 사람이다. 그의 수행에는 관념보다 생활이 먼저 자리한다.
강릉 만월산 자락의 용연사에 부임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절을 정비하기보다 땅을 고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텃밭이었다. 손으로 흙을 파고, 돌을 골라내고, 씨앗을 심었다. 비가 오면 비를 맞았고, 해가 뜨거우면 땀을 흘렸다.
시간이 쌓이며 밭은 넓어졌다.
어느덧 3천 평.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스님, 그만하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는 웃으며 흙을 털었다. “땅이 아직 말을 안 끝냈습니다.” 굴착기를 모는 그의 모습은 이질적이었지만, 동시에 상징적이었다. 설암 스님에게 수행은 좌선만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땅을 일구는 일은 마음을 대하는 방식과 닮아 있다. 억지로 누르지 않고, 성급히 결론을 내리지 않으며, 씨앗의 시간을 믿는 일이다.
마음
설암雪庵 스님
마음이란 놈은 제 멋대로다
엄마 뱃속 이전에도 그랬고 나와서도
그랬다
기쁘면 깔깔대고 화나면 시무룩하고
욕구에는 체면도 잊게 하는 그런놈을
우리는 부양하고 산다
인과도 모르고 불평하고
업보에는 인색한
마음이란 놈은 제멋대로다
지금 나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마음과 동거중이며
오늘도 우리는 마음이란 놈을 방목하며
살아간다
ㅡ 설암 스님 <마음> 전문
그는 마음을 다루듯 땅을 다룬다.
하여, 그의 시 <마음>에는 교훈이 없다. 통제의 언어도 없다.
대신 “도무지 알 수 없는 마음과 동거중”이라는 고백이 있다. 이는 패배가 아니라 결단이다. 마음을 없애려 들지 않고, 미워하지 않으며, 끝내 함께 살아내겠다는 태도. 이 시는 목적지가 아니라 흔적이다. 그가 살아온 시간의 침전물이다.
설암 스님의 삶에는 화려한 반전이 없다. 대신 지속의 힘이 있다. 매일 밭으로 나가고, 계절을 건너며, 알 수 없는 마음과 함께 하루를 견디는 삶. 실패도 있고 혼란도 있다.
그는 늘 자기 자리에 서 있다. 청년기의 의리는 수행자의 자비로 바뀌었고, 열혈은 묵묵함으로 깊어졌다.
그는 자신을 말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살아낸다. 그의 삶은 조용히 말한다. 수행은 삶을 떠나는 일이 아니라, 삶을 끝까지 책임지는 일이라고. 그 책임의 자리에 설 때 인간은 비로소 단단해진다고.
설암 스님의 이야기는 한 편의 소설 같다. 요란하지 않지만 오래 남는, 계절처럼 반복되며 깊어지는 인간의 서사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