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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보다 먼저 사람을 사랑한 학자 — 최용기 박사의 한글 정신 ㅡ 청람 김왕식

문자보다 먼저 사람을 사랑한 학자  — 최용기 박사의 한글 정신 ㅡ               청람 김왕식

문자보다 먼저 사람을 사랑한 학자

— 최용기 박사의 한글 정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두 시간 남짓 이어진 한글학자 최용기 박사(67)의 강의를 듣는 동안 숨을 고르지 못했다. 말은 쉼 없이 이어졌고, 강의실에는 시종 긴박한 열기가 감돌았다. 보통 강의를 들을 때 사람들은 시계를 본다. 지루해서다.

허나, 강의 내내 나는 서너 번이나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끝날까 두려워서였다. 아마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말이 흐르는 속도만큼 생각이 따라가느라 누구도 몸을 움직이지 못했고, 강의실은 어느 순간 하나의 호흡으로 묶여 있었다.

문자는 언제나 사람을 닮는다. 그것이 살아 있는 문자일수록 더 그렇다.

한글은 특히 그렇다.

한글은 단순한 기호의 집합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마음의 형상이며, 그 마음을 오래 붙들고 살아온 이들의 숨결 속에서 더욱 깊어져 왔다. 최용기 문학박사의 삶은 바로 그 숨결이 어떤 모습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조용히 증명해 온 시간이었다.

그의 한글 사랑은 선언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그것은 강의실에서, 산길에서, 기록 속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오래 천천히 자라난 것이었다.

종로에 소재한 (사)문화회 연구소에서 열린 그의 강의를 듣고 있으면, 한글은 더 이상 책 속의 대상이 아니라 눈앞에서 숨 쉬는 생명처럼 느껴졌다.

그는 한글을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한글이 걸어온 길을 함께 걷게 했다. 그 길 끝에서 만나는 것은 언제나 한 사람, 곧 백성을 향한 마음이었다.

그가 강의 중 남긴 한 문장은 오래 마음에 남는다.

“훈민정음은 글자이기 전에 사람에 대한 믿음이었다.”

이 말은 그의 학문 전체를 압축하는 문장처럼 들렸다. 그는 문자 체계를 해설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그 문자에 담긴 인간관과 세계관을 읽어내려 했다. 그의 연구와 강의는 언제나 같은 방향을 향했다. 한글을 아는 일이 아니라 한글을 이해하는 일, 더 나아가 한글을 사랑하는 일이었다.

최 박사의 한글 사랑은 특히 신미대사를 다시 불러낸 자리에서 더욱 또렷해졌다. 그는 속리산 복천암의 이야기를 통해 한글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또 어떻게 퍼져 나갔는지를 한 폭의 풍경처럼 펼쳐 보였다. 세종이 만든 문자와 신미가 퍼뜨린 문자는 분리된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이었다. 그 흐름을 그는 마치 오래된 강줄기를 따라가듯 천천히 짚어 나갔다. 강의실에 앉아 있던 이들은 어느 순간 듣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걸어가고 있다는 감각에 사로잡혔다.

그의 학문은 늘 사람에게로 돌아왔다.

강의가 끝난 뒤에도 그는 질문을 피하지 않았다. 외려 더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누군가 신미의 역할을 물었을 때 그는 단정하지 않았다.

“역사는 이해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며 한 발 물러섰다. 또 한글의 과제를 묻는 질문에는 “지키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 짧은 문장 속에는 그의 평생이 담겨 있었다.

함께 자리했던 이들의 반응은 그의 삶을 비추는 또 다른 거울이었다.

서종환 《문학인 신문》 발행인(82)은 그를 두고 ‘학문과 실천이 만난 보기 드문 학자’라고 말했다.

600 만 베스트셀러 《우담바라》의 작가 남지심 소설가(82)는 ‘평생 한글을 써 왔지만 그날 처음으로 한글을 새롭게 보았다’고 고백했다.

이어도문학회 황성구 회장(70)은 ‘최 박사야말로 진정한 한글 전도사이자 한국 문단에 중추적 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훌륭한 사람’이라고 극찬했다.

이 말들은 서로 다른 자리에서 나온 것이었지만 결국 같은 지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최용기라는 이름은 학문 이전에 태도였고, 연구 이전에 사랑이었다.

그의 한글 사랑은 화려하지 않았다. 외려 소리 없이 스며드는 가랑비처럼 조용했다. 그러나 그 조용함은 오래 남았다. 그의 강의를 들은 이들이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말이 끝난 뒤에도 남아 있는 것은 언제나 말의 온기였기 때문이다.

한글은 백성을 향해 만들어진 문자였다.

최용기 박사는 그 사실을 머리로가 아니라 삶으로 보여 주었다. 그는 한글을 연구하면서 동시에 한글처럼 살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다리처럼, 말과 말 사이를 잇는 숨결처럼.

하여, 그의 한글 사랑을 기린다는 것은 단지 한 학자의 업적을 기리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문자 속에 담긴 인간의 마음을 다시 바라보는 일이며, 우리가 어떤 말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다시 묻는 일이다.

한글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 생명은 여전히 우리에게 묻고 있다.

문자를 쓰는 우리는 과연 사람을 향하고 있는가.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