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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짚고 선 사명 — 이기우 목사의 목회 노정에 대한 소고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고통을 짚고 선 사명  — 이기우 목사의 목회 노정에 대한 소고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고통을 짚고 선 사명

— 이기우 목사의 목회 노정에 대한 소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Ⅰ. 들어가는 말 — 선택이 아닌 부름의 길

한 인간의 생애를 규정하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선택이다. 그러나 모든 선택이 동일한 무게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선택은 계산과 판단의 결과로 이루어지지만, 어떤 선택은 이미 오래전부터 내면 깊은 곳에서 준비되어 있다가 마침내 표면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그것은 선택이라기보다 응답에 가깝다. 이기우 목사의 삶이 바로 그러한 경우다.

1982년 2월, 강남대학교 신학과를 차석으로 졸업한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학문적으로도 준비되어 있었고, 충분히 안정된 길을 모색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오히려 비어 있는 자리로 향했다. 그 계기가 된 것은 소설가 심훈의 《상록수》였다. 한 편의 문학 작품이 한 인간의 삶을 바꾼다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에게 『상록수』는 단순한 감동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묻는 질문이었고, 동시에 그 질문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는 스스로 다짐한다. 앞으로 목회를 하게 된다면 교회가 없는 농촌으로 가겠다고. 이 결심에는 어떤 현실적 계산도 개입되지 않는다. 오히려 불편과 어려움이 예견된 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택한 것은, 그에게 목회가 ‘좋은 조건에서 시작하는 일’이 아니라 ‘필요한 자리에서 시작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그의 삶은 이미 일반적인 진로 선택의 범주를 벗어난다. 그것은 직업의 선택이 아니라 존재의 방향을 정하는 일이었고, 생계를 위한 일이 아니라 부름에 대한 응답이었다.

이러한 선택은 결과를 예측하지 않는다. 외려 결과를 내려놓는 데서 시작된다. 그래서 그의 출발은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그 점에서 그의 길은 더욱 분명해진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감당하기 위해서 시작된 길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을. 그러나 동시에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길이 자신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결국 이기우 목사의 출발은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인간은 무엇에 의해 자신의 길을 결정하는가. 조건인가, 능력인가, 아니면 내면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부름인가. 그의 선택은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분명한 답이 된다. 그는 유리한 길이 아니라 필요한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이후의 모든 시간을 규정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Ⅱ. 가운뎃말

1.시작 —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서 세운 교회

그가 처음 발을 디딘 곳은 양주시 용암리였다. 개발이 제한된 그린벨트, 군사시설 보호구역이라는 조건은 인간의 삶이 머물기에는 불편하고, 무엇을 새로 시작하기에는 더더욱 적합하지 않은 공간이었다. 사람의 왕래는 드물었고, 마을의 시간은 도시보다 훨씬 느리게 흘렀다. 그곳에 남아 있던 것은 오래 비어 있던 집 한 채, 그리고 아직 채워지지 않은 시간뿐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비어 있음이 그의 시작이 되었다.

그 빈집 사랑방이 교회가 되었다. 의정부침례교회 최은석 목사가 손수 합판으로 짜준 강대상은 물질적으로 보자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목재도 아니었고, 화려한 장식도 없었다. 그러나 그 위에 놓인 말씀은 그 어떤 장엄한 예배당의 강단보다 무거웠다. 공간이 작았기에 말씀이 더 가까이 닿았고, 형식이 단순했기에 본질이 더 또렷해졌다.

삭월세 8천 원의 사랑방에서 드린 4월 11일 부활절 예배는 규모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그것은 교회가 세워졌다는 사실보다, ‘말씀이 머무는 자리’가 시작되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아무것도 갖추어지지 않은 자리에서 드린 예배는 오히려 가장 본질적인 형태의 예배였다. 사람의 손으로 채워진 것이 아니라, 필요와 믿음이 만들어낸 자리였기 때문이다.

이어 5월 3일, 목사들과 성도들이 함께 드린 입당예배는 건물의 완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공동체의 탄생이다. 교회는 건축물로 세워지지 않는다. 사람이 모이고, 그 마음이 하나의 방향을 향할 때 비로소 교회는 형성된다. 그날의 예배는 눈에 보이는 완성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결속의 시작이었다.

이후의 변화는 자연스러웠다. 주일학교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중고등부 학생들이 자리를 채웠으며, 인근 부대의 병사들까지 발걸음을 옮겼다. 이것은 단순한 숫자의 증가가 아니다. 그것은 ‘필요한 자리’가 생겼을 때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오는 현상이다. 그곳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끌림이 있었고, 그 끌림은 곧 공동체를 이루는 힘이 되었다.

특히 성탄절이 되면 용암리뿐만 아니라 인근 다른 마을에서도 학생들이 모여들어 하나의 축제가 이루어졌다. 이는 단순한 행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교회가 특정 종교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의 삶 속으로 스며들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교회는 더 이상 외부에서 세워진 구조물이 아니라, 그 마을 사람들의 일상과 감정 속에 자리 잡은 중심이 되었다.

대지 172평을 구입하고, 그 위에 60평의 사택과 교회를 건축한 일은 분명 외형적 성장의 지표다. 눈에 보이는 확장이 이루어졌고, 환경은 이전보다 안정되었다. 그러나 이 변화가 본질을 바꾸지는 않았다. 오히려 처음의 빈집 사랑방에서 시작된 밀도와 집중은 그 이후의 모든 확장을 지탱하는 뿌리가 되었다.

시작이 작았기에, 그 시작은 흔들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서 시작했기에, 무엇이 본질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확장은 단순한 증가가 아니라 깊이의 확장이었다. 이기우 목사의 초기 목회는 규모로 평가할 수 없다. 그것은 ‘어디에서 시작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태도로 시작했는가’로 이해해야 한다.

용암리에서의 시작은 하나의 상징으로 남는다. 조건이 아니라 필요가, 환경이 아니라 부름이 교회를 세운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실은 이후의 모든 여정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기준으로 작용한다.

  1. 확장 — 기쁨과 사명의 교차

청학리 상가교회로의 이전은 단순한 공간 이동이 아니다. 그것은 한 목회 여정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전환점이다. 용암리에서의 시작이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서의 응답’이었다면, 청학리에서의 사역은 그 응답이 어떻게 확장되고 지속되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이다. 낡은 사랑방에서 시작된 공동체가 보다 넓은 공간으로 옮겨가는 일은 외형적으로는 자연스러운 성장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더 깊은 질문이 놓여 있다. 교회는 커질수록 무엇을 잃지 말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장년과 청년 100여 명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분명 눈에 보이는 부흥의 결과였다. 사람들은 모여들었고, 예배의 자리는 채워졌으며, 사역의 범위는 넓어졌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숫자의 증가가 아니다. 오히려 그 숫자를 가능하게 한 흐름이다. 목회는 어느 순간의 성취로 완성되는 일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관계와 책임의 연속이다. 숫자는 결과이지만, 흐름은 본질이다.

이 시기의 기쁨은 단순한 성취감으로 환원될 수 없다. 그것은 처음 용암리에서 품었던 결단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아무도 찾지 않던 자리에서 시작한 사역이 이제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 그 사실은 단순한 성공이 아니라 ‘부름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나는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래서 그 기쁨은 들뜸이 아니라 조용한 확신에 가까웠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또 다른 긴장이 시작된다. 공동체가 성장할수록 목회는 더 복잡해지고, 관계는 더 섬세한 균형을 요구한다. 사람의 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이 채워진다는 뜻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과 생각, 상처와 기대가 한 자리에 모인다는 의미다. 목회자는 더 이상 한 사람 한 사람을 단순히 만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관계들 사이에서 흐름을 유지해야 하는 책임을 짊어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목회는 점점 더 ‘지속의 기술’이 된다. 처음의 열정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시간들이 쌓이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예배, 이어지는 상담, 끝나지 않는 돌봄 속에서 목회자는 자신을 끊임없이 비워내야 한다. 그래서 이 시기의 확장은 외형적 성장과 동시에 내면의 소진 가능성을 함께 품고 있다. 기쁨과 부담이 동시에 존재하는 자리, 그것이 바로 이 단계의 본질이다.

더욱이 인간의 시간은 언제나 예기치 않은 균열을 품고 있다. 아무리 안정되어 보이는 흐름이라도 그 안에는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요소가 잠재해 있다. 목회 역시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사람을 다루는 일이기에 그 불확실성은 더 크다.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갈등, 예상치 못한 사건들, 그리고 무엇보다 목회자 자신의 한계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흔들림의 유무가 아니다. 흔들림을 어떻게 견디고 통과하느냐가 본질이다. 청학리에서의 확장은 단순히 ‘잘된 시기’로만 기억될 수 없다. 그것은 기쁨과 긴장이 동시에 교차하는 시간이며, 사명이 점점 더 깊은 층으로 내려가는 과정이다. 처음에는 외부를 향해 확장되던 사역이 이제는 내면을 향해 수렴되기 시작하는 단계이기도 하다.

이 시기의 의미는 하나로 정리된다. 목회는 성취가 아니라 지속이라는 사실이다. 한 번의 결단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 매일의 선택으로 이어지는 삶이다. 청학리에서의 시간은 그 사실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낸다. 사람은 모였고 공동체는 확장되었지만, 그 중심에는 여전히 처음의 질문이 남아 있다. 왜 이 길을 시작했는가. 그리고 지금도 그 이유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이 사라지지 않는 한, 확장은 방향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이 시기의 기쁨은 단순한 성공이 아니라, 사명이 더욱 단단해지는 과정으로 남는다.

□ 이기우 목사님과 사모님

  1. 위기 — 몸의 붕괴, 사명의 지속

50대 초반, 갑작스러운 뇌경색. 왼쪽 팔다리의 마비. 이 사건은 단순한 질병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한 인간이 구축해 온 삶의 리듬과 방향,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인식 전체를 뒤흔드는 근본적인 균열이다. 이전까지 몸은 사역을 수행하는 도구였고, 의지는 그 도구를 움직이는 중심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 몸은 더 이상 자유로운 도구가 아니었고, 의지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할 수 없게 된다. 인간은 비로소 자신이 의지의 주인이 아니라 조건 속에 놓인 존재임을 절감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많은 것이 멈출 수 있었다. 아니, 멈추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그의 삶은 다른 방향을 선택한다. 18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팡이를 짚고 사역을 이어왔다는 사실은 단순한 인내나 의지력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그만둘 수 없는 이유’가 존재한다는 증거다. 사명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의 근거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사역을 지속한 것이 아니라, 사역 속에서 계속 살아 있었다.

몸의 붕괴는 동시에 삶의 본질을 드러내는 계기가 된다. 건강할 때의 사역은 능력에 의존한다. 계획하고 실행하며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힘을 확인한다. 그러나 병든 이후의 사역은 전혀 다른 차원에 놓인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남아 있는 것은 ‘해야 한다’는 의지보다 ‘살아야 한다’는 존재의 결이다. 이때 사역은 일이 아니라 삶 그 자체가 된다.

그는 더 이상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살아내는 사람’이 된다. 강단에 서는 일, 한 걸음을 옮기는 일, 한 문장을 끝까지 말하는 일조차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기능의 수행이 아니라 존재의 증명이다. 그래서 그의 사역은 이전보다 작아졌을지라도, 그 밀도는 오히려 더 깊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목회의 본질을 다시 묻게 한다. 목회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능력인가, 성과인가, 아니면 존재 자체인가. 그의 삶은 이 질문에 대해 하나의 분명한 답을 제시한다. 목회는 결국 ‘어떻게 사는가’의 문제이며, 그 삶이 지속되는 한 사명도 함께 지속된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 시기는 인간의 한계를 직면하는 시간이다. 이전에는 외부의 조건과 싸웠다면, 이제는 자신의 몸과 시간을 감당해야 한다. 하루의 길이가 달라지고,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줄어드는 현실 속에서 그는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을 조정해야 했다.

그러나 바로 그 과정에서 그는 또 다른 형태의 깊이에 도달한다. 빠르게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멈추지 않고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우게 된 것이다.

이 위기는 파괴가 아니라 재구성의 과정이었다. 몸은 무너졌지만, 그 무너짐 속에서 사명은 더 선명해졌다. 이전에는 확장과 성장을 통해 드러났던 사역이 이제는 지속과 견딤을 통해 드러난다. 그리고 그 견딤은 단순한 버팀이 아니라, 존재를 통해 증명되는 신앙의 형태가 된다.

그의 삶은 하나의 역설로 남는다. 약해졌기에 더 분명해졌고, 줄어들었기에 더 깊어졌다. 그래서 이 위기는 실패의 장면이 아니라, 사명의 본질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난 순간이다. 인간의 힘이 줄어드는 자리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것, 그것이 바로 그의 목회를 지탱해 온 근원이었다.

  1. 기억 — 선교와 한계 사이

필리핀에서의 선교 집회는 이기우 목사의 삶에서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적 장면으로 남는다.

그것은 준비된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사역이 아니라, 부름에 응답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열렸던 길이었다. 영어 성경조차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현지 교회, God’s Children Church에서 이틀간 집회를 인도했다는 사실은 외형적으로 보면 부족과 불안의 조건에 가깝다. 그러나 그 시간은 오히려 그에게 목회와 선교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다시 확인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언어는 완전하지 않았고, 표현은 매끄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전달된 것은 언어의 정확성이 아니라 믿음의 진정성이었다. 선교는 준비된 말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온 삶과 내면의 확신에서 흘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틀의 집회는 능숙함으로 이루어진 시간이 아니라, 부족함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믿음의 전진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그 장면은 더욱 깊은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그는 그 경험을 단순한 추억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기억 위에서 다시 질문한다. 앞으로도 온 천하를 다니며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은 과거의 열정을 반복하려는 의지가 아니라, 현재의 조건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는 물음이다. 몸은 이전과 같지 않고, 시간은 점점 제한되어 간다. 그 현실 앞에서 던지는 질문이기에 더욱 진실하다.

이 물음은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겸허에서 비롯된다. 인간의 가능성을 과신하지 않고, 자신의 한계를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나오는 질문이다. 젊은 시절에는 앞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열려 있었다면, 지금은 남아 있는 시간과 능력의 범위를 가늠하며 그 안에서 무엇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묻게 된다. 이 변화는 쇠퇴가 아니라 성숙의 과정이다.

선교는 더 이상 ‘얼마나 멀리 가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문제로 전환된다. 과거에는 물리적 이동이 선교의 중요한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존재 자체가 선교의 자리로 바뀐다. 그가 서 있는 자리, 그가 견디고 있는 시간, 그가 이어가고 있는 사역이 곧 하나의 증언이 된다. 그래서 선교의 의미는 확장이 아니라 깊이로 이동한다.

이 지점에서 필리핀에서의 기억은 더욱 선명해진다. 준비되지 않았던 상태에서도 길이 열렸던 경험은, 결국 선교가 인간의 준비보다 더 큰 영역에 속해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지금의 질문은 그 경험을 단순한 확신으로 소비하지 않고, 현재의 자리에서 다시 해석하려는 태도다. 기억과 현재가 충돌하지 않고, 서로를 비추며 더 깊은 이해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그의 질문은 하나의 본질로 수렴된다. 인간은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한계 속에서 무엇을 남길 수 있는가. 이 물음 앞에서 그는 답을 서두르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조용히 이어간다. 그것이 지금 그에게 허락된 가장 진실한 선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장면은 미완으로 남는다. 더 이상 멀리 떠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가 살아온 시간과 지금 살아내고 있는 삶은 이미 하나의 선교적 증언이 된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자리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깊이, 바로 그 지점에서 그의 사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Ⅲ. 맺음말

— 남겨진 것과 이어질 것

올해로 목회 46주년, 그리고 고희. 이 숫자는 단순한 연도의 누적이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견디고, 어떻게 선택하며, 어떻게 살아냈는지를 응축한 밀도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지지만, 그 시간이 어떤 의미로 남는지는 전혀 다르다. 이기우 목사의 시간은 지나간 기록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해서 의미를 생성하고 있는 살아 있는 시간이다.

그는 고희연을 생략하고 가족과 조용한 식사를 선택한다. 이 장면은 작아 보이지만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태도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요란함보다 본질, 형식보다 내용, 외부의 시선보다 내면의 진실을 택해 온 선택의 연속이 이 한 장면 속에 놓여 있다. 축하를 과장하지 않고 시간을 과시하지 않는 태도는, 그가 걸어온 길이 이미 스스로를 증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고백 속에서 반복되는 단어는 단순하다. 감사. 그러나 이 단어는 가볍지 않다. 그것은 형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통과하며 도달한 가장 본질적인 언어다. 아내와 가족, 함께 사역해 온 동료 목회자들, 기도로 동행해 준 수많은 이들에 대한 감사는 단순한 관계의 나열이 아니다. 그것은 혼자서는 결코 이어갈 수 없었던 시간에 대한 인식이며, 자신의 삶이 타인의 손길 속에서 유지되어 왔음을 받아들이는 고백이다.

이 감사는 살아남은 자의 언어다. 동시에 버텨낸 자의 증언이다. 고통을 통과하지 않은 감사는 얕고, 시간을 견디지 않은 고백은 쉽게 사라진다. 그러나 그의 감사는 병을 지나왔고, 한계를 견뎌냈으며, 포기하지 않은 시간 위에 놓여 있다. 그래서 이 언어는 조용하지만 무겁다.

이기우 목사의 삶은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목회는 무엇으로 지속되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직업적 고민이 아니라, 존재의 근거를 묻는 질문이다. 많은 조건들이 그를 멈추게 할 수 있었다. 환경은 결코 유리하지 않았고, 건강은 한순간에 무너졌으며, 시간은 점점 제한되어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역은 멈추지 않았다.

그 답은 그의 삶 속에 이미 놓여 있다. 목회는 환경으로 지속되지 않는다. 조건이 좋아서 이어지는 일이 아니다. 건강 또한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 오히려 건강이 무너진 이후에도 지속되는 것이 목회라면, 그것은 다른 근거 위에 서 있는 일이다. 결국 남는 것은 하나다. 포기하지 않는 내면의 부름. 그 부름이 사라지지 않는 한, 사명은 형태를 바꾸어 계속된다.

그래서 그의 삶은 완결되지 않는다. 하나의 업적으로 정리되거나, 특정한 시점에서 마무리될 수 있는 종류의 삶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으며, 여전히 진행 중이다. 과거의 시간은 이미 지나갔지만, 그 시간이 만들어 놓은 내면의 결은 현재를 지탱하고 있고, 그 현재는 다시 미래로 이어지고 있다.

그의 삶은 하나의 장면으로 남는다. 완성된 결론이 아니라, 계속 쓰여지고 있는 문장으로서의 삶. 그래서 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아직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ㅡ청람

□ 망중한을 즐기는 이기우 목사님

존경하는 이기우 목사님께

문득 어린 시절의 풍경이 떠오릅니다. 경기도 광주 오포, 하늘 아래 첫동네라 불리던 그곳에서 함께 자라던 날들이 아직도 또렷합니다. 넓지 않은 길과 낮은 집들, 계절이 오고 가는 소리를 그대로 품고 있던 마을에서, 우리는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시간을 나누었습니다. 그 시절의 기억 속에서 목사님은 늘 또렷한 인상을 남기던 분이셨습니다.

공부를 잘하셨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무엇보다 의협심이 강하고 정의로우셨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옳고 그름을 분명히 가르던 태도, 약한 이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던 마음, 그 모든 것이 이미 그때부터 한 사람의 길을 예고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태권도 유단자로서 단단한 기개를 지니셨고, 한때는 육군사관학교를 지망하시며 나라를 위한 길을 고민하시던 모습 또한 기억에 남습니다.

그러나 목사님께서는 결국 또 다른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칼과 명령의 길이 아니라, 말씀과 사랑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다른 길처럼 보이지만, 그 중심에는 변함없이 ‘정의’와 ‘책임’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이제야 깊이 깨닫게 됩니다. 나라를 지키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 목사님께서는 여전히 사람을 살리고 지키는 길 위에 서 계셨습니다.

목사님의 삶을 돌아보면, 그 길이 결코 평탄하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서 교회를 세우시고, 수많은 시간과 땀을 들여 공동체를 이루어 가셨습니다. 그리고 뜻하지 않은 병마 앞에서도 결코 사명을 내려놓지 않으셨습니다. 몸은 약해지셨지만, 그 안에 깃든 부르심은 더욱 또렷해졌습니다. 지팡이를 짚고서도 강단에 서시는 모습은 단순한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삶 전체로 증언하시는 신앙의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목사님께서는 이제 단순히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니라, ‘삶으로 말씀을 전하시는 분’이십니다. 말로 가르치기 이전에, 살아내심으로 보여주시는 그 신앙의 깊이는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이 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함께 뛰놀던 그 친구가 이제는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돌보는 선한 목자가 되셨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고도 감사한 일입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은 더 많은 것을 갖기보다, 더 본질에 가까워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사님의 삶은 점점 더 단순해지면서도 깊어지고 계십니다. 요란함을 멀리하고, 감사라는 언어로 삶을 채워가시는 모습 속에서 진정한 믿음의 결을 느끼게 됩니다.

목사님을 생각하면 한 문장이 떠오릅니다.

“사람은 자신이 걸어온 길로 말한다.”

목사님께서는 긴 세월을 통해 그 길을 묵묵히 걸어오셨고, 그 길 위에서 이미 많은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어떤 화려한 수식보다, 목사님의 삶 자체가 더 큰 설교가 되고 있습니다.

이제 고희를 맞으신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사명의 길 위에 서 계신 목사님께 깊은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남은 시간 또한 주님의 은혜 가운데 더욱 평안하시기를, 그리고 지금처럼 많은 이들에게 빛과 위로가 되어 주시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어린 시절 같은 하늘 아래에서 함께 자라난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지금은 목사님의 삶을 바라보며 배우는 한 사람으로서 깊이 감사드리며 이 글을 올립니다.

늘 강건하시고 평안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2026, 3, 20,

김왕식 드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