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부활절을 맞이하며 ㅡ신앙인으로서 다시 서는 자리 ㅡ청람 김왕식

부활절을 맞이하며 ㅡ신앙인으로서 다시 서는 자리  ㅡ청람 김왕식

부활절을 맞이하며

ㅡ신앙인으로서 다시 서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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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을 맞이할 때마다 마음은 먼저 조용해진다. 기쁨보다 앞서는 것은 경외이며, 확신보다 깊은 것은 다시 묻고자 하는 자세다. 오래 믿어 왔다고 여겼던 것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복음의 중심을,

이제는 겸허한 마음으로 다시 바라보게 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분명 역사적 사건이며, 신앙의 기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아는 데서 머문다면, 부활은 여전히 멀리 있는 이야기로 남는다. 신앙인은 그 사건을 믿는 데서 더 나아가, 그 부활이 오늘의 삶 속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주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보다, 그 생명이 지금 나를 어떻게 새롭게 하고 있는가를 돌아보는 일이 더 절실하다.

부활은 단지 죽음을 이긴 승리로만 이해되기보다, 이미 주어진 생명을 비로소 알아차리는 은혜로 다가온다. 여전히 숨 쉬고 있으면서도, 진정으로 살아 있다는 자각 없이 지나온 시간들이 있다.

그 무심한 날들 속에서 어느 순간, 주님의 생명이 나를 향해 조용히 문을 두드린다. 그때 비로소 깨닫게 된다. 생명은 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을 알아보는 데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이 깨달음은 외부에서 밀려오는 강한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마음 깊은 곳에서 서서히 번져가는 은총이다. 닫혀 있던 내면이 조금씩 열리고, 익숙했던 하루가 낯설게 다시 보이는 순간, 삶은 이전과 다른 결을 갖는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그 모든 것이 주님의 생명 안에 놓여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부활이 현재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부활절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나는 과연 살아 있는가. 믿음은 입술의 고백에 머물러 있는가, 아니면 삶의 방향을 바꾸고 있는가. 십자가 앞에서 나의 죄를 인정했다면, 부활 앞에서는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이 물음 앞에서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기에, 더욱 낮아진 마음으로 서게 된다.

또한 부활은 어둠이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그 어둠 속에서 주님의 빛을 발견하는 일임을 깨닫는다. 고통과 실패, 연약함이 사라지지 않아도, 그 안에서 주님의 손길을 느끼는 순간 삶은 달라진다. 신앙은 문제의 부재가 아니라, 문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생명의 근거를 붙드는 일이다.

우리 안의 무덤도 돌아보게 된다. 말하지 못한 마음, 외면해 온 죄, 미루어 두었던 순종의 자리들. 그 모든 것이 여전히 남아 있다면, 부활은 아직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부활은 그 무덤을 깨뜨리는 사건이 아니라, 그 안에 있던 것들을 빛 앞으로 이끌어 내는 은혜다. 숨겨진 것이 드러나고, 멈춰 있던 것이 다시 흐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부활을 살아가게 된다.

부활절은 과거를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오늘을 새롭게 시작하는 날이다. 이미 주어진 생명을 다시 붙들고, 다시 깨어나는 자리다.

겸허히 고백한다.

아직 충분히 살아내지 못했음을.

그러나 동시에 믿는다.

주님의 생명은 여전히 나를 향해 열려 있음을.

그 은혜 앞에 조용히 서서,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