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 조은비 ㆍ 아기 ㆍ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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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인 오늘, 문득 오래전 선생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학생이 온다는 건, 그 가문이 오는 것이다.”
그때는 그 말의 무게를 다 알지 못했는데,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
한 사람 안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과 마음, 그리고 그를 사랑한 사람들이 함께 들어 있다는 것을요.
돌이켜보면 선생님께서는 늘 학생을 찰나의 인상으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한 사람의 삶으로 바라봐주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수업에는 이상하게 오래 남는 온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미국에서 두 아기들을 키우며 지내고 있습니다. 얼마 전 둘째가 태어나 집 안은 다시 새벽 울음과 갓난아기 냄새로 가득해졌습니다.
둘째라 조금은 익숙할 줄 알았는데, 삶은 늘 예상보다 서툴고 우당탕스럽네요.
출산 후에는 예기치 목한 합병증읋 입원도 하게 되어 잠시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회복해 다시 아이들과 감사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첫째는 이제 막 잘 걷기 시작했습니다.
휘청휘청 넘어질 듯 걸어오다가도
어느 순간 제 품으로 달려오는 모습을 보면, 사람이 자란다는 게 얼마나 눈부신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선생님 네이버 블로그 글도 종종 읽고 있습니다.
문학 이야기를 읽다 보면 여전히 선생님다운 문장과 시선이 느껴져서 반갑고,
멀리 있어도 선생님 목소리를 듣는 기분이 들곤 합니다.
시간이 지나도 문학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시는 선생님의 마음이 참 아름답다고 느껴집니다.
아마 선생님께서는 오래전부터
사람의 삶과 문장을 함께 읽어내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렇게 깊고 따뜻하게 바라봐주셨겠지요.
멀리서도 늘 감사한 마음 가지고 있습니다.
선생님, 부디 오래 건강하시고
선생님 곁에도 아름다운 봄날 같은 시간들이 계속 머물기를 바랍니다.
제자 조은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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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중히 여기는 제자 은비에게
네 편지를 읽으며 한참을 창밖을 바라보았다.세월은 멀리 흘러갔는데도, 문득 교실 문 열고 들어오던 어린 학생의 눈빛 하나는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 있구나.
“학생이 온다는 건 그 가문이 오는 것이다.”
오래전 무심히 했던 말을 네가 이렇게 오래 품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사람은 자기가 건넨 말은 잊어도, 누군가는 그 말을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나 역시 나이 들어 다시 배우게 된다.
서울외고 시절,서울대와 교대를 두고 고민하던 네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논술 원고를 들고 와 밤늦게까지 질문하던 눈빛 속에는 늘 성실함과 단정한 품성이 함께 있었다.그때도 느꼈지만, 너는 단지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볼 줄 아는 아이였다.
이제는 서울대를 지나 타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며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다니, 세월이 참 신비롭다.한 사람이 자란다는 것은 결국 자기만의 삶을 넘어 또 다른 생명을 품어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둘째 아이 출산 뒤 힘든 시간을 겪었다는 대목에서는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멀리 있어 곁에서 손 한번 잡아주지 못하지만, 얼마나 두렵고 막막했을까 생각하니 스승의 마음이 괜히 저려온다.그래도 다시 회복하여 아이들의 웃음 속으로 돌아왔다니 참 감사한 일이다.
아기가 휘청거리며 걷다가 어느 순간 엄마 품으로 달려온다는 네 문장을 읽는데, 이상하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사람의 삶도 결국 그렇지 않겠니.수없이 흔들리며 걸어가다가도 끝내 돌아가 기대고 싶은 품 하나를 향해 살아가는 것.
네가 지금 아이들에게 건네는 눈빛과 체온 속에는 이미 네 어머니의 사랑도, 그리고 네가 살아오며 만났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도 함께 흐르고 있을 것이다.그래서 사람은 혼자 자라는 것이 아닌가 보다.
멀리 미국에서 내 글을 읽고 있다는 말도 참 고맙구나.문학은 결국 사람 사이의 거리를 조금 덜 외롭게 만드는 일인지도 모르겠다.세월이 지나도 누군가의 마음속에 조용히 살아남는 문장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글을 써온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고 느낀다.
은비야,너는 지금 참 잘 살아내고 있다.훌륭한 학자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따뜻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은 그보다 더 귀하다.네 편지 속에는 이미 깊고 맑은 사람의 향기가 배어 있었다.
부디 몸 먼저 아끼고,아이들 웃음 속에서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가끔은 창밖의 저녁 하늘도 오래 바라보며 살아가거라.
그리고 언젠가 한국에 오게 되면,예전처럼 따뜻한 차 한잔 앞에 두고오래 이야기 나눌 날도 있겠지.
스승의 날에 오히려 내가 더 큰 위로를 받았다.
고맙다, 은비야.
선생 김왕식 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