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계절, 기도의 손
불의 계절, 기도의 손 2025.03.27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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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계절, 기도의 손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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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무릎 꿇는다. 세상은 무너지고 있었다. 정치의 혀는 서로를 찢으며, 경제의 심장은 뿌리째 흔들려 하루하루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인 시대. 그리고 산불. 산 하나가 타오르고, 마을이 타고, 사람들의 기억이 타고, 마침내 하늘마저 붉게 물든다.
모든 것이 타는 그 자리, 모두가 등을 돌린 그 순간— 그 소녀는, 한없이 작은 몸으로 세상의 무게를 짊어진 듯 조용히, 아주 조용히, 두 손을 모아 무릎을 꿇었다.
그 손엔 무엇이 들렸을까. 검은 재를 움켜쥔 손바닥일까. 부서진 희망을 꿰매려는 실밥일까. 아니면, 단지 누군가의 안녕을 비는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일까.
사람들은 몰랐다. 그 조그만 손이 세상의 균열 틈을 막고 있다는 것을. 그 기도가 허물어진 마음의 무너진 벽을 조금씩 다시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연기 속에서도, 붉게 물든 하늘 아래에서도, 그 기도는 작게, 그러나 또렷하게 퍼져나갔다. 한 마디도 들리지 않았지만 모든 이의 가슴을 울리는 말들이었다.
“하나님, 제발 이 세상을 잊지 말아 주세요.” 그 속에 담긴 절절한 염원은 이념을 뛰어넘고, 이익을 지우고, 모든 차이를 지우며 산처럼, 물처럼, 바람처럼 퍼져나갔다.
기도는 계속되었다. 불길이 잠잠해지기까지. 울음소리가 잦아들기까지. 잊힌 사람들의 이름이 다시 불려지기까지.
세상은 여전히 혼란스럽지만 한 소녀의 기도는 뿌리처럼 남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전한다.
오늘도 어디선가, 또 다른 작은 손이 그녀처럼 무릎 꿇고 이 세상을 위해, 다시 한번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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