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은 자, 그 이름 농부
깨달은 자, 그 이름 농부 2026.09.05
문학평론가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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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은 자, 그 이름 농부
청람 김왕식
마음을 닦는다고 한다
참마음을 공부한다고 한다 참선을 하고 수련을 하고 명상을 한다
사람은 마음 하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참 많은 이름을 만들었다
방석이 생기고 시간이 정해지고 호흡의 방법이 생기고 수행의 단계가 생긴다
처음에는 마음을 자유롭게 하려 시작한 일이 어느 순간 마음을 또 하나의 형식 안에 앉혀놓기도 한다
잘하고 있는가 얼마나 깊어졌는가 어느 경지에 이르렀는가
마음을 놓으러 들어간 자리에 또 다른 잣대가 놓인다
비우겠다는 마음이 하나의 소유가 되고
깨닫겠다는 욕심이 가장 버리기 어려운 욕심이 되기도 한다
둔덕 아래 작은 밭을 일구는 농부를 본다
농부에게는 수행복도 없고 정해진 좌선 시간도 없다
새벽이면 흙을 만지고 씨를 묻는다
싹이 나오면 물을 살피고 꽃이 피면 벌과 나비가 다녀가는 것을 본다
비가 많이 오면 하늘을 원망하기보다 물길을 내고
비가 오지 않으면 땅이 목마른 만큼 물을 준다
싹에게 빨리 자라라 재촉하지 않고 꽃에게 오래 피어 있으라 붙잡지 않는다
열매가 익을 때까지 기다리고 익은 것은 따고 떨어질 것은 떨어지게 둔다
겨울이 오면 빈 밭을 실패라 부르지 않는다
흙이 쉬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농부는 무상無常을 공부하지 않아도 매일 사라지는 것을 본다
무주無住를 외우지 않아도 익은 열매를 가지에서 떼어낸다
인연을 설명하지 않아도 햇빛과 비와 바람과 벌과 흙이 열매 하나를 만든다는 것을 안다
어쩌면 경전보다 먼저 쓰인 책은 한 뙈기 밭이었는지도 모른다
봄은 첫 장을 열고 여름은 문장을 채우고 가을은 결말을 맺으며 겨울은 말없이 책을 덮는다
농부는 그것을 해마다 읽는다 읽었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농부의 손톱 밑에는 흙이 끼어 있고 이마에는 땀이 흐른다 그 얼굴에 번지는 미소를 보고 있으면 마음공부라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많이 배운 사람의 얼굴보다 한 해 농사를 마친 농부의 웃음이 더 맑아 보이는 날이 있다 그 웃음에는 깨달았다는 자랑이 없고 남을 가르치려는 눈빛도 없다
비가 오면 비를 맞았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견뎠으며 햇빛이 좋으면 곡식과 함께 기뻐했을 뿐이다
자연에 자신을 맞춘 사람의 얼굴에는 억지가 적다 억지가 적은 마음에는 주름조차 편안하다
참마음은 높은 곳에 있는 특별한 무엇이 아닐지도 모른다
씨앗을 심으며 씨앗이 되는 마음 물을 주며 물이 되는 마음 꽃을 보며 꽃을 소유하지 않는 마음 열매를 따며 가지의 빈자리를 받아들이는 마음
그런 마음이라면 굳이 이름을 붙일 까닭도 없겠다
참선이라 부르지 않아도 좋고 명상이라 부르지 않아도 좋다
하루를 정직하게 일하고 때가 되면 밥을 먹고 해가 지면 호미를 씻어 세워두고
잘 자란 것은 고맙게 받고 죽은 것은 흙으로 돌려보내는 삶
그보다 더 깊은 공부가 얼마나 더 필요할까
깨달음은 무언가를 많이 아는 얼굴보다
아무것도 내세우지 않으면서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얼굴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밭에서 돌아오는 농부가 웃는다 흙 묻은 장화를 신고 저녁 햇살을 등에 받으며 웃는다 그 미소 앞에서는 경전 한 권도 잠시 입을 다물 것 같다 마음은 닦아서 빛나는 것만은 아니다 정직하게 살아낸 하루가 쌓이다 보면 어느새 빛이 나는 얼굴이 있다
농부의 얼굴이 그렇다 깨달았다는 말 한 번 하지 않았는데도 그 미소 하나가 사람에게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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