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저윽이 빛나는 별, 허만길 스승님 ㅡ김왕식

저윽이 빛나는 별, 허만길 스승님 2025.05.15
저윽이 빛나는 별, 허만길 스승님

김왕식

경복고교 은사 허만길 선생님

저윽이 빛나는 별, 허만길 스승님

제자 김왕식

사람은 평생을 살며 많은 이들을 만난다.

온몸과 영혼으로 ‘스승’이라 부를 수 있는 이는 단 한 사람일 수 있다. 내게 허만길 선생님은 그런 존재였다. 삶의 가장 맑은 언저리에서, 나는 그분을 뵈었다. 70년대 중반, 경복고등학교. 누군가의 청춘이 막 피어나는 시절, 단정한 한 남자가 교정에 들어섰다. 단벌의 신사복, 그마저 소매를 꿰맨 옷자락. 그러나 그 품위는 낡은 옷을 입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품위’가 그 옷을 걸치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그분을 ‘백결 선생’이라 불렀다. 검소함이 곧 존재의 미덕이던 시절, 그 선생님은 청렴의 화신이자, 배움의 성좌였다.

그 맑은 눈빛, 말없이 전해지던 지성의 울림은, 한 줄 문장을 수천 겹의 마음으로 가르쳐주었다. 나는 그 눈빛 아래에서, 한 글자 한 글자를 새기며, 문장이 아니라 삶을 배웠다. ‘국어’란 국어책에 있는 말의 기능이 아니라, 사람을 품는 언어임을, 나는 스승의 한 마디에서 배웠다.

그 후로 수십 년. 나는 스승의 발자취를 따르듯, 그분처럼 교단에 섰다. 나 또한 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고, 사람을 가르치는 제자가 되었다. 세월은 흘러 내 머리에 서리꽃이 내렸지만, 허만길 선생님은 여전히 내 마음의 하늘에 빛나는 별로 계신다. 단 한 번도 그 별이 흐릿해진 적은 없었다. 오히려 어둠이 짙어질수록 더 또렷하게 빛났고, 내가 길을 잃을 때마다 은하수처럼 길을 비추어주었다.

지금 나는 시인으로, 수필가로, 평론가로 문단에 서 있다. 그 모든 이름 앞에, 조용히 ‘허만길의 제자’라는 이름을 더하고 싶다. 글이 언어의 껍질이 아니라 삶의 골수를 담아야 한다는 신념, 그것은 스승이 남긴 가르침이었다. 선생님의 한 문장, 한 강의는 내게 언어 이상의 존재론적 깨달음이었다.

지금, 여든을 훌쩍 넘긴 그 노구의 몸으로도 여전히 ‘경복고 국어교사 허만길’이라는 이름을 간직하고 계신다니, 나는 울컥한다. 교단에서 수많은 시간과 정신을 태워버렸을 그분의 뒷모습은, 이 시대의 마지막 교육자라 부를 만하다.

허만길 선생님은 내 마음속에서 언제나 저윽이 울리는 산처럼 계신다. 말없이 높고, 말없이 깊은 그 산은 내가 어디로 가도 나를 바라보는 방향타다.

나는 오늘도 누군가의 스승이 되기 위해, 그 산의 그림자를 좇는다. 그리고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다. 거기, 흐리지 않은 별 하나.

그 별이 바로, 선생님이다.

스승의 이름으로 ― 허만길 선생님께

제자 김왕식

봄빛도 조용히 머물던 날 낡은 신사복 위 소매를 꿰매신 그 모습 말씀이 아니라 침묵으로 가르치시던 맑은 눈동자의 깊은 뜻을 나는 교정의 바람결 속에서 배웠습니다

칠판 위의 분필 가루보다 가슴속에 쌓인 말씀의 무게가 컸습니다 단어 하나에도 철학이 묻어났고 마침표 하나에도 생이 깃들어 그 문장들은 지금도 제 가슴을 누릅니다

가난은 부끄러움이 아니라고 청빈은 삶의 자세라고 스승께서 보여주신 뒷모습은 하나의 문장이 되어 제자의 삶을 이끌었습니다

세월은 스승의 머리에 눈을 내렸지만 그 뜻은 봄처럼 새롭고 따뜻하여 이제 제가 누군가를 가르칠 때마다 스승의 눈빛을 닮고자 하루하루를 다잡게 됩니다

스승이여, 당신은 별이십니다 말없이 길을 비추는 저윽한 별 제 마음의 밤하늘을 밝혀 지금도, 앞으로도 존경으로 숨 쉬게 하는 이름입니다 ■

2025, 5, 15

존경을 담아, 제자 김왕식 드립니다.

□ 경복고등학교 전경

□제자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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