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에 대하여 ㅡ청람 김왕식
등산에 대하여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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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에 대하여
청람 김왕식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대개 정상을 바라본다.
몇 시까지 정상에 닿아야 하는지 시간을 재고, 남은 거리를 확인하며, 숨이 턱까지 차올라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정상석 앞에서 사진 한 장을 남기기 위해 제법 비장한 표정도 짓는다. 산에 왔으니 마땅히 꼭대기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이 어느새 하나의 약속처럼 마음속에 박혀 있다.
그런 사람들 사이로 조금 다른 사람이 있다.
산 중턱쯤 올랐을 때 그는 걸음을 멈춘다. 길옆 소나무 한 그루 아래 넓적한 바위가 눈에 들어오면 배낭을 벗어 놓고 그 자리에 앉는다. 아직 정상은 멀다. 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고, 위로는 계속 사람들이 지나간다.
그는 서두르지 않는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가을바람이 한 번 지나간다. 바람 끝이 제법 서늘하다. 발아래 이름 모를 들꽃 몇 송이가 고개를 들고 있고, 맞은편 산허리에는 단풍이 아직 붉다 하기에는 이른 빛으로 번지고 있다. 초록 속에 노랑 한 점, 붉음 한 점이 번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계절은 소리 없이 자신의 옷을 갈아입고 있다.
조금 아래에는 억새가 흔들린다.
바람이 한쪽으로 밀면 억새는 몸을 기울였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도 함께 흔들린다. 억새는 바람을 이기지 않는다. 쓰러지지도 않는다. 지나가는 힘에 잠시 몸을 맡길 뿐이다.
사람도 저렇게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정상에 마음을 빼앗겼던가. 학교에서는 일등을 향해 뛰었고, 직장에서는 승진을 향해 올랐으며, 세상에서는 남보다 조금 높은 자리 하나를 얻기 위해 숨이 차도록 걸었다. 하나를 이루고 나면 또 다른 봉우리가 나타났다. 산 하나를 넘었는데도 마음은 좀처럼 평지가 되지 않았다.
정상은 언제나 다음 정상을 낳았다.
그런데 산 중턱 바위에 앉아 있으면 이상하게도 부족한 것이 없다. 정상석도 없고, 박수도 없고, 누가 알아주는 일도 없지만 가을바람 한 자락이면 충분하고, 들꽃 몇 송이면 넉넉하다. 붉어지기 시작한 단풍잎 하나에도 하루를 다 써버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정상에 오르는 일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끝까지 가보는 힘도 삶에는 필요하다. 다만 모든 산을 꼭 끝까지 올라야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정상의 높이는 다르다.
누군가에게 정상은 해발 천 미터 봉우리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소나무 아래 바위 한 자리일 수 있다. 더 올라갈 수 있으면서도 머물 줄 아는 사람, 더 가질 수 있으면서도 이미 충분하다고 여길 줄 아는 사람, 남들이 앞서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자기 마음의 속도를 잃지 않는 사람에게는 산 중턱도 훌륭한 정상이다.
산은 높은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송이 들꽃을 오래 바라보는 눈에도 산이 있고, 단풍 한 잎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가슴에도 산이 있다. 억새가 바람에 몸을 맡기는 모습을 바라보다 자기 안의 욕심 하나를 내려놓는 순간에도 사람은 어느 봉우리보다 높은 곳에 닿는다.
한참을 앉아 있던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정상을 향하지 않는다.
왔던 길을 천천히 내려간다. 올라오는 사람들은 조금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볼지도 모른다. 벌써 내려가느냐고, 정상은 다녀왔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는 아마 웃기만 할 것이다.
가슴속에는 이미 소나무 한 그루가 들어와 있고, 가을바람이 머물다 갔으며, 억새 몇 포기가 아직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산중턱은 중간이 아니다.
거기서 충분히 멈출 수 있었던 마음
바로 그곳이
그날 그가 오른 가장 높은 정상이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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