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 가장 부드러운 힘이 가장 단단한 것을 꺾는다
온유, 가장 부드러운 힘이 가장 단단한 것을 꺾는다 2026.06.14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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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 가장 부드러운 힘이 가장 단단한 것을 꺾는다
온유는 소리 없는 물결이 암석을 파고드는 침묵의 힘이며, 손끝으로 스치는 바람이 거대한 나무를 흔드는 고요한 진동이다. 사람들은 강한 것을 힘이라 믿지만, 진실한 힘은 언제나 부드러움의 얼굴을 하고 있다.
온유는 이긴다. 그러나 함성을 지르지 않는다. 칼을 들지 않고, 외침 대신 침묵으로 말하며, 거칠고 날 선 언어 앞에서도 등을 돌리지 않는다. 꽃잎은 손톱보다 연약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결국 그 연약한 꽃잎의 향기이다.
우리는 고단한 세상을 살고 있다. 경쟁과 시기의 바람 속에 마음은 조용히 깨어지고, 누군가를 이기지 않으면 내가 지는 것 같은 매정한 논리 속에 내 영혼은 점점 메말라간다. 그러나 어쩌면 진짜 이긴 사람은 싸우지 않고도 상대의 마음을 껴안은 사람이다.
고대의 철학자 노자도 말했다.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을 이긴다.” 흐르는 물이 바위를 깎고, 뿌리 깊은 대나무는 부러지지 않고 바람에 몸을 맡긴다. 강인함은 꺾이지만, 온유는 휘어질지언정 부서지지 않는다.
온유한 사람은 마음에 검을 품지 않는다. 타인을 밀어내지 않고, 상처 입은 자의 어깨에 조용히 손을 얹는다. 말보다 눈빛으로, 권력보다 다정함으로, 이기려는 마음보다 이해하려는 태도로 세상을 감싸 안는다. 그런 사람 곁에 있으면 우리는 이유 없이 눈물이 난다. 그 눈물은 약함의 표현이 아니라, 너무 오랜 시간 강해지려 애쓰다 놓쳐버린 인간다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온유는 종교를 초월한다. 그것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언어이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갈망하는 안식의 품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여, 내게로 오라’는 말은 단지 한 사람의 초대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깊은 위로다.
온유한 자는 세상을 고치는 사람이다. 큰소리로 정의를 외치지 않아도, 그 존재만으로 주변의 긴장을 풀고, 날 선 언어를 눕힌다. 한 사람의 온유는 가족의 상처를 덮고, 공동체를 치유하며, 심지어는 오랜 분쟁의 고리를 끊는다. 그것은 마치 비 온 뒤의 햇살처럼, 해설 없이도 모든 것을 이해하게 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진짜 변화를 이끈 이들은 대부분 칼이 아닌 눈빛을 들었던 사람들이었다. 마하트마 간디는 말없이 민중과 걸었고, 테레사 수녀는 환자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었다. 위대한 사랑은 결코 요란하지 않았다. 가장 조용한 사랑이 가장 멀리 갔다.
온유는 쉽지 않다. 참는 것이 아니라, 품는 것이며, 꺾이지 않는 부드러움이기 때문이다. 때론 억울해도 말하지 않고, 맞서지 않아도 꺾이지 않으며, 무릎을 꿇는 것이 굴욕이 아님을 아는 태도이다.
한 어린양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며도 침묵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에 무능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알면서도 침묵할 수 있는 능력이 온유였기에. 그 침묵은 결국 세상의 증오를 녹이고, 고통받는 자들에게 삶의 의미를 돌려주었다.
진정한 온유는 약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가장 강한 자의 선택이다. 고난을 견디며도 복수하지 않는 자, 불의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 나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자, 그가 바로 온유한 자이다.
이제 우리에게 묻는다. 나는 온유한가? 내 손끝에 머문 말들은 누군가를 꿰뚫는가, 아니면 어루만지는가? 나의 침묵은 회피인가, 품음인가? 그리고, 나는 이 거칠고 빠른 세상에서 아직도 사람을 다정하게 바라볼 줄 아는가?
온유는 사랑의 뿌리이며, 삶을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뼈대다. 세상이 거칠수록, 더 많은 온유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온유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부터 시작된다.
가장 깊은 고요가, 가장 단단한 진실을 담고 있다. 그 고요한 힘이 바로 온유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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