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상대가 강할 때, 나는 부드럽게

상대가 강할 때, 나는 부드럽게 2025.06.21
상대가 강할 때, 나는 부드럽게

김왕식

상대가 강할 때, 나는 부드럽게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사람의 세상은 힘의 균형으로 돌아가는 듯하지만, 그 균형을 진정 지탱하는 것은 어쩌면 부드러움일지 모른다. 강한 사람 앞에서 더 강하게 맞설 수도 있지만, 그 순간 세상은 대립과 충돌의 마찰음으로 가득 찬다.

반면, 상대가 강할 때 내가 부드러워진다면, 그 공간에는 긴장의 이음새가 풀리고, 고요한 울림이 흐르기 시작한다. 마치 거센 파도 앞에서 바위는 부서질지언정, 모래는 품고 머금고 흘려보냄으로써 그 자체로 사라지지 않고 남는 것처럼.

한자리에 오래 머문 나무는 안다. 바람이 거셀수록 가지는 흔들리되, 뿌리는 더욱 유연하게 흔들림을 수용해야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부드러움’이란 약함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꿰뚫은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한 유연성이고,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이들이 선택하는 태도다. 땅은 칼보다 부드럽지만, 칼을 삼켜 그 흔적조차 지운다. 물은 손으로 움켜쥐면 흘러내리지만, 바위를 깎고 길을 내며 스스로의 길을 만든다. 이렇듯 부드러움은 가장 강한 것을 누그러뜨리는 힘이다.

역사와 자연은 이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공자도 말하지 않았던가.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하는 것, 이것이 바로 군자의 도다.” 누군가가 거칠고 단단하게 밀고 나올 때, 나는 한 발 물러서고, 목소리를 낮춘다. 그것은 굴복이 아니라, 상대의 칼끝을 무디게 만드는 가장 온화한 전략이다. 감정을 감정으로 되받아치는 순간, 관계는 균열의 문턱에 선다. 그러나 한 사람만이라도 차분히 앉아 찻잔을 들어 올리면, 기류는 달라진다. 정적은 흡수되고, 언어는 무뎌지고, 때로는 침묵이 모든 감정을 녹여낸다.

인생에서 가장 부드러운 존재는 어머니의 손길이다. 분노한 아이조차 그 손 안에서 잠이 들고, 고통스러운 이도 그 손끝에 기대어 눈물을 흘린다. 부드러움은 치유의 첫 언어이며, 강함의 모서리를 깎아주는 섬세한 조율이다. 상대가 강하게 나오면, 나까지 강해질 이유는 없다. 그 사람이 가장 원하는 것은 자신의 강함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누군가의 따스한 시선일지도 모른다.

상대가 강할 때, 내가 부드러워지는 것은 결국 나를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강한 자와 겨루어 나를 깎아내기보다, 한걸음 뒤에서 내 마음의 중심을 지키는 것. 그것이 진정한 ‘강함’이다.

부드러움은 타인을 품는 용기이자, 스스로를 지키는 지혜이다. 그러니 오늘도 세상이 거세게 다가오거든, 차 한 잔을 따르며 묵묵히 웃자.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처럼, 침묵 속에서 피어나는 꽃처럼.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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