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계산대의 짧은 언쟁 ㅡ 청람 김왕식

계산대의 짧은 언쟁 2025.09.18
계산대의 짧은 언쟁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계산대의 짧은 언쟁

마트의 계산대 앞은 늘 작은 전쟁터 같다. 카트와 장바구니가 줄을 서고, 사람들의 표정은 바쁘고 예민하다. 시간은 늘 부족하고, 순서는 엄격하게 지켜져야 한다.

그날도 그랬다. 몇 명이 줄을 서 있었고 한 어르신이 천천히 물건을 꺼내고 있었다. 장바구니 속에는 사소한 것들이 많았다. 두부 한 모, 사과 몇 알, 작은 생필품. 손놀림은 더뎠고, 계산대 위에는 물건이 하나씩, 천천히 올려졌다.

뒤에 서 있던 젊은 남성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왜 이렇게 늦으세요? 뒤에 사람 많은 거 안 보이세요?” 공기는 삽시간에 차가워졌다. 어르신은 움찔하며 손을 멈추었다. 계산대 직원조차 순간 멍하니 굳어버렸다.

순간, 줄에 있던 한 여성이 말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되잖아요. 왜 큰소리세요?” 그 말에 젊은 남성은 더욱 격앙되었다. “내 시간이 왜 이렇게 낭비돼야 합니까?”

잠깐의 정적, 사람들의 시선은 서로에게 흩어졌다. 어르신은 더 서둘러 물건을 올리려 했으나 오히려 손이 떨렸다. 작은 두부 하나가 떨어져 바닥에 굴러갔다. 그 순간, 줄에 있던 다른 이가 재빨리 주워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작은 동작이었지만 그 안에는 묵묵한 위로가 담겨 있었다.

젊은 남성은 여전히 불편한 기색이었으나 그 이상 소리를 높이지는 못했다. 어르신은 계산을 마치고 작게 허리를 숙이며 물건을 챙겼다. 그 뒷모습은 작은 언쟁 속에 더 작아 보였다.

짧은 사건이었지만 나는 오래 생각에 잠겼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누군가에게는 조금 느린 시간이 필요하다. 그 느림이 우리에게 불편으로 다가오지만, 그 속에는 세월의 무게가 담겨 있다.

젊음은 빠름을 자랑으로 여기고, 늙음은 느림을 숙명처럼 감당한다. 그 둘이 마주치는 곳이 계산대였다. 서로의 속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 갈등은 생겨난다.

인내는 길지 않았다. 고작 몇 분, 길어야 몇 초. 그 짧은 시간을 참지 못하고 쏟아낸 말은 어르신의 가슴에 길게 남는다.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는 언젠가 느려질 것이다. 손이 둔해지고, 발걸음이 무거워지고, 시간 앞에서 무력해질 날이 올 것이다. 그날 우리 역시 누군가의 조급한 시선을 받게 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조금 더 참는 것이 옳지 않은가. 조금 더 기다려주는 것이 곧 내 미래를 받아들이는 일이 아닐까.

계산대 앞의 짧은 언쟁은 작은 갈등이었지만, 그 속에는 세대와 시간, 인내와 이해의 문제가 겹겹이 숨어 있었다.

그날 이후 계산대 앞에 서면 마음을 다잡는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고. 조금 기다려도 된다고. 그 기다림이 곧 나의 연습이며, 언젠가 내가 누군가에게 받을 배려이기도 하다고.

짧은 언쟁은 오래 남았다. 그것은 나에게 물었다. “너는 기다릴 줄 아는가. 너는 느림을 존중할 줄 아는가.”

대답 대신, 나는 마음속에 다짐을 새겼다. 작은 순간이 큰 배움이 되었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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