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지를 불러내는 자리 ㅡ청람 김왕식
삶의 의지를 불러내는 자리 2026.06.14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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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지를 일깨우는 자리
삶이 해이해질 때 우리는 흔히 여행을 떠나거나 새로운 자극을 찾는다. 진정으로 자신을 일깨우는 자리는 화려한 풍경이나 낯선 길 위가 아니다. 병원의 중환자실만큼 삶의 의미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공간은 드물다. 그곳에는 생과 사의 경계에서 마지막 힘을 쥐고 버티는 인간의 치열한 몸부림이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은 기계의 소리다. 심장 박동을 알리는 신호음, 산소 공급기의 규칙적인 숨결, 환자의 몸에 연결된 수많은 선들이 전하는 긴장된 리듬. 그것은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아직 살아 있다”는 선언처럼 울린다. 의식이 흐려지고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해도, 몸은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저항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일상에서 무심히 내뱉던 “사는 게 지루하다”는 말이 얼마나 가볍고 부끄러운 고백인지 깨닫게 된다.
그곳의 환자들은 절박하다. 가족을 다시 만나고 싶고, 미처 이루지 못한 꿈을 이어가고 싶으며, 아직 끝내지 못한 삶의 책장을 덮고 싶지 않아 한다. 모든 바람의 시작은 오직 하나, 오늘의 숨을 이어가는 일이다. 살아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이미 가장 값지고 위대한 성취임을 그들의 몸이 증명한다.
우리는 매일의 삶을 너무 쉽게 소비한다.
주어진 하루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불평과 나태 속에서 시간을 흘려보낸다. 중환자실에 머무는 짧은 시간은 그 망각을 철저히 깨뜨린다. 눈빛으로조차 감정을 다 전하지 못하는 환자가 겨우 손가락 하나 움켜쥘 때, 그것은 생의 의지가 여전히 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그 순간, 호흡과 심장이 단순한 생리적 기능이 아니라 숭고한 기적임을 알게 된다.
삶은 언제나 기적의 연속이다. 우리는 살아 있는 호흡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며, 그 가치를 잊고 지낸다. 누군가에게는 단 한 번의 들숨이 목숨을 건 싸움인데,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그런 깨달음 앞에서, 늦은 저녁 바람 한 줄기, 따뜻한 밥 한 숟가락, 누군가의 짧은 안부조차도 더 이상 사소하지 않다. 그것은 모두 살아 있음이 허락한 특별한 선물이다.
중환자실은 우리에게 슬며시 다가와 귀띔한다.
“지금 너는 어떻게 살고 있느냐고”.
“의미 없는 불평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지는 않느냐고”.
삶의 이유는 거대한 목표에 있지 않다.
주어진 순간을 성실히 붙드는 의지, 가까운 사람들을 진심으로 소중히 여기는 마음, 그리고 남은 시간을 사랑으로 채우려는 결단에 있다.
삶이 무겁게 느껴질 때, 그 무게를 덜어내는 길은 의외로 단순하다. 죽음 앞에서도 꺼지지 않는 생명의 투혼을 바라보는 일, 그 치열함 속에서 다시 삶을 향한 의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오늘의 고단함이 아무리 무겁다 해도, 그곳에서 들려오는 기계음에 비할 수는 없다. 그 소리는 꺼지지 않으려는 생명의 경고음이자, 삶을 절대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당부다.
삶은 사소하지 않다.
우리가 지금 살아 숨 쉬는 바로 이 순간이, 가장 숭고한 기적이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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