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용서는 잊음이 아니다 ㅡ청람 김왕식

용서는 잊음이 아니다 2025.11.10
용서는 잊음이 아니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용서는 잊음이 아니다

사람은 상처를 받으면 자연스레 두 가지 길 앞에 선다. 하나는 되갚음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놓아줌의 길이다. 되갚음은 순간의 통쾌함을 주지만, 결국 그 상처의 무게를 두 배로 안게 된다. 놓아줌은 처음엔 아프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이 가벼워진다. 용서란 바로 그 두 번째 길 위에서 배우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용서를 ‘잊음’으로 착각한다. 마음속에서 완전히 지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용서는 기억을 지우는 일이 아니다. 그건 기억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다. 예전에는 그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분노와 원망이 피어올랐다면, 이제는 그 일을 통해 내가 자라났음을 보는 것이다. 용서는 과거를 덮는 게 아니라 그 위에 새로운 의미를 덧입히는 일이다.

용서가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정의와 감정을 같은 저울에 올려놓기 때문이다. “그가 잘못했는데 왜 내가 용서해야 하지?” 그 물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용서는 그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다. 미움은 돌을 움켜쥔 손과 같다. 놓지 않으면 손이 먼저 상한다. 용서는 그 돌을 내려놓는 용기다.

용서는 감정의 종결이 아니라 이해의 시작이다. 그 사람의 행동이 옳았다는 뜻이 아니라, 그 또한 자신의 한계 속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인정하는 일이다. 그 인정은 굴복이 아니라 통찰이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순간, 마음은 비로소 평화에 닿는다.

용서는 한 번의 결심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건 반복의 연습이다. 아침엔 괜찮다고 생각하다가 밤이 되면 다시 미움이 올라올 때, 그때마다 마음속에서 조용히 되뇐다. “그래도 이제는 놓아주자.” 그 되뇜이 쌓여 어느 날 문득, 그 사람을 떠올려도 가슴이 덜 아프게 된다. 그게 바로 용서의 순간이다.

용서는 결코 약함이 아니다. 그건 강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미움은 쉽지만, 용서는 어렵다. 미움은 본능이지만, 용서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 선택은 단단한 마음이 아니라 깨어진 마음에서 나온다. 아파 본 사람만이 용서의 길을 안다.

용서는 나 자신에게 주는 자유다. 용서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내 안에서 계속 살아 움직인다. 그는 내 하루의 감정과 생각을 지배하고, 나는 여전히 그에게 묶여 있다. 용서하는 순간, 그는 내 마음에서 떠나가고, 나는 비로소 나의 시간으로 돌아온다. 용서는 상대를 풀어주는 일이 아니라, 나를 풀어주는 일이다.

사람과의 관계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는 일의 연속이다. 그러나 그 상처가 다 미움으로 남으면 세상은 돌처럼 굳어버린다. 용서는 세상에 다시 숨을 불어넣는 일이다. 한 사람의 용서가 또 다른 마음을 풀고, 그 마음이 또 다른 이의 상처를 녹인다. 그렇게 세상은 다정함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용서는 완성이 아니라 계속되는 기도일지도 모른다. 완전히 잊는 날이 오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그 기억을 떠올릴 때 이제는 미움보다 연민이 먼저 온다면, 그게 진짜 용서다. 용서는 상처 위에 핀 작은 꽃이다. 그 꽃은 화려하지 않지만, 가장 오래 피어난다.

용서는 잊음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다. 미움이 머물던 자리에 연민이 피어날 때, 그때 비로소 마음은 자유로워진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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