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편의점 불빛 아래에서 멈춘 발걸음 ㅡ 청람 김왕식

편의점 불빛 아래에서 멈춘 발걸음 2025.11.26
편의점 불빛 아래에서 멈춘 발걸음

ㅡ 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편의점 불빛 아래에서 멈춘 발걸음

저녁이 내려앉는 도시에서 가장 먼저 불을 밝히는 곳은 편의점이다. 해가 완전히 지기도 전에 켜지는 그 하얗고 작은 불빛은 멀리서 보면 별처럼 반짝인다. 크지 않지만 늘 같은 자리에서 누군가의 하루를 비추고 있다. 그 불빛 때문에 사람들은 이곳을 스쳐 지나가다가도 잠시 멈추곤 한다.

편의점 문이 열릴 때마다 ‘딩동’ 하는 짧은 종소리가 울린다. 그 소리는 하루 종일 지쳤던 사람의 마음에도 조용히 스며든다. 누군가는 삼각김밥 하나를 사러 들어오고, 누군가는 단지 물 한 병을 들고 나온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필요를 따라 들어오지만 편의점이라는 공간은 필요보다 조금 넉넉한 온기를 준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면 선반 위 물건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어느 곳도 서두르지 않고, 어느 곳도 삐뚤지 않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실 이 정돈된 풍경은 사람의 마음을 꽤나 편안하게 만든다. 바깥세상은 늘 예측할 수 없고 순식간에 어지러워지지만 편의점 안은 항상 같은 모양을 유지한다.

그래서일까. 지친 저녁, 사람들은 편의점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불빛을 바라보다가, 스스로도 모르게 그 안으로 들어선다. 마치 “여기서 잠깐 쉬었다 가도 괜찮아요”라고 불빛이 먼저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어떤 날은 특별한 물건을 사려던 것도 아닌데 그저 몸이 편의점 문 쪽으로 향한다. 그 안에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작은 안식이 있다. 가족도, 친구도, 직장도 아닌 완전히 혼자만의 공간이지만 그 고독은 이상하게도 따뜻하다.

바쁜 직장인은 편의점 커피머신 앞에서 뜨거운 물이 내려오는 걸 멍하니 바라본다. 손에는 커피값이 담긴 작은 영수증이 들려 있다. 그 종이는 너무 가벼워서 낮 동안의 무거움을 잠시 잊게 한다. 컵에 커피가 채워지는 동안 직장인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다. 생각을 비우는 것도 아니고 생각을 지속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잠시, ‘멈추어 있다.’

한쪽에는 오래된 점퍼를 입은 청년이 컵라면 앞에서 한참을 서 있다. 고르고 또 골라 결국은 가장 익숙한 맛을 집어 들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김이 피어오르며 안경알을 잠시 뿌옇게 만들자 청년은 그 김을 바라보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는 작지만 분명한 위로가 깃들어 있다. 누가 주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챙겨주는 작은 위로다.

편의점 구석 매대 앞에서는 중년 부부가 조용히 서 있다.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면서도 얼굴에는 서두름이 없다. 빵 두 개와 우유 하나를 사서 어두운 집으로 돌아가려는 듯하다. 그들의 움직임은 묘하게 닮아 있다. 하루를 다르게 살아도 저녁이 되면 조용히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두 사람. 편의점 불빛 아래에서 그들의 그림자가 길게 겹쳐진다.

밖으로 나오면 공기의 온도가 확연히 달라진다. 편의점 안의 밝음은 밖에서 보기보다 훨씬 따뜻하다. 문을 나서는 순간 사람들은 무언가를 얻은 듯 걸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물 한 병, 과자 한 봉지, 따끈한 호빵 하나일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물건들은 종종 물건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다.

편의점 불빛은 사람들에게 말없이 말한다.

“오늘도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 “당신의 마음은 조금 쉬어가도 괜찮다.” “그리고, 다시 갈 힘이 생길 때까지 여기 불빛 아래 머물러도 좋다.”

사람들은 그 말을 들은 듯 불빛을 등지고 떠난다. 하지만 떠나는 등 뒤에는 편의점의 하얀빛이 조용히 따라오듯 온기가 남는다.

가끔 삶이 너무 차갑게 느껴지는 날이면 이 작은 불빛 하나만으로도 사람은 저녁을 견딜 수 있다. 이 작은 공간은 거창한 위로를 주지 않는다. 그러나 ‘잠시 멈춤’이라는 보이지 않는 선물을 건네준다.

편의점 불빛 아래에서 멈춘 발걸음. 그 발걸음은 삶의 기척을 다시 느끼게 하고 누군가의 마음을 조용히 데운다. 그리고 그 온기는 다음 순간을 살아가게 하는 아주 작은 불씨가 된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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