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거리 두기를 냉정함으로 오해하지 않는 기준 ㅡ청람

거리 두기를 냉정함으로 오해하지 않는 기준 ㅡ청람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관계와 함께 하루를 사는 법 ㅡ 거리 두기를 냉정함으로 오해하지 않는 기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사람은 거리를 두는 순간 스스로를 의심한다. 내가 너무 차가운 것은 아닐까, 정이 없는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관계에서의 거리는 종종 냉정함으로 오해된다. 그러나 거리는 감정의 부재가 아니라 감정의 관리다.

거리 두기가 어려운 이유는 정과 책임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가까웠다는 사실이 언제까지나 같은 밀도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과거의 친밀함이 현재의 부담으로 바뀌는 순간, 거리는 필요해진다. 이 필요를 무시하면 관계는 마모된다.

거리의 기준이 있다

의도다. 상대를 벌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거리를 둔다면 그것은 냉정함이 아니다. 오히려 관계를 오래 보존하려는 선택이다. 너무 가까운 관계는 작은 마찰에도 쉽게 다친다.

표현의 방식이다. 거리는 침묵으로만 드러나지 않는다. 빈도를 줄이고, 깊이를 조절하고, 반응의 속도를 낮추는 것도 거리다.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된다. 모든 거리는 해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기 상태에 대한 정직함이다. 지금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관계의 반경을 아는 것. 반경을 넘는 요구 앞에서 거리를 두는 것은 회피가 아니라 현실 인식이다. 현실을 인식하지 않는 관계는 무리하게 유지된다.

거리 두기를 냉정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대개 자기희생에 익숙하다. 참고, 맞추고, 버텨 온 시간들이 많다. 이들에게 거리는 배신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배신은 끊어내는 것이고, 거리는 조절하는 것이다. 조절은 관계의 기술이다.

관계에서의 거리는 사라짐이 아니라 위치 변경이다. 한 발 물러서면 전체가 보인다. 전체가 보일 때, 관계의 균형은 회복된다. 균형이 없는 친밀함은 오래가지 않는다.

거리를 두고 나서 죄책감이 올라올 수 있다. 이 죄책감은 관계를 소중히 여긴다는 증거다. 그러나 죄책감을 기준으로 거리를 판단하지 않는다. 기준은 회복 여부다. 거리를 둔 뒤 숨이 쉬어지는지, 하루가 안정되는지. 회복이 있다면 선택은 유효하다.

오늘 누군가와의 거리가 필요하다고 느껴졌다면 그 감각을 냉정함으로 규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자기 삶의 반경을 지키려는 신호일 수 있다. 관계와 함께 하루를 사는 법은 차갑지 않게 붙잡는 일이 아니라, 따뜻함이 상처가 되지 않도록 조절하는 일이다.

이 기준이 서면, 사람은 거리를 두면서도 관계를 함부로 만들지 않는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