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감정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깨어난다

감정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깨어난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감정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깨어난다

청람 김왕식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저 사람이 나를 화나게 했다.” “그 일 때문에 너무 슬프다.” “세상이 나를 분노하게 만든다.”

겉으로 보면 맞는 말처럼 들린다. 누군가의 거친 말이 분노를 일으키고, 예상치 못한 이별이 슬픔을 불러오며, 부당한 현실이 마음을 뒤흔드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마음공부는 여기에서 조금 다른 길을 가리킨다. 사실 화와 분노와 슬픔은 밖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다. 그 감정들은 본래 우리 안에 잠재해 있던 씨앗이었다. 외부의 사건은 그 씨앗을 만든 존재가 아니라, 잠들어 있던 씨앗을 흔들어 깨운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말을 듣고도 어떤 이는 웃으며 넘기고, 어떤 이는 크게 분노한다. 같은 실패를 만나도 어떤 이는 다시 일어서고, 어떤 이는 깊은 절망에 빠진다. 세상이 똑같다면 결과도 같아야 한다. 그렇지 않은 이유는 감정의 근원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밖에서 날아온 것은 말 한마디였을 뿐이다. 분노는 그 말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머물고 있던 분노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슬픔도 마찬가지다. 사건이 슬픔을 만든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슬픔이 그 사건을 만나 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감정의 책임을 세상에 돌리지 않는다. 남을 탓하던 마음은 자신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바뀐다. 그때 비로소 수행이 시작된다.

지혜로운 사람은 화가 일어나는 순간 곧장 상대를 바라보지 않는다. 먼저 자신의 마음을 바라본다.

‘지금 내 안의 분노가 깨어나고 있구나.’ ‘내 안에 숨어 있던 슬픔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구나.’

이 알아차림은 감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그 감정의 주인이 되는 길이다.

감정은 하늘을 스쳐 가는 구름과 같다. 구름은 하늘을 잠시 가릴 수는 있어도 하늘 자체가 될 수는 없다. 화도, 분노도, 슬픔도 우리의 본성이 아니다. 그것들은 잠시 일어났다 사라지는 현상일 뿐이다. 그 현상을 바라보고 있는 맑은 의식, 그 고요한 자리야말로 본래의 참마음이다.

마음공부는 감정을 억누르는 공부가 아니다. 감정이 어디에서 일어나는지를 정직하게 바라보는 공부이다. 밖을 바꾸는 일보다 안을 비추는 일이 먼저임을 배우는 공부이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보다 자기 마음을 아는 사람이 더 큰 사람이다. 자신의 감정을 탓하지도 않고, 남에게 떠넘기지도 않으며, 그것이 잠시 피어올랐다가 다시 스러지는 마음의 파도임을 아는 사람이다.

그때 우리는 알게 된다. 나를 괴롭힌 것은 세상이 아니라, 아직 다 이해하지 못한 내 마음이었다는 사실을. 그 깨달음에서 비로소 참된 자유가 시작된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