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위버멘쉬Übermensch, 오늘의 나를 넘어서는 삶

위버멘쉬Übermensch, 오늘의 나를 넘어서는 삶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위버멘쉬(Übermensch), 오늘의 나를 넘어서는 삶

아침에 눈을 뜨면 우리는 세상보다 먼저 휴대전화를 만난다. 밤사이 쌓인 소식들을 훑어보고, 누군가의 성공을 읽고, 또 다른 누군가의 화려한 삶을 바라본다. 그렇게 하루는 자신을 바라보기 전에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로 시작된다.

언제부터인가 현대인은 거울보다 창문을 더 많이 바라본다. 자기 얼굴보다 남의 삶을 더 오래 바라본다. 비교는 습관이 되었고, 속도는 미덕이 되었으며, 경쟁은 삶의 방식이 되었다. 많이 가진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라 믿고, 빨리 도착한 사람이 앞선 사람이라 생각한다.

니체는 이러한 시대를 향해 오래전 하나의 이름을 남겼다. 위버멘쉬(Übermensch). 흔히 ‘초인’이라 번역되지만,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는 세상을 지배하는 영웅이 아니다.

인간 밖에서 내려오는 구원자도 아니다. 인간 안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더 깊은 자신, 어제의 자신을 끊임없이 넘어서는 인간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남을 이기는 방법은 많이 배운다. 시험에서 이기는 법,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 조직에서 인정받는 법은 익숙하게 익힌다. 그런데 정작 자신을 이기는 법은 배우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화를 이기는 법. 욕심을 이기는 법. 게으름을 이기는 법. 두려움을 이기는 법.

인생에서 가장 긴 싸움은 세상과의 싸움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인데도 말이다.

불현듯 든 생각이다. 사람은 높은 산을 오르느라 바쁜 것이 아니라, 가슴속에 있는 작은 언덕 하나를 넘지 못해 평생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은 아닐까.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는 그 언덕을 넘어서는 사람이다. 오늘의 분노보다 내일의 평화를 선택하는 사람. 익숙한 길보다 옳은 길을 선택하는 사람. 박수받는 성공보다 부끄럽지 않은 양심을 선택하는 사람. 그 사람이 이미 위버멘쉬를 향해 걷고 있는 사람이다.

강은 바다를 만나기 위해 다른 강과 경쟁하지 않는다. 묵묵히 자기 물길을 지켜 흘러갈 뿐이다. 참나무는 소나무보다 빨리 자라려 하지 않는다. 제 계절을 견디며 제 나이테를 완성한다. 자연은 한 번도 비교하며 살아가지 않는다. 사람만이 남의 계절을 부러워하다 자신의 봄을 놓친다.

오늘 우리는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는 시대를 맞이했다. 기계는 기억을 대신하고, 계산을 대신하며, 문장까지 대신 써 준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끝까지 남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자기 극복이라고 생각한다. 기계는 정보를 축적할 수 있지만, 자신의 욕망을 성찰하지는 못한다. 기계는 답을 제시할 수 있지만, 자신의 삶을 반성하지는 못한다. 기계는 언어를 만들 수 있지만, 눈물의 의미를 살아내지는 못한다.

인간은 생각하기 때문에 위대한 존재가 아니다. 자신을 바꾸려 하기 때문에 위대한 존재이다. 어제보다 조금 더 너그러워지고, 어제보다 조금 더 정직해지고, 어제보다 조금 더 깊이 사랑하려는 마음. 그 작은 변화가 인간을 위버멘쉬로 이끈다. 많은 사람은 인생을 오르는 일이라고 말한다.

외려 벗겨 내는 일이다. 교만을 벗기고, 욕심을 벗기고, 허영을 벗기고, 두려움을 벗겨 낼 때 비로소 본래의 사람이 드러난다.

조각가는 돌을 더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 낼 뿐이다. 위대한 인격도 무언가를 덧붙여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욕망을 하나씩 덜어 낼 때 비로소 본래의 빛을 드러낸다.

어쩌면 위버멘쉬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오늘도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사람. 실패를 원망하지 않고 배움으로 바꾸는 사람. 남을 이기기보다 어제의 자신을 넘어서려는 사람. 그 사람이 이미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의 길 위에 서 있다. 인생은 남보다 앞서 달리는 경주가 아니다. 한 그루 나무가 깊게 뿌리를 내리듯, 한 줄기 강이 끝내 바다를 만나듯, 자신의 영혼을 조금씩 넓혀 가는 긴 순례이다.

니체는 인간에게 하늘을 약속하지 않았다. 대신 더 높은 자신을 약속했다. 그 약속은 먼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나를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드는 일. 오늘의 나를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깊게 만드는 일. 오늘의 나를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자유롭게 만드는 일. 그 작은 한 걸음이 쌓여 한 사람의 운명이 되고, 한 시대의 품격이 된다.

위버멘쉬(Übermensch).

그것은 영웅의 이름이 아니다. 매일 자신을 새롭게 빚어 가는 사람에게 니체가 남긴 가장 아름다운 호칭이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