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몇 백 년에 한 번 오는 2월 ㅡ청람 김왕식

몇 백 년에 한 번 오는 2월 2026.02.01
몇 백 년에 한 번 오는 2월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몇 백 년에 한 번 오는 2월

올해 2월 달력은 이상하리만큼 꽉 차 있다.

틈이 없다. 하얀 여백이 숨을 쉴 자리조차 없이 숫자들이 정갈한 행렬을 이루고 있다. 마치 “한 칸도 허투루 쓰지 말라”는 듯 달력 자체가 단단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사람은 보통 2월을 짧아서 좋은 달이라 말한다. 덜 버티면 되니까, 덜 견디면 되니까. 헌데, 올해 2월은 다르다. 짧은 달이면서도 빈칸을 허락하지 않는다. 보통의 2월이 “쉬어갈 숨”을 남겨 둔다면, 올해의 2월은 숨조차 “일정”으로 적어 두는 달이다.

더 신기한 것은 그 꽉 찬 달력이 어설픈 혼잡이 아니라 완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몇 백 년에 한 번쯤 나타난다는 정교한 배열의 2월.

날짜들은 서로 부딪히지 않고, 요일들은 흔들림 없이 맞물려 한 장의 설계도처럼 가지런하다. 어느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은 채 시간이 스스로 건축해 낸 정밀한 집 한 채 같다.

달력은 원래 시간을 담는 그릇이다. 올해 2월의 달력은 그릇이 아니라 쇠로 만든 틀처럼 보인다.

이 달을 지나려면 느슨한 마음은 통과하지 못한다. 대충 살던 습관, 미루던 버릇, 흐릿한 결심은 이 달력 앞에서 자연히 납작해진다. 완벽한 구조라는 것은 아름다움이면서 동시에 사람을 긴장시키는 질서다. 그렇다고 해서 올해 2월이 차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외려 이 빽빽함 속에는 묘한 위로가 있다.

비어 있는 날이 없다는 것은 허무가 파고들 틈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을 흔드는 것은 대개 바쁨이 아니라 멈춰 선 시간의 공백이다. 그 공백에서 쓸쓸함이 자라고 후회가 고개를 들며 불안이 마음을 점령한다.

올해 2월은 그 허술한 틈을 주지 않는다. 달력이 꽉 차 있다는 건 삶이 도망갈 구멍이 없다는 것. 결국 나 자신을 정면으로 만나야 한다는 뜻이다. 이 달은 가랑비처럼 작고 촘촘한 날들이 한꺼번에 내려앉는 달이다.

큰 사건보다 작은 반복이 무게를 갖는다. 하루를 살아내는 일이 어느새 장인이 하는 작업처럼 정교해진다. 시간은 말을 하지 않지만 달력의 구조는 말한다. “흔들리지 말아라. 네 하루를 네 손으로 채워라.”

하여, 올해 2월은 그 자체로 하나의 메시지다.

완벽한 배열은 완벽한 인생을 뜻하지 않는다. 하지만 완벽한 배열은 완벽을 향해 가는 태도를 요구한다. 허투루 넘기지 않는 눈, 대충 살지 않는 손, 흘려보내지 않는 마음. 그런 태도만이 이 촘촘한 달을 품을 수 있다.

달력의 빈칸은 사람에게 쉼을 주기도 하지만 사람에게 핑계도 준다. 올해 2월은 그 핑계를 거두어 간다. 대신 가장 단순한 문장을 남긴다.

“너는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

꽉 찬 달력은 삶을 압박하는 종이가 아니라 삶을 세우는 설계도다. 올해 2월은 몇 백 년에 한 번 오는 완벽한 구조의 달. 그 달이 우리에게 주는 진짜 선물은 시간이 아니라 시간을 다루는 자세다.

이 2월을 지나며 적는다.

빈칸이 없어서 힘든 달이 아니라, 빈칸이 없기에 마음이 무너지지 않는 달이었다고.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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