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개나리의 변명 ㅡ청람 김왕식

개나리의 변명 2026.03.03
개나리의 변명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개나리의 변명

청람 김왕식

봄은 노랑으로 시작된다

아직 바람은 마른 칼날이고 땅은 얼음의 기억을 품고 있는데

가지 끝에 작은 불씨 하나 툭,

켜진다

사람들은 저것을 희망이라 부르지만

개나리는 겨울의 등 뒤에 붙이는 마지막 경고문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잎도 없이 맨몸으로 빛을 매다는 일

꽃이 되려는 욕망이 아니라 추위를 견딘 자의 신호

속은 텅 비어 바람이 지나가고

겉만 환하게 등불처럼 켜진다

괜찮은 척 먼저 웃어버리는 사람처럼

벚꽃 아래 사람들은 멈춰 서지만

개나리 앞에서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너무 먼저 피는 자의 고독

노란빛은 따뜻해 보이나

실은 차가운 햇살을 붙들고 서 있는 색

개나리는 봄을 축하하지 않는다

봄을 불러낸다

얼어붙은 계절의 어깨를 밀며 “이쯤이면 와도 되지 않겠느냐”

그래서 저 노랑은 꽃잎이 아니라

확성기

아직 녹지 않은 땅 위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여는 목소리

기다리는 대신 밀어 올리는 힘

겨울의 마지막 단추를 노랗게 풀어내는

저 대담한 손끝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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