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누군가의 저녁이 되어주는 사람 ㅡ청람 김왕식

누군가의 저녁이 되어주는 사람 2026.09.11
누군가의 저녁이 되어주는 사람

누군가의 저녁이 되어주는 사람

세상에는 큰일보다 작은 일이 사람을 드러낼 때가 많다.

누군가 쓰러졌을 때 손을 내미는 일

비에 젖은 사람에게 우산 한쪽을 비워주는 일

길을 잃은 이에게 몇 걸음 함께 가주는 일

이런 일에는 학벌도 필요 없고

직함도 필요 없고

통장 잔고도 필요 없다.

사람의 품격은 거창한 자리에서보다

자기 일정이 어긋나는 순간에 더 잘 드러난다.

회의에 늦을까 두려운 사람

기차를 놓칠까 조급한 사람

약속시간에 쫓기는 사람

그 앞에 누군가의 곤경이 놓였을 때

사람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

지나가거나

멈추거나.

세상은 대부분 지나가는 사람들에 의해 움직인다.

출근해야 하고

약속을 지켜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고

자기 몫의 하루를 끝내야 한다.

그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다만 세상 어느 모퉁이에는

누군가 반드시 멈춰야만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노인이 길가에 주저앉아 있다고 생각해보자.

손에서 떨어진 물건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다.

그는 떨어진 것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발밑에 있는지

차도로 굴러갔는지

누군가 밟고 지나갔는지 알 수 없다.

그때 지나가던 한 사람이 자기 시간을 내려놓는다.

허리를 굽힌다.

하나를 줍는다.

또 하나를 줍는다.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는 동안

사실은 물건만 줍는 것이 아니다.

무너진 사람의 마음도 함께 일으킨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손은

많이 가진 손이 아니다.

남이 떨어뜨린 것을 대신 주워주는 손이다.

사람들은 종종 사랑을 너무 크게 생각한다.

전 재산을 내놓아야 사랑인 줄 알고

목숨을 걸어야 희생인 줄 알고

세상을 뒤흔드는 일을 해야 선행인 줄 안다.

아니다.

사랑은 훨씬 작게 시작된다.

자기 걸음을 잠시 늦추는 일이다.

자기 몫의 편리함을 조금 덜어내는 일이다.

자기 시간에서 십 분을 잘라

타인의 절망에 붙여주는 일이다.

예수의 삶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높은 곳에 올라 자신을 증명한 사람이 아니라

낮은 자리로 내려가 사람을 일으킨 사람.

많은 말을 남긴 사람이기 전에

사람의 상처 가까이에 몸을 두었던 사람.

배고픈 이를 먹이고

외로운 이 곁에 앉고

밀려난 이를 사람들 가운데 다시 세운 사람.

예수를 닮는 일은

예수에 대해 많이 말하는 데 있지 않다.

누군가의 아픔 앞에서 발걸음을 멈출 수 있는가.

그 하나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어느 날 누군가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

“당신 때문에 오늘을 버티게 되었습니다.”

그보다 더 큰 칭찬이 있을까.

“당신을 만나 아직 세상이 살 만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보다 더 귀한 훈장이 있을까.

신앙은 입술에서 가장 먼저 드러나지 않는다.

사람을 대하는 손에서 드러난다.

누군가를 기다려주는 발에서 드러난다.

자기 것을 조금 비워 타인의 자리를 만들어주는 삶에서 드러난다.

세상을 바꾸는 데 언제나 거대한 힘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 작은 선택이 한 도시보다 크고

한 시대보다 깊을 때가 있다.

하늘은 멀리 있는 듯 보이지만

사람 하나의 친절 속에서 뜻밖에 낮아진다.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는 손끝까지.

누군가의 무너진 하루를 다시 세워주는 자리까지.

어쩌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을 구할 영웅이 아니라

오늘 자기 앞에 놓인 한 사람을

지나치지 않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거창하게 세상을 사랑할 필요는 없다.

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면 된다.

그 한 사람이 다시 다른 한 사람을 일으킨다면

세상은 그렇게

아주 작은 사람들의 손으로

조금씩 밝아질 것이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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