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문장 앞에 앉다 ㅡ청람 김왕식

문장 앞에 앉다 2026.03.17
문장 앞에 앉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문장 앞에 앉다

청람 김왕식

문장 앞에 앉는 일은 의자 하나 끌어당기는 일과 다르다

보이지 않는 나를 내 앞에 불러 세우는 일이다

오늘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함부로 지나친 얼굴은 없었는가 쉽게 잊어버린 슬픔은 없었는가 내가 편하자고 남의 침묵을 모른 척한 적은 없었는가

문장은 묻지 않는 듯 묻는다

시를 쓰려는 사람은 먼저 자기 안의 서두름부터 조용히 내려놓아야 한다

한 줄은 기교보다 늦게 오고 진실보다 먼저 오지 않는다

시 앞에서는 허세가 오래 버티지 못한다

문장 앞에 앉는다는 것은 잘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짓 없이 있기 위해 잠시 세상을 멈추는 일이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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