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화쟁 花爭 ㅡ청람 김왕식

화쟁 花爭 2026.04.06
화쟁 花爭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화쟁 花爭

청람 김왕식

봄이 온다는 것은 계절이 움직이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들이 한꺼번에 피어나는 일이다. 한 가지 색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기운이, 각자의 결을 가진 존재들로 나뉘어 세상 위에 번지는 순간이다.

그 시작은 늘 소리 없이 다가온다. 얼음이 풀리기 직전의 공기, 아직 겨울의 냄새가 남아 있는 가지 위에서 매화가 먼저 눈을 뜬다. 매화는 피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버텨온 시간을 조금 풀어놓는다. 그 꽃은 화려하지 않다. 대신 오래 참고도 무너지지 않았던 마음의 모양을 하고 있다. 그래서 매화를 본다는 것은 꽃을 보는 일이 아니라, 한 계절을 견딘 존재를 만나는 일이다.

세상은 늘 먼저 온 것을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벚꽃이 나타난다. 매화가 혼자서 피었다면, 벚꽃은 함께 피어난다. 바람이 불기 전부터 이미 흩어질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한 그 꽃들은, 하나의 나무가 아니라 하나의 장면이 된다. 사람들은 그 아래에서 웃고, 사진을 찍고, 잠시 멈춘다. 벚꽃은 스스로를 드러내는 꽃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간을 붙잡는 꽃이다. 매화가 내면이라면, 벚꽃은 기억이다.

그 사이에서 목련은 다른 방식으로 서 있다. 크고 희다. 다른 꽃들이 서로를 의식하며 피어날 때, 목련은 하늘을 향해 스스로를 연다. 그 꽃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피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닿을 수 있는 가장 높은 방향을 향해 열릴 뿐이다. 그래서 목련 앞에 서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든다. 그 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세를 가르친다.

산 쪽으로 눈을 돌리면, 진달래가 있다. 길이 없는 곳에도, 이름 붙지 않은 언덕에도, 진달래는 번진다. 누가 심은 것도 아니고, 누가 가꾸는 것도 아니지만, 그 꽃은 어느 날 갑자기 산 전체를 물들인다. 진달래는 존재를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오래 머물러, 결국 풍경이 된다. 매화가 시작이라면, 벚꽃이 절정이라면, 진달래는 스며듦이다.

길가에는 개나리가 있다. 담장을 따라, 골목을 따라, 어디든지 가볍게 번지는 노란빛. 개나리는 깊이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 밝음을 건넨다. 그 꽃은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냥 피고, 그냥 웃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개나리를 볼 때마다 설명 없이 봄을 느낀다. 어떤 계절은 이해가 아니라 직감으로 오는 법이다.

돌 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민들레가 있다. 아무도 심지 않았고, 누구도 돌보지 않았지만, 그 꽃은 거기 있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 발길이 스친 자리, 틈이라고 불리는 곳마다 민들레는 스스로 자리를 만든다. 그 꽃은 화려하지 않다. 대신 사라지지 않는다. 한 번 피는 것이 아니라, 계속 피는 방식으로 존재를 이어간다. 민들레는 봄의 끈기다.

그늘 아래로 시선을 낮추면, 제비꽃이 있다. 작고, 낮고, 조용하다. 쉽게 보이지 않지만, 보이기 시작하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제비꽃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보는 이의 자세를 바꾼다. 고개를 숙여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꽃. 그래서 그 꽃은 말한다. 봄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낮아질 때 비로소 가까워진다고.

이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피어나는 꽃들은, 서로를 닮지 않는다. 같은 계절 속에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 누가 먼저인지, 누가 더 아름다운지, 누가 더 오래 기억되는지 묻는 일은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된 질문일지도 모른다.

매화는 기다림의 언어로 피고,

벚꽃은 순간의 언어로 흩어지고,

목련은 자세의 언어로 서 있으며,

진달래는 스며드는 언어로 번지고,

개나리는 웃음의 언어로 열리고,

민들레는 견딤의 언어로 남으며,

제비꽃은 낮아짐의 언어로 숨는다.

이 모든 언어가 동시에 존재할 때, 비로소 우리는 봄을 본다.

봄은 하나의 꽃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피어나는 존재들이,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이루어내는 하나의 장면이다. 다투는 듯 보이지만, 그 다툼마저 하나의 조화가 되는 상태. 어쩌면 이 세상도 그렇다.

각자의 방식으로 피어나는 존재들이, 서로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결국 하나의 계절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봄은 늘 완성되지 않는다. 피고, 지고, 다시 피며, 서로 다른 시간들이 겹쳐질 때마다 조금씩 새로워진다.

봄은 오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피어나는 것들이 모여 비로소 만들어지는 이름이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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