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김상진 시인의 시 《봄길을 가다 》 ㅡ청람 김왕식

김상진 시인의 시 《봄길을 가다 》 2026.04.07
김상진 시인의 시 《봄길을 가다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김상진 시인

봄길을 가다

雲海 김 상 진

청명淸明이라 이 좋은 봄날 기차를 탔습니다 남으로 가는 기차랍니다

달리는 철길 가로 활짝 핀 봄꽃들과 함께 갑니다 노란 손수건 흔들어 주는 개나리 울타리 전송받고 담장 너머로 4월의 노래 흰 목련 뒤로하고 산등성이 타고 마중 나온 옛 임인 듯 진달래가 달려내려 오고 전차 위의 개선장군처럼 금강 양 둑 벚꽃 사열을 받으니

차창 밖으로의 내 이 여행은 봄과의 이별 여행입니다

천천히 천천히 가라고 붙잡아도 4월의 봄은 해일처럼 밀고 북진 북진합니다 동토 북녘땅에도 꽃나라 금방 통일입니다

꽃들과의 이별 남으로 가는 내 봄날 여행은 찰나刹那입니다

싸리꽃 진자리 봄 나비 등에 어느덧 여름이 앉아있습니다.

2026년 4월 5일 청명, 부활절 樵夫

김상진 시인의 시 《봄길을 가다 》

— 계절을 통과하는 존재의 시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움직이는 기차 안에서 봄을 만난다는 설정은 단순한 여행의 서사가 아니다. 이 시에서 기차는 공간을 이동하는 수단이 아니라 시간을 가로지르는 장치로 작동한다. 남으로 향하는 물리적 이동 위에, 계절이 북으로 밀려 올라가는 역방향의 흐름이 겹쳐지면서, 시는 시작부터 시간과 공간의 교차 속에 놓인다.

“청명淸明이라”는 첫 구절은 단순한 절기 표기가 아니다. 맑고 밝은 계절의 정점을 짚어내며, 동시에 곧 사라질 순간을 예감하게 하는 시간의 이름이다. 이어지는 “이 좋은 봄날 기차를 탔습니다”라는 문장은 평이한 진술처럼 보이지만, 이미 그 안에는 떠남과 지나감의 정조가 깃들어 있다. 이 시의 여행은 어디로 가는가보다, 무엇이 지나가고 있는가에 더 가까이 닿아 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봄의 풍경은 화려하다. 개나리는 “노란 손수건 흔들어 주는 울타리”가 되고, 목련은 “4월의 노래”를 남긴 채 뒤로 물러나며, 진달래는 “옛 임”처럼 산등성이를 타고 달려 내려온다. 여기서 꽃들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다. 이별을 배웅하고, 기억을 불러내고, 감정을 환기하는 존재들이다. 특히 “옛 임인 듯 진달래”라는 구절은 봄의 풍경을 개인의 기억과 결합시키며, 자연을 정서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이때 봄은 더 이상 계절이 아니라 사람과 관계 맺는 시간이 된다.

금강 양 둑의 벚꽃을 “개선장군처럼 사열을 받는다”라고 표현한 대목에서는 시선이 다시 확장된다. 여기에는 단순한 아름다움의 감탄이 아니라, 계절의 절정이 만들어내는 장엄함과 과잉의 순간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 장엄함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시는 그 절정의 순간을 붙잡지 않고, 곧바로 그것이 지나가고 있음을 드러낸다.

“봄과의 이별 여행입니다”라는 한 문장은 이 시의 중심을 정확히 짚는다. 이 여행은 봄을 향한 것이 아니라, 봄으로부터 멀어지는 여행이다. 그래서 이어지는 “천천히 가라고 붙잡아도 / 4월의 봄은 / 해일처럼 밀고 북진 북진합니다”라는 구절은 인상적이다. 봄은 머무르는 계절이 아니라, 밀려오는 동시에 떠나는 힘이다. 특히 “북진”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계절 이동을 넘어, 동토의 땅까지 생명을 확장하는 생명의 운동성을 암시한다. 이때 봄은 개인의 감상이 아니라, 자연의 거대한 흐름으로 자리한다.

“꽃나라 금방 통일입니다”라는 구절에서는 시인의 시선이 한층 넓어진다. 계절의 흐름을 민족적 상상력과 연결시키며, 봄을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닌 분단된 세계를 넘어서는 생명의 은유로 확장한다. 그러나 이 확장은 무겁지 않다. 시는 선언하지 않고, 은유로 남긴다.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마지막 연은 이 시의 정서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다. “꽃들과의 이별 / 남으로 가는 내 봄날 여행은 / 찰나刹那입니다” 여기서 ‘찰나’는 단순한 짧음이 아니다. 아름다움이 가장 강하게 존재하는 순간이 동시에 사라지는 순간이라는 깨달음이다. 봄은 길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붙잡을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선명해지는 시간이다.

“싸리꽃 진자리 봄 나비 등에 / 어느덧 여름이 앉아있습니다”라는 마지막 구절은 계절의 교체를 매우 절묘하게 보여준다. 여름은 갑자기 오지 않는다. 사라지는 봄의 자리 위에 조용히 내려앉는다. 이 미묘한 변화의 포착은 이 시가 가진 가장 큰 미덕이다. 거창한 전환 없이, 단 한 장면으로 계절의 흐름을 완성한다.

이 시는 봄을 찬미하지 않는다. 봄을 붙잡으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지나가는 것을 지나가게 두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시가 남기는 것은 감탄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인식이다.

계절은 머무르지 않고, 삶도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는 그 사이를 지나가는 존재일 뿐이다. 시 《봄길을 가다》는 꽃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가 아니라, 아름다움이 지나가는 속도를 바라보는 시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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