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암릉은 사람의 마음에도 능선을 만든다 ― 만후 서재용 시인의 「사패산 암릉」 을 읽다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암릉은 사람의 마음에도 능선을 만든다 ― 만후 서재용 시인의 「사패산 암릉」 을 읽다 2026.09.07
암릉은 사람의 마음에도 능선을 만든다 ― 만후 서재용 시인의 「사패산 암릉」 을 읽다

사패산 암릉

시인 만후 서재용

높아진 푸른 하늘

구월 바람 반기는데

천길 절벽 아찔한 길

거친 숨 가빠 와도

품어준 거친 암봉에

상한 마음 씻어내네

암릉은 사람의 마음에도 능선을 만든다

― 만후 서재용 시인의 「사패산 암릉」 을 읽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산을 자주 찾는 사람에게는 얼굴보다 먼저 능선이 생긴다.

눈빛에는 계곡물이 흐르고, 말투에는 바위의 결이 스민다.

만후 서재용 시인의 시를 숙독하면, 그가 산에 오르는 것이 단순한 등산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다시 세우는 하나의 의식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사패산 암릉」 은 짧다.

불과 여섯 행 속에는 하늘과 바람과 절벽과 암봉, 그리고 상처 입은 한 인간의 내면이 모두 들어 있다.

“높아진 푸른 하늘

구월 바람 반기는데

천길 절벽 아찔한 길

거친 숨 가빠 와도

품어준 거친 암봉에

상한 마음 씻어내네”

첫 장면은 맑다.

구월의 하늘은 여름의 습기를 털어낸 뒤 한층 높아져 있고, 바람 또한 계절의 문턱을 넘어온 듯 선선하다.

여기까지의 세계는 평온하다.

곧 시는 몸의 긴장으로 방향을 튼다.

‘높아진 하늘’과 ‘천길 절벽’은 서로 반대 방향의 이미지다.

하늘은 위로 열리고, 절벽은 아래로 꺼진다.

이 수직의 긴장 사이에 시인이 서 있다.

산행의 본질도 어쩌면 이와 닮아 있다.

사람은 하늘을 보며 올라가지만, 발아래의 낭떠러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

삶 또한 꿈만 바라보며 살 수 없고, 추락의 가능성을 품은 채 한 걸음씩 내디뎌야 한다.

서재용 시인의 시적 미덕은 이 위험을 과장하지 않는 데 있다.

절벽 앞에서 영웅이 되려 하지 않는다.

숨이 가쁘면 가쁘다고 쓰고, 아찔하면 아찔하다고 말한다.

바로 이 담백함이 그의 기상을 드러낸다.

강한 사람은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움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발을 거두지 않는 사람이다.

마지막 두 행에서 시는 산행의 기록을 넘어 마음의 기록이 된다.

여기서 가장 인상적인 말은 ‘품어준 거친 암봉’이다.

‘거칠다’와 ‘품다’는 쉽게 한자리에 놓이지 않는다.

대개 품는 것은 부드럽고 따뜻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서재용 시인에게 위로를 주는 것은 부드러운 꽃밭이 아니라 거친 바위다.

이 역설이 이 작품의 중심이다.

사람은 때로 부드러운 말보다 단단한 바위 앞에서 더 깊이 위로받는다.

바위는 위로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충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수천 년 한자리에서 비바람을 견디며 서 있을 뿐이다.

그 침묵 앞에서 인간의 상처는 자신의 크기를 다시 보게 된다.

암봉이 상한 마음을 씻어낸다는 표현 역시 흥미롭다.

바위에는 물이 없다.

그런데 마음을 씻는다.

물 없는 세정이다.

산의 높이와 바람의 투명함, 암석의 묵묵함이 마음의 먼지를 털어내는 것이다.

만후 서재용 시인이 늘 산을 찾는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산은 그에게 풍경이 아니라 스승에 가깝다.

그의 맑은 성품에는 산골짜기의 물빛이 배어 있고,

그의 올곧은 기상에는 능선의 직립이 있으며,

그의 담백한 언어에는 바위가 가진 군더더기 없는 침묵이 있다.

산을 오래 다닌 사람은 산을 닮는다.

바람 앞에서 쓸데없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절벽 앞에서 허세를 부리지 않으며,

정상에 올라서도 자신이 높아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산이 높을수록 고개를 숙여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사패산 암릉」 은 한 인간이 자연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씻고, 다시 마음의 중심을 세우는 짧은 수행록이다.

산은 시인에게 말하지 않는다.

다만 암릉 하나를 내어준다.

그 위를 걸어본 사람만이 안다.

사람의 마음에도 절벽이 있고,

그 절벽을 지나야 비로소 보이는 하늘이 있다는 것을.

서재용 시인의 시에는 그 하늘이 있다.

높아서 맑은 것이 아니라,

수많은 암릉을 지나왔기에 맑아진 하늘이다.

그의 시가 지닌 가장 아름다운 힘은 바로 거기에 있다.

산을 노래하면서, 끝내 사람의 마음을 보여준다는 것.

만후 서재용 시인에게 산은 올라야 할 곳이 아니라,

자신을 조금씩 덜어내고 돌아오는 곳이다.

산에서 무엇을 얻었는가보다,

무엇을 내려놓고 왔는가를 묻는 시.

「사패산 암릉」 은 바로 그 한 줄의 질문 위에 서 있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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