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의 생애는 어디로 갔는가 ― 「어머니의 여한가餘恨歌」 를 읽고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한 여인의 생애는 어디로 갔는가 ― 「어머니의 여한가餘恨歌」 를 읽고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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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여한가(餘恨歌)
열여덟살 꽃다울제
숙명처럼 혼인하여
두세살씩 터울두고
일곱남매 기르느라
철지나고 해가는줄
모르는채 살았구나
봄여름에 누에치고
목화따서 길쌈하고
콩을갈아 두부쑤고
메주띄워 장담그고
땡감따서 곶감치고
배추절여 김장하고
호박고지 무말랭이
넉넉하게 말려두고
어포육포 유밀등과
과일주에 조청까지
정갈하게 갈무리해
다락높이 간직하네
찹쌀쪄서 술담그어
노릇하게 익어지면
용수박아 제일먼저
제주부터 봉해두고
시아버님 반주꺼리
맑은술로 떠낸다음
청수붓고 휘휘저어
막걸리로 걸러내서
들일하는 일꾼네들
새참으로 내보내고
나머지는 시루걸고
소주내려 묻어두네
피난나온 권속들이
스무명은 족하온데
더부살이 종년처럼
부엌살림 도맡아서
보리쌀로 절구질해
연기불로 삶아건져
밥도짓고 국도끓여
두번세번 차려내고
늦은저녁 설거지를
더듬더듬 끝마치면
몸뚱이는 젖은풀솜
천근만근 무거웠네
동지섣달 긴긴밤에
물레돌려 실을뽑아
날줄들을 갈라늘여
베틀위에 걸어놓고
눈물한숨 졸음섞어
씨줄들을 다져넣어
한치두치 늘어나서
무명한필 말아지면
백설같이 희어지게
잿물내려 삶아내서
햇볕으로 바래기를
열두번은 족히되리
하품한번 마음놓고
토해보지 못한신세
졸고있는 등잔불에
바늘귀를 겨우꿰어
무거운눈 올려뜨고
한뜸두뜸 꿰매다가
매정스런 바늘끝이
손톱밑을 파고들면
졸음일랑 혼비백산
간데없이 사라지고
손끝에선 검붉은피
몽글몽글 솟아난다
내자식들 헤진옷은
대강해도 좋으련만
점잖으신 시아버님
의복수발 어찌할꼬
탐탁잖은 솜씨라서
걱정부터 앞서는데
공들여서 마름질해
정성스레 꿰맸어도
안목높고 까다로운
시어머니 눈에안차
맵고매운 시집살이
쓴맛까지 더했다네
침침해진 눈을들어
방내부을 둘러보면
아랫목서 윗목까지
자식들이 하나가득
차내버린 이불깃을
다독다독 여며주고
막내녀석 세워안아
놋쇠요강 들이대고
어르리고 달래면서
어렵사리 쉬시키면
일할엄두 사라지고
한숨만이 절로난다
학식높고 점잖으신
시아버님 사랑방에
사시사철 끊임없는
접빈객도 힘겨운데
사대봉사 제사들은
여나무번 족히되고
정월한식 단오추석
차례상도 만만찮네
식구들은 많다해도
거들사람 하나없고
여자라곤 상전같은
시어머니 뿐이로다
고추당추 맵다해도
시집살이 더매워라
큰아들이 장가들면
이고생을 면할건가
무정스런 세월가면
이신세가 나아질까
이내몸이 죽어져야
이고생이 끝나려나
그러고도 남는고생
저승까지 가려는가
어찌하여 인생길이
이다지도 고단한가
토끼같던 자식들은
귀여워할 새도없이
어느틈에 자랐는지
짝을채워 살림나고
산비둘기 한쌍같이
영감하고 둘만남아
가려운데 긁어주며
오순도순 사는것이
지지리도 복이없는
내마지막 소원인데
마음고생 팔자라서
그마저도 쉽지않네
안채별채 육간대청
휑ㅡ하니 넓은집에
가문날에 콩나듯이
찾아오는 손주녀석
어렸을적 애비모습
그린듯이 닮았는데
식성만은 입이짧은
제어미를 택했는지
곶감대추 유과정과
수정과도 마다하고
정주어볼 틈도없이
손님처럼 돌아가네
명절이나 큰일때는
객지사는 자식들이
어린것들 앞세우고
하나둘씩 모여들면
절간같던 집안에서
웃음꽃이 살아나고
하루이틀 묵었다가
제집으로 돌아갈땐
푸성귀에 마른나물
간장된장 양념까지
있는대로 퍼주어도
더못주어 한이로다
손톱발톱 길새없이
자식들을 거둔것이
허리굽고 늙어지면
효도보려 한거드냐
속절없는 내한평생
영화보려 한거드냐
꿈에라도 그런것은
상상조차 아니했고
고목나무 껍질같은
두손모아 비는것이
내신세는 접어두고
자식걱정 때문일세
회갑진갑 다지나고
고희마저 눈앞이라
북망산에 묻힐채비
늦기전에 해두려고
때깔좋은 안동포를
넉넉하게 끊어다가
윤달든해 손없는날
대청위에 펼쳐놓고
도포원삼 과두장매
상두꾼들 행전까지
두늙은이 수의일습
내손으로 다지었네
무정한게 세월이라
어느틈에 칠순팔순
눈어둡고 귀어두워
거동조차 불편하네
홍안이던 큰자식은
중늙은이 되어가고
까탈스런 울영감은
자식조차 꺼리는데
내가먼저 죽고나면
그수발을 누가들꼬
제발덕분 비는것은
내가오래 사는거라
내살같은 자식들아
나죽거든 울지마라
인생이란 허무한것
이렇게도 늙는것을
낙이라곤 모르고서
한평생을 살았구나
원도한도 난모른다
이세상에 미련없다
서산마루 해지듯이
새벽별빛 바래듯이
잦아들듯 스러지듯
흔적없이 지고싶다.

■ 한 여인의 생애는 어디로 갔는가
― 「어머니의 여한가餘恨歌」 를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어머니의 손에는 손금보다 먼저 가족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 긴 「어머니의 여한가餘恨歌」 를 숙독하고 나면 이상한 일이 생긴다. 처음에는 옛 어머니들의 고단한 시집살이를 읽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글 속의 여인이 사라지고 각자의 어머니 한 분이 그 자리에 앉아 있다. 부엌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불을 지피던 어머니, 밤늦도록 바느질하던 어머니, 자식이 돌아갈 때면 무엇 하나라도 더 싸주지 못해 보따리 끝을 자꾸 만지작거리던 어머니. 끝내 자기 몫의 인생은 한 번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채 늙어버린 한 여자, 그 여자가 보인다.
「어머니의 여한가」 가 가슴을 치는 까닭은 거창한 사건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에를 치고, 목화를 따고, 길쌈을 하고, 두부를 쑤고, 메주를 띄우고, 장을 담그고, 김장을 하고, 술을 빚고, 밥을 짓고, 빨래하고, 바느질하고, 제사를 준비하고, 손님을 치른다. 그런 일들이 한 줄 한 줄 이어진다.
겉으로 보면 한 집안의 살림살이 목록이다. 그런데 끝까지 읽어보면 그것은 살림 목록이 아니다. 한 여자의 목숨이 닳아 없어진 순서다. 쌀 한 되가 밥이 되기까지 어머니의 허리가 먼저 굽었고, 무명 한 필이 옷이 되기까지 어머니의 눈이 먼저 어두워졌다. 자식 하나가 어른이 되기까지 어머니의 젊음 하나가 먼저 없어졌다.
우리는 흔히 어머니가 자식을 키웠다고 말한다. 어쩌면 더 정확한 말은 이것인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자기 생을 조금씩 떼어 자식의 생에 붙여주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아픈 대목은 고생 그 자체만이 아니다. 그토록 고단하게 살았으면서도 늙은 어머니가 끝내 바라는 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자식들이 찾아오면 푸성귀를 싸주고, 마른나물을 챙기고, 간장 된장 양념까지 내어준다. 평생 퍼주고도 마지막 마음은 ‘더 못 주어 한이로다’이다.
여기에 어머니라는 존재의 비극과 숭고함이 함께 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은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 주고도 아직 덜 주었다고 생각하는 사람, 어머니가 그런 사람이었다.
더 가슴 저미는 것은 수의壽衣를 마련하는 장면이다. 한 여인이 자기 손으로 자신이 죽은 뒤 입을 옷을 짓는다. 평생 가족의 옷을 만들던 손이 마침내 마지막으로 만드는 옷이 자신의 수의다. 이보다 더 처연한 장면이 어디 있을까. 어린 자식의 저고리를 꿰매던 그 손, 시아버지의 의복을 만들던 그 손, 남편의 옷을 손질하던 그 손이 늙어서는 자신이 관 속에 입고 갈 옷의 솔기를 맞춘다. 그 손 앞에서는 철학도 종교도 한동안 말을 잃어야 한다.
세상을 한참 들여다보면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달라진다. 누가 옳았는가보다 누가 얼마나 아팠는가를 먼저 보게 되고, 무슨 말을 했는가보다 무슨 말을 평생 하지 못했는가를 헤아리게 된다.
이 어머니에게는 평생 하지 못한 말이 너무 많았을 것이다. 힘들다. 쉬고 싶다. 나도 한번 놀러 가고 싶다. 나도 예쁜 옷을 입고 싶다. 오늘은 밥하기 싫다. 나도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 나도 사랑받고 싶다. 아마 수천 번 목구멍까지 올라왔을 말들이다.
그 말들을 삼키고 대신 밥상을 차렸다. 울음을 삼키고 대신 아이의 이불을 여며주었다. 서러움을 삼키고 대신 시부모의 옷을 꿰맸다. 그렇게 삼킨 말들이 한평생 쌓여 ‘한恨’이 되었을 것이다.
한은 원망만이 아니다. 말하지 못한 사랑이며, 살아보지 못한 생이며, 울어보지 못한 눈물이다. 한국의 옛 어머니들에게 한이 깊었던 것은 사랑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사랑이 너무 많았으나 그 사랑 속에 자기 자신을 넣어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이 글을 읽는 오늘의 우리는 한 가지를 더 생각해야 한다. 어머니의 희생을 아름답다고만 말해서는 안 된다. 아름답다는 말로 그 고통을 다시 당연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며느리는 원래 참아야 했고, 어머니는 원래 희생해야 했고, 여자는 원래 집안을 위해 살아야 했다는 식으로 읽는다면 우리는 이 작품의 눈물을 절반밖에 읽지 못한 것이다.
이 노래가 우리에게 남기는 더 깊은 가르침은 누구의 희생도 당연한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사랑은 귀하지만, 한 사람의 생을 소진시켜야만 유지되는 사랑은 다음 세대에서는 달라져야 한다. 어머니의 고통을 기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고통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는 일이다.
그럼에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무너지는 까닭이 있다. 우리는 너무 늦게 어머니가 ‘어머니이기 이전에 한 여자였음’을 알기 때문이다.
어머니에게도 열여덟이 있었다. 꽃다운 얼굴이 있었고, 가슴 뛰는 날이 있었고, 하고 싶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 좋아하는 꽃도 있었을 것이며, 한번 가보고 싶은 곳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머니의 젊은 날을 본 적이 없다. 기억 속 어머니는 언제나 밥을 짓거나, 빨래를 개거나, 일을 하거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의 청춘은 어디로 갔을까. 없어진 것이 아니다. 자식들의 몸속으로 흩어졌다. 누군가의 건강한 뼈가 되었고, 누군가의 학교 등록금이 되었고, 누군가의 새 옷이 되었고, 누군가의 따뜻한 밥이 되었다.
어쩌면 자식의 몸에는 어머니의 젊음이 조금씩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머니를 떠올릴 때 우리가 울컥하는 것은 단순한 추억 때문만은 아니다. 자기 생명의 일부가 원래 어디에서 왔는지를 가슴이 먼저 알아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갚을 수 있는 빚이 있고, 갚을 수 없는 빚이 있다. 돈으로 진 빚은 갚을 수 있다. 물건으로 받은 것도 돌려줄 수 있다. 목숨을 키워준 세월은 갚을 수 없다.
어머니가 밤잠을 설친 횟수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자식 때문에 삼킨 눈물을 계산할 수도 없다. 먹고 싶은 것을 양보한 횟수, 입고 싶은 것을 참은 횟수, 아파도 아프다고 하지 않은 날들. 그것에는 영수증이 없다.
그래서 효도란 빚을 갚는 일이 아니다. 갚을 수 없다는 사실을 늦기 전에 알아차리는 일이다.
부모에게 가장 잔인한 말은 어쩌면 “다음에”인지도 모른다. 다음에 찾아뵐게요. 다음에 같이 먹어요. 다음에 여행가요. 다음에 용돈 드릴게요. 다음에 전화할게요. 자식에게는 수많은 다음이 있지만, 늙은 부모에게 남은 다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적다.
어느 날 전화하려고 휴대전화를 들었는데 더는 받을 사람이 없는 날이 온다. 그날이 오면 세상의 모든 ‘다음에’가 가슴속에서 칼날이 된다.
부모님이 살아 계신 사람에게는 오늘이 아직 기회다. 거창한 효도를 하지 않아도 좋다.
“어머니, 밥 드셨어요?”
그 한마디면 된다. 손 한번 잡아드리고, 얼굴 한번 더 바라보고, 어머니가 젊었을 때 어떤 꿈을 꾸었는지 한번 물어보아도 좋다. 우리는 부모가 무엇을 했는지는 많이 알지만, 부모가 무엇을 꿈꾸었는지는 놀랍도록 모른다.
한번쯤 물어보라.
“엄마, 엄마는 젊었을 때 뭐가 제일 하고 싶었어?”
그 질문 하나 앞에서 어머니는 잠시 어머니가 아니라 열여덟 살의 한 소녀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이미 어머니가 세상에 계시지 않은 사람은 너무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움 또한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밥 한 그릇을 따뜻하게 먹으며 기억하고, 살아 있는 누군가에게 따뜻하게 대하고, 내 자식을 조금 더 품어주는 것으로 어머니의 사랑은 다시 세상에 번질 수 있다.
효는 무덤 앞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부모에게 받은 따뜻함을 다른 생명에게 다시 쓰는 순간 그 사랑은 끊어지지 않는다. 효의 끝은 제사가 아니라 사랑의 계승인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여한가」 의 작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전승 과정과 출처를 더 엄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청은 구자옥(1887~1950)이라는 설이 있다 하더라도 확정된 사실과 전승은 구별해서 바라보는 것이 옳다.
그런데 이 작품 앞에서는 또 하나의 역설이 생긴다. 작자를 정확히 밝혀내는 일은 중요하지만, 이 노래 속 ‘어머니’만큼은 한 사람의 이름으로 가두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는 구자옥의 어머니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할머니일 수도 있으며, 우리 집 부엌에서 평생을 보낸 바로 그 어머니일 수도 있다. 수많은 한국 여인들의 굽은 허리와 갈라진 손등과 삼켜버린 울음이 한 사람의 목소리를 빌려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구절에 이르면 가슴이 오래 머문다. 한평생 낙도 모르고 살았다고 하면서 세상에 미련이 없다고 말한다.
정말 미련이 없었을까.
아니다. 미련이 너무 많았기에 차마 미련이라고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식 얼굴 한 번 더 보고 싶고, 손주 손 한 번 더 잡아보고 싶고, 영감 밥 한 끼가 걱정되었을 것이다.
죽음 앞에서도 자기 죽음보다 남은 식구의 끼니가 먼저 떠오르는 마음, 그 마음을 무슨 말로 다 설명할 수 있겠는가.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면서 빈손으로 간 것이 아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자식들의 생에 나누어놓고 갔다. 그래서 묘지는 비어 있고, 자식들의 삶이 어머니의 유품이다.
이 글을 다 읽은 뒤 눈물이 난다면 그 눈물을 닦아버리지만은 않았으면 한다. 그 눈물 속에는 너무 늦게 알아본 사랑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눈물이란 때로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길이다.
오늘 어머니가 살아 계시다면 한번 안아드리자.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면 한번 더 손을 잡자. 이미 떠나셨다면 가슴속으로라도 불러보자.
어머니.
평생 우리 이름을 부르느라 정작 당신 이름으로 살지 못한 사람. 이제야 그 이름을 불러드린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남긴 것은 재산도 아니고, 집도 아니고, 몇 장의 낡은 사진도 아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어디까지 사랑할 수 있는가에 대한 평생의 대답이었다.
불효는 사랑하지 않은 데서만 생기지 않는다. 사랑을 너무 늦게 표현하는 데서도 생긴다.
꽃은 지고 난 뒤 향기를 되돌려줄 수 없다. 부모의 손도 그러하다. 잡을 수 있을 때 잡아야 한다.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여.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잘해드리지 못했다고 울기 전에, 오늘 저녁 살아 계신 부모에게 전화 한 통 드리기를.
“엄마, 보고 싶어요.”
어쩌면 그 짧은 한마디를 듣기 위해 어머니는 그 긴 세월을 그렇게 살아오셨는지도 모른다.
― 청람 김왕식

■ □
어머니 황순이, 그 이름 석 자를 이제야 읽는다
― 「어머니의 여한가餘恨歌」」 를 읽고 어머니를 보다
청람 김왕식
「어머니의 여한가餘恨歌」 를 읽다가 몇 번이나 글을 멈추었다. 처음에는 오래전 어느 집안의 며느리를 읽고 있었다. 조금 지나서는 한 시대를 견뎌낸 수많은 한국의 어머니들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남은 얼굴은 단 한 사람이었다. 내 어머니 황순이였다. 황순이. 지금은 이렇게 또박또박 적을 수 있는 세 글자다. 정작 그 이름의 주인은 평생 자기 이름 석 자를 읽지도 쓰지도 못했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 가슴 한가운데가 오래 저린다.
일제강점기, 어린 처녀들을 정신대로 끌고 간다는 공포가 사람들의 삶을 짓누르던 때였다. 외할아버지는 어린 딸을 지키기 위해 그 손을 잡고 만주로 피신하기까지 했다. 그때 어머니는 무엇을 알았을까. 왜 고향을 떠나야 하는지, 왜 어른들의 목소리가 낮아졌는지, 왜 어린 여자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숨어야 하는지 알기나 했을까. 황순이라는 소녀는 자기 삶을 시작하기도 전에 시대의 폭력부터 배웠다. 학교에 가서 글자를 배울 나이에 피신을 했고, 자기 이름을 공책에 써볼 나이에 살아남는 법부터 익혔다. 글을 모른 채 자란 것은 어머니의 부족함이 아니었다. 한 시대가 어린 여자아이에게서 배움의 시간을 먼저 빼앗아간 것이었다.
열네 살이 되자 어머니는 시집을 왔다. 열네 살. 지금 같으면 중학생쯤 되었을 나이다. 친구와 웃고, 어머니에게 투정하고, 앞으로 무엇이 될지 꿈을 꾸어야 할 나이다. 그런데 황순이는 그 나이에 며느리가 되었다. 열여섯 살에는 첫딸을 낳았다. 열여섯 살 아이가 아이를 안았다. 자기도 아직 누군가에게 안겨야 할 나이에 누군가를 품어야 했다.
그때부터 한 소녀의 이름 앞에는 늘 다른 호칭이 붙었을 것이다. 며느리, 아내, 어머니. 황순이라는 이름은 점점 뒤로 밀렸다. 가마솥 아궁이 앞에서 하루가 시작되었다. 불을 지피고, 쌀을 씻고,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빨래를 하고, 옷을 기웠다. 한 아이를 업고 또 한 아이를 안았다. 치맛자락에는 다른 아이가 매달렸을 것이다. 일곱 자식이었다. 한 아이를 키우는 일도 한 사람의 온 생을 요구하는데, 어머니는 일곱 생명을 품었다. 가마솥 아궁이에서 연기가 올라오면 어머니의 눈에서도 눈물이 났을 것이다. 그것이 연기 때문이었는지, 고단한 삶 때문이었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그 시절 어머니의 눈물에는 이름이 없었다. 아이들이 배고프면 밥을 해야 했고, 누군가 아프면 밤을 새워야 했다. 식구들이 먹고 난 뒤에야 자신의 밥그릇을 챙겼을 것이고, 자식들의 옷을 기운 뒤에야 자신의 해진 소매를 보았을 것이다.
자식들이 하나둘 자라던 어느 날, 삶은 또 한 번 어머니의 가슴을 후벼팠다. 서른세 살, 지아비를 하늘로 보냈다. 서른셋은 지금 생각하면 너무 젊다. 인생이 막 깊어질 나이이고, 앞으로 살아갈 날을 더 많이 헤아릴 나이다.
그런데 어머니에게 서른셋은 남편을 잃은 나이가 되었고, 일곱 자식을 홀로 바라보아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울고 싶었을 것이다. 주저앉고 싶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무섭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죽은 사람을 보내고도 살아 있는 아이들은 밥을 먹어야 했다. 사람은 떠나도 가마솥의 물은 다시 끓여야 한다. 이보다 잔인한 삶의 명령이 또 있을까.
남편을 잃은 슬픔을 다 울기도 전에 어머니는 다시 아궁이 앞에 앉았을 것이다. 불을 피우고, 밥을 짓고, 아이들을 불러 앉혔을 것이다. 그 불빛 속에서 어머니의 얼굴은 얼마나 빨리 늙어갔을까.
그 집에는 또 한 사람의 여인이 있었다. 아홉 살에 시집와 살림을 시작한 시어머니였다. 아홉 살 신부와 열네 살 며느리. 이제 와 바라보면 두 사람 모두 너무 가엾다. 한 사람은 아홉 살에 어린 시절을 빼앗겼고, 다른 한 사람은 열네 살에 소녀의 시간을 빼앗겼다. 상처 입은 사람끼리 만났다고 해서 반드시 서로를 위로하며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난과 억압의 시대는 사람의 마음을 넉넉하게 두지 않았다. 살기 위해 참아야 했고, 참은 만큼 마음에는 응어리가 쌓였다. 그 응어리는 때로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 흘러갔다.
시어머니에게도 한이 있었고, 며느리에게도 한이 있었다. 한 지붕 아래에서 두 사람의 상처가 부딪혔고, 그것은 평생 고부의 아픔으로 남았을 것이다. 이제 와 누가 더 옳았는지를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아홉 살에 시집온 여자와 열네 살에 시집온 여자, 그 둘을 그렇게 살게 만든 시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사람을 오래 바라보면 함부로 미워하기 어려워진다. 그 사람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럴 수 있었겠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그 말이 뒤늦게 가슴에 들어온다.
내 어머니 황순이는 그렇게 긴 세월을 견뎠다. 자기 이름은 읽지 못했지만 일곱 자식의 얼굴은 누구보다 정확히 읽었다. 글자를 몰랐지만 아이가 배고픈 표정은 읽었고, 아픈 아이의 숨소리는 읽었고, 자식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발소리만으로도 마음 상태를 알아차렸을 것이다.
세상은 그런 어머니를 문맹이라 불렀다. 그 말을 생각할수록 부끄럽다. 정말 글을 모른 사람은 어머니였을까. 어쩌면 어머니는 평생 몸으로 거대한 글을 썼는데, 그것을 읽지 못한 자식들이야말로 문맹이 아니었을까. 갈라진 손등에는 가난이 쓰여 있었고, 굽은 허리에는 일곱 자식의 무게가 적혀 있었으며, 눈가의 주름에는 잠들지 못한 밤들이 새겨져 있었다. 가마솥 아궁이의 그을음에는 한 여자의 청춘이 묻어 있었다. 그런데 자식은 그것을 너무 늦게 읽는다.
어머니는 환갑도 넘기지 못했다. 쉰아홉 살에 세상을 떠났다. 59세. 어릴 때는 그 나이가 아주 많은 줄 알았다. 이제 세월을 살아보니 안다. 쉰아홉은 늙어서 모든 것을 놓을 나이가 아니었다. 조금은 쉬어도 될 나이였다. 지금까지 못 먹은 맛있는 것도 먹어보고, 못 가본 곳도 가보고, 자식들 집에 며칠씩 머물며 손주 재롱도 실컷 볼 수 있는 나이였다. 평생 가족만 바라보았으니 그때부터라도 자신을 조금 바라보아도 되었을 나이였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 시간을 얻지 못했다. 열네 살부터 쉰아홉까지, 마흔다섯 해 동안 며느리로, 아내로, 과부로, 어머니로 살았다. 그 많은 이름 가운데 ‘황순이’로 산 날은 과연 며칠이나 되었을까. 이 질문 앞에서 마음이 무너진다.
사람은 사랑하는 이를 잃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한 인간으로 다시 보게 되는가 보다. 살아 계실 때는 늘 ‘엄마’였다. 밥해주는 사람, 걱정해주는 사람, 기다려주는 사람,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하면 어머니에게도 열네 살이 있었고, 열여섯이 있었고, 스무 살이 있었고, 서른셋이 있었다. 무섭고 외롭고 기대고 싶었던 한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를 자식은 너무 늦게 발견했다.
이제야 그 이름을 불러본다. 황순이. 엄마가 평생 쓰지 못한 이름. 황순이. 엄마가 읽지 못한 이름. 한 글자씩 천천히 적어드리고 싶다. 황, 순, 이. 엄마, 이게 엄마 이름이야. 이렇게 예쁜 이름이었어. 그 말을 한 번만 들려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머니는 일곱 자식을 키우며 자신의 삶을 거의 다 써버렸다. 그렇게 생각하면 자식들은 어머니가 남긴 일곱 권의 책인지도 모른다. 어머니에게는 학위도 없었다. 남겨놓은 일기도 없었고, 출간한 책도 없었다. 그런데 일곱 자식이 살아 있다. 그들의 얼굴과 말투와 버릇과 마음 어딘가에 황순이가 남아 있다. 어머니가 배우지 못한 글자를 자식들이 배웠다. 어머니가 보지 못한 세상을 자식들이 보았다. 어머니가 못 입은 옷을 자식들이 입었고, 어머니가 아껴두었던 밥을 자식들이 먹었다. 그러니 자식의 오늘은 온전히 자식만의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어머니가 못다 산 날들이 들어 있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에도 어머니의 시간이 들어 있다. 자기 이름 석 자도 쓰지 못했던 어머니가 있었기에 아들은 이렇게 수많은 문장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이 사실을 생각하면 글을 쓰는 손이 부끄러워진다.
엄마. 나는 엄마보다 오래 살고 있어. 엄마가 못 본 세상을 보고 있어. 엄마가 갖지 못한 시간을 쓰고 있어.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내가 더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엄마 앞에서는 자꾸 어린아이로 돌아간다.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진다. 열네 살에 시집올 때 얼마나 무서웠어. 열여섯에 첫아이를 낳을 때 얼마나 겁났어. 가마솥 아궁이에 불을 때며 얼마나 뜨거웠어. 일곱 아이를 먹이며 얼마나 배가 고팠어.
서른셋에 아버지를 보내고 얼마나 막막했어. 시어머니와 부딪히며 얼마나 서러웠어. 쉰아홉에 눈을 감을 때 무엇이 가장 마음에 걸렸어. 혹시 마지막까지도 우리 걱정했어. 이제야 묻고 싶은 말이 이렇게 많은데 대답해줄 사람이 없다. 부모를 잃은 자식의 가장 깊은 한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은 남아 있는데 물어볼 사람이 없는 것, 하고 싶은 말은 끝없이 생기는데 들어줄 사람이 없는 것, 미안하다는 말을 이제야 제대로 배웠는데 받을 사람이 없는 것, 고맙다는 말을 이제야 가슴 깊이 알았는데 들려줄 사람이 없는 것.
엄마,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 세 마디를 왜 살아 계실 때 더 많이 하지 못했을까. 어머니가 떠난 뒤 세월이 아주 많이 흘렀는데도 보고 싶은 마음에는 나이가 들지 않는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자식은 언제나 어린아이로 남는다. 힘들 때면 엄마를 찾고 싶고, 좋은 일이 있어도 엄마에게 먼저 말하고 싶다. 아프면 이상하게 어머니 손이 생각난다. 그 손으로 이마 한 번 짚어주면 다 나을 것 같은 마음. 세상에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사라지지 않는 어린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의 이름이 어머니인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여한가」 를 읽으며 한 시대의 모든 어머니를 생각했다. 마지막에는 다시 황순이 한 사람에게 돌아왔다. 자기 이름은 쓰지 못했으나 일곱 자식의 삶을 써낸 사람. 학교는 다니지 못했으나 가난과 전쟁과 사별과 고부의 세월을 온몸으로 통과한 사람. 환갑도 넘기지 못했지만 자식들의 생 속에서는 아직 늙지도, 죽지도 않은 사람. 엄마, 이제야 아들이 엄마 이름을 읽습니다. 황순이. 한 번 더 읽습니다. 황순이. 평생 누구의 딸이고, 누구의 며느리고, 누구의 아내이고, 누구의 어머니로 살았던 사람. 이제는 다른 호칭을 모두 내려놓고 그 이름 하나만 불러드리고 싶습니다.
황순이.
엄마의 이름을 불러보니 그제야 엄마가 어머니이기 이전에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한때는 어린 소녀였고, 두려움 많은 새색시였고, 사랑받고 싶었던 여자였고, 서른셋에 남편을 잃고도 일곱 자식 앞에서 쓰러질 수 없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엄마, 세상이 다시 한 번 기회를 준다면 이번에는 엄마를 ‘엄마’라고만 부르지 않겠습니다. 열네 살 황순이를 오래 바라보겠습니다. 손 한 번 잡아주겠습니다. 그리고 꼭 물어보겠습니다.
“엄마, 엄마는 무엇이 되고 싶었어?”
그 한마디를 끝내 묻지 못한 것이 지금 가장 아픕니다. 어머니는 평생 자식들의 이름을 마음에 품고 살았는데, 자식은 어머니의 이름 하나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습니다. 그 늦은 죄송함으로 오늘도 이름 석 자를 적습니다.
황순이.
그 이름 아래 모든 말을 내려놓고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남깁니다.
엄마,
보고 싶습니다.
아주
많이.
―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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