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응교 시인의 시《야니 콘서트》 ㅡ 청람 김왕식
유응교 시인의 시《야니 콘서트》 2026.04.08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운조루 편액

□ 시인 유응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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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니 콘서트
시인 유응교
내가 만일 하얀 대리석 기둥이 될 수만 있다면 그리스의 달빛아래 깨어있는 영혼의 원음을 들으며 파르테논 신전에 기둥이 되어 서 있고 싶소
내가 만일 하얀 건반이 될 수만 있다면 별빛 쏟아지는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야니의 떨리는 손 끝에 찬란하게 드러눕고 싶소
내가 만일 검은 머리카락이 될 수만 있다면 하얀 미소를 지으며 어머니 리자를 위해 곡을 바치는 야니의 흰 어깨 위에 눈부시게 출렁이고 싶소
내가 만일 아름다운 갈채가 될 수만 있다면 마음의 국경을 허물고 하나의 세계가 되기를 기원하는 야니의 연주를 위하여 황홀하게 바치고 싶소
내가 만일 이름 모를 소녀의 눈물이 될 수만 있다면 한 순간 우리 가슴에 순수의 피를 돌게 하여 세상을 아름답게 보여준 야니를 위하여 하염없이 흐느끼고 싶소
- 이 시는 유응교 시인이 1995년 3월 2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내한 공연을 한 야니에게 영어로 번역하여 바친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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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응교 시인의 시《야니 콘서트》 ㅡ기둥에서 눈물까지, 존재를 악기처럼 바꾸는 상상력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음악 앞에서 인간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한쪽은 감동을 말하고, 다른 한쪽은 감동 속으로 들어간다. 유응교 시인의 《야니 콘서트》는 후자에 속한다.
여기서는 음악을 듣는 일이 감상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화자는 자기 자신을 지우고, 음악을 이루는 사물과 현상으로 변모하기를 소망한다. 이 점에서 이 작품은 단순한 헌정 시가 아니라, 예술 앞에서 자아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존재론적 서정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구조적 반복이다. 다섯 연 모두 “내가 만일”로 시작된다. 이 반복은 단순한 운율 장치가 아니다. 화자의 상상력이 어디에서 출발하고 어디로 나아가는지를 질서 있게 배열하는 골격이다. 건축학자로서 평생 구조와 질서를 다루어 온 시인의 내면이 이 반복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감정은 자유롭게 흐르지만, 표현은 무너지지 않는다. 이 절제된 반복이 작품 전체를 하나의 아치처럼 떠받친다.
첫 연의 “하얀 대리석 기둥”은 매우 중요하다. 기둥은 단순한 배경 소품이 아니다. 그것은 떠받치는 존재, 오래 견디는 존재,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중심을 이루는 존재다. 화자가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이 되고 싶다고 말할 때, 그는 야니의 음악을 일회적 연주의 차원에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음악을 문명과 시간의 심부에 닿아 있는 원형적 울림으로 받아들인다. “그리스의 달빛 아래 / 깨어있는 영혼의 원음”이라는 표현에서 ‘원음’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세계가 아직 분열되기 전의 순수한 근원, 예술이 태어나기 이전의 본질적 떨림을 뜻한다. 여기서 화자는 청중이 아니라 신전을 받치는 기둥이 됨으로써 그 근원에 가장 가까이 서고자 한다.
둘째 연은 더 직접적이다. “하얀 건반”이 되겠다는 소망은 음악의 외부에서 내부로 진입하는 순간이다. 기둥이 공간을 떠받치는 구조물이었다면, 건반은 소리를 발생시키는 매개다. 첫 연이 음악의 장엄한 배경을 향한 동경이었다면, 둘째 연은 음악 생성의 핵심부를 향한 진입이다. “야니의 떨리는 손끝에 / 찬란하게 드러눕고 싶소”라는 구절은 특히 탁월하다. ‘드러눕다’는 말은 능동과 수동이 겹쳐 있는 표현이다. 스스로 몸을 맡기되, 그 맡김 속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울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예술 앞에 자신을 온전히 위탁하는 태도, 그것이 이 한 구절에 응축되어 있다.
셋째 연에서는 시의 온도가 달라진다. “검은 머리카락”이 되고 싶다는 상상은 앞선 연들의 장엄함을 인간적 친밀감으로 전환한다. 특히 “어머니 리자를 위해 곡을 바치는 야니”라는 대목은 음악을 추상적 예술에서 구체적 정서의 자리로 끌어내린다. 이때 야니는 세계적 연주자가 아니라, 어머니에게 곡을 바치는 한 아들의 얼굴로 다가온다. 화자는 그 흰 어깨 위에 “눈부시게 출렁이고 싶소”라고 말한다. 여기서 머리카락은 장식물이 아니라 사랑의 가장 가까운 주변이다. 즉 이 연은 위대한 음악의 근원이 인간적 정성과 효심, 기억과 사랑에 있음을 보여준다. 장엄함이 숭고로만 서지 않고, 따뜻한 체온을 획득하는 대목이다.
넷째 연의 “아름다운 갈채”는 개인의 감동이 공동체의 울림으로 확장되는 지점이다. 앞선 연들에서 화자는 기둥, 건반, 머리카락이 되기를 원했다. 모두 구체적 사물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비물질적인 ‘갈채’가 된다. 이것은 변화의 중요한 단계다. 이제 화자는 대상이 아니라 반응, 물질이 아니라 파동이 되고자 한다. “마음의 국경을 허물고 / 하나의 세계가 되기를 기원하는”이라는 부분은 이 작품의 사상적 핵심에 해당한다. 야니의 음악은 개인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연주가 아니라, 분열된 세계를 잠시나마 하나로 묶는 공감의 언어로 제시된다. 화자가 갈채가 되고 싶다는 것은 단지 찬사를 보내고 싶다는 뜻이 아니다. 그 음악이 불러낸 세계적 화답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뜻이다.
마지막 연의 “이름 모를 소녀의 눈물”은 이 작품이 도달한 최종 심연이다. 기둥은 구조였고, 건반은 생성이었으며, 머리카락은 친밀성이었고, 갈채는 공동체였다. 눈물은 그 모든 것을 통과한 뒤 남는 가장 순수한 감응이다. “한 순간 우리 가슴에 순수의 피를 돌게 하여”라는 표현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여기서 눈물은 슬픔의 표지가 아니라 생명의 순환을 다시 일으키는 정화의 액체다. ‘순수의 피’라는 말은 역설적이다. 피는 생명의 현실이고, 순수는 정신의 이상이다. 시인은 이 둘을 결합함으로써 예술이 인간의 생리와 영혼을 동시에 흔드는 힘임을 드러낸다. 그리고 끝내 “하염없이 흐느끼고 싶소”에 이르러 화자는 더 이상 무엇이 되려는 상상을 하지 않는다. 스스로 완전히 감응 그 자체가 된다. 이 종결은 매우 자연스럽다. 구조와 소리와 사랑과 화답의 모든 경로는 결국 눈물이라는 가장 맑은 인간적 진실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미학적 성취는 감정의 크기를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숭고의 높이를 확보하는 데 있다. 어조는 일관되게 낮다. “싶소”라는 종결은 고풍스럽고 점잖다. 그러나 바로 그 절제가 오히려 더 큰 울림을 만든다. 감탄이나 흥분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스스로 낮아진 자리에서 예술을 우러르는 태도가 작품 전체를 품위 있게 만든다. 이 품위는 유응교 시인의 생애와도 무관하지 않다. 학자로서 구조를 탐구해 온 이성과, 운조루의 바람과 고택의 시간을 몸에 익힌 감성이, 이 시에서 서로를 해치지 않고 오히려 돕는다. 하여 그의 상상은 허공을 떠돌지 않는다. 기둥이면 기둥답고, 건반이면 건반답고, 머리카락이면 머리카락답다. 사물의 본성을 아는 사람이기에 가능한 비유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색채의 대비다. 하얀 대리석, 하얀 건반, 야니의 흰 어깨, 그리고 그 위에 놓이는 검은 머리카락. 이 흑백의 대비는 시각적 선명성을 높일 뿐 아니라, 음악의 건반 구조와도 은근히 호응한다. 흰색은 순수와 빛, 검은색은 깊이와 농도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머리카락이 흰 어깨 위에서 출렁이는 장면은 단순한 시각 묘사가 아니라, 빛과 깊이, 순수와 인간적 농밀함이 만나는 장면이 된다. 유응교의 언어는 결코 복잡하지 않다. 그러나 단순하다고 해서 얕지 않다. 오히려 그는 어린이도 읽을 수 있을 만큼 맑은 문장으로, 성인만이 도달할 수 있는 감응의 깊이를 보여준다.
시《야니 콘서트》는 한 음악가를 향한 찬양으로 시작해, 예술이 인간을 어떻게 더 넓고 깊은 존재로 바꾸는가를 보여주는 시로 완성된다. 듣는다는 것은 귀로만 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 참된 감동은 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다른 것으로 바꾸는 데서 온다는 사실을 이 작품은 조용하고도 단단하게 증언한다.
운조루의 기둥을 붙들고 자란 한 생애가 파르테논의 기둥을 꿈꾸는 순간, 한 편의 시는 비로소 국경을 넘어서는 영혼의 악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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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높이와 감성의 깊이가 한 몸 안에서 충돌하지 않고 조화를 이룰 때, 언어는 비로소 오래 남는다. 유응교 시인의 《야니 콘서트》는 그 드문 균형 위에서 태어난 시다.
공학박사로서 평생 대학 강단에 서서 공간과 구조를 가르쳐온 학자, 후학들에게는 엄정한 이성과 원리로 기억될 그가, 이처럼 유연하고 섬세한 감성으로 시를 쓴다는 사실은 결코 낯설지 않다. 외려 필연에 가깝다. 그의 내면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선비의 기질과 예술가의 감각이 함께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학문이 뼈대를 세웠다면, 시는 그 안에 숨을 불어넣은 셈이다. 운조루雲鳥樓( 고택, 전라남도 구례군 )에서 태어나고 자란 유년의 기억은 이 시의 가장 깊은 토양이다. 대문을 드나들던 발걸음, 마당을 휘돌던 바람, 처마 끝에 걸린 시간의 결은 그에게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존재를 인식하는 방식이었다.
수원성 · 남한산성 · 함흥산성을 축조한 유이주(柳爾胄)의 후손이라는 계보 또한 우연이 아니다. 견고한 구조를 세워온 장인의 정신은, 그의 언어 속에서 또 다른 형태의 ‘기둥’으로 되살아난다.
이러한 맥락에서 “내가 만일”이라는 반복은 가벼운 상상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를 해체하고 다시 세우는, 일종의 정신적 설계다. 대리석 기둥이 되겠다는 첫 진술은 건축적 사유의 연장선이며, 동시에 음악을 떠받치는 영원의 형식에 대한 동경이다.
운조루의 기둥에서 파르테논의 기둥으로 이어지는 이 상상은, 한 인간의 삶과 세계의 예술을 하나의 축으로 묶는다. 건반이 되고, 머리카락이 되고, 갈채와 눈물이 되는 과정은 점차 물질에서 감정으로 이동하는 흐름을 보인다. 이는 공간을 다루던 학자가 이제는 마음의 구조를 다루는 시인으로 전환되는 지점이다. 특히 어머니를 향한 헌정 장면에서는, 거대한 음악이 개인의 기억 속으로 스며들며 한층 더 깊은 울림을 만든다. 이때 시는 설명을 멈추고, 대신 존재를 적신다.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문학을 탐구하는 그의 태도는 단순한 지속이 아니다. 그것은 삶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해 가는 과정이다. 학문과 예술, 이성과 감성이 서로를 지탱하며, 결국 하나의 울림으로 귀결된다. 그의 시가 어린이들에게 오래 남기를 바란다는 소망 역시 같은 맥락이다. 쉽게 읽히되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언어의 힘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집의 기둥처럼 한 사람의 생애가 버티고 선 자리에서 음악은 비로소 사람의 마음을 집으로 만든다.
ㅡ청람
□■ 운조루란 이름은 도연명陶淵明의 시詩 귀거래혜사歸去來 [兮]辭라는 칠언율시에서 머리글자만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영조 때 유이주(柳爾胄)가 낙안군수로 있을 때 건축했다. 큰 사랑채 대청 위의 상량문에 따르면 영조 52년(1776)에 세운 것으로 되어 있다. 조선 후기 귀족 주택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는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건축물이다. -자형 행랑채, ㅜ자형 사랑채, ㄷ자형 안채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사당과 연당이 남아 있다. 집을 지 은 12년 후에 유이주가 작성한 <장자구처기>에 따르면 최초 운조루는 78 칸집이었다. 화재와 세월로 인한 유실, 필요한 의한 복구와 증축 등의 과정이 있었다. 2007년 문화재청의 실측 조사에 의하면 현재 63칸이 보존되어 있다. 운조루의 구조양식은 기둥과 기둥 위에 건너 얹어 그 위에 서까래를 놓는 나무인 ‘도리’와 그 도리를 받치고 있는 모진 나무인 ‘장여’로만 된 ‘납도리집’ 구조이다. 지붕은 사랑채, 안채가 이어 있으며 팔작지붕이다. ‘운조루’는 일종의 택호에 해당하는데, 원래는 큰 사랑채 이름이다. ‘구름 속에 새처럼 숨어 사는 집’이란 뜻이다. 운조루와 오미동은 이른바 길지(吉地)로 유명한데 길 지란 지덕이 있는 좋은 집터란 뜻이다.

□ 운조루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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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유응교 시인님께.
시인님의 시를 마주할 때마다, 한 사람의 삶이 어떻게 언어로 깊어질 수 있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시인님의 문장은 결코 서두르지 않고, 오래 다져진 사유 위에서 고요히 숨 쉬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 단정한 울림 앞에서 자연스럽게 마음을 낮추게 됩니다.
공학박사로서 대학 강단에서 후학을 이끌어 오신 세월은, 단순한 경력이 아니라 하나의 큰길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구조를 세우고 원리를 탐구해 오신 그 시간들이, 시인님의 시 속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질서와 아름다움으로 되살아나고 있음을 느낍니다. 기둥과 건반, 그리고 울림으로 이어지는 상상은, 한평생 쌓아오신 깊은 사유의 결이 아니고서는 결코 닿기 어려운 경지라 생각합니다.
또한 운조루에서의 유년 시절은 시인님의 언어를 더욱 빛나게 하는 근원으로 다가옵니다. 대문을 스치던 바람과 마당을 휘돌던 공기, 그리고 그 공간에 켜켜이 쌓인 시간의 결들이 시인님의 내면 속에서 오랜 시간 숙성되어, 오늘의 시로 다시 태어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풍경은 단순한 기억을 넘어, 시인님의 존재 자체를 이루는 하나의 숨결처럼 느껴집니다.
무엇보다 깊이 감동하는 것은, 팔순을 넘기신 지금까지도 시문을 탐구하시며 쉼 없이 정진하고 계신 모습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열정을 넘어, 삶을 끝까지 성실하게 살아내는 태도의 본보기라 생각합니다.
시인님의 언어가 더욱 맑고 깊어지는 까닭도, 그 오랜 시간의 축적과 성실함에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린이들이 오래오래 간직하기를 바란다”는 시인님의 말씀을 접하며, 시를 쓰는 분의 가장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쉽게 읽히되 쉽게 사라지지 않는 언어,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오래 남는 시의 힘이라 믿습니다. 시인님의 작품은 그러한 울림으로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속에 머물 것이라 확신합니다.
시인님.
한 생애를 건너오시며 세워오신 사유의 기둥 위에 이토록 맑고 깊은 언어를 다시 얹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시인님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한 사람의 삶이 어떻게 예술이 되는지를 조용히 배우는 일이라 여겨집니다.
그 배움의 자리에서 깊이 존경의 마음을 올립니다.
ㅡ청람서루에서 김왕식 드림
■ 유응교 시인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청람에게
야니콘서트를 감상하시고 쓰신 평론이 저의 가슴을 울립니다. 29년 전에 아들이 미국에서 오면서 아크로폴리스에서 공연한 야니콘서트. 비디오를 건네주며 한 번 들어 보라고 하기에 건축과 학생들에게. 틀어주면서 어둠 속에서 즉흥적으로 쓴 시를 나중에 영문으로까지 번역하여 야니에게 전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공연에 심취하게 되었죠. 어머니 리자를 위하여 바치는 곡도 아주 좋았고 세계평화를 주장하며 연주하는 야니에게 완전히 몰입되어 80여 차례 특강을 할 때마다 야니 음악을 먼저 들려주고 저의 이야기를 했던 지난날의 추억이 그립기도 합니다.
운조루를 연계하시어 심도 있게 써주신 청람의 평론에 감동 또 감동입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저의 내면의 세계를 환히 들여다보시는지요? 존경의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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