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지금, 이 자리 ㅡ청람 김왕식

지금, 이 자리 2026.04.08
지금, 이 자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지금, 이 자리

시간은 늘 한 방향으로 흐르지만, 인간의 마음은 자주 그 흐름을 거슬러 오른다.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에 머물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앞당겨 끌어오려 한다. 그 사이에서 현재는 자주 비워진다. 그러나 삶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자리는 언제나 지금 이 순간뿐이다.

과거에 대한 불만은 이미 끝난 장면을 다시 고쳐 쓰려는 집착이다. 그때 더 잘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달라졌을 것이라는 상상은 결국 현재의 시간을 잠식한다. 지나간 시간은 경험으로 남아야 할 뿐, 후회의 대상으로 머물 때 그것은 삶을 갉아먹는 그림자가 된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기에 의미가 있다. 되돌릴 수 없는 것을 붙잡고 있는 동안, 지금의 가능성은 서서히 사라진다.

미래에 대한 불안 역시 다르지 않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미리 끌어와 두려워하는 일은, 실체 없는 그림자를 실제처럼 키우는 일이다. 불안은 언제나 가능성의 언어로 다가오지만, 그것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을 일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인간은 그 막연한 가능성에 현재를 저당 잡힌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일을 위해 지금의 평온을 포기하는 것은, 손에 쥔 것을 놓고 잡히지 않을 것을 좇는 일과 같다.

현재의 행복은 거창하지 않다. 숨 쉬고, 바라보고, 느끼는 일상 속에 이미 충분히 스며 있다. 그러나 마음이 과거와 미래에 붙잡혀 있을 때, 그 단순한 충만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행복은 찾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인식되어야 할 상태다.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태도 속에서만 드러난다.

삶의 지혜는 시간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있다. 과거는 배움으로, 미래는 준비로 남겨두고, 현재는 살아내는 자리로 두는 일이다. 이 균형이 무너질 때 인간은 스스로를 잃는다. 지나간 것에 매달리고 오지 않은 것에 흔들리는 동안, 가장 확실한 시간인 지금을 흘려보낸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이미 지나간 시간에도 없고,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도 없다. 오직 지금, 이 순간에만 있다. 하여, 과거를 놓고 미래를 덜어낼 때, 비로소 현재는 제자리를 찾는다. 그 자리에서 삶은 가장 단순하고도 깊은 빛으로 스스로를 드러낸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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