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청 시인의 시《움트는 고목》 ㅡ청람 김왕식
김청 시인의 시《움트는 고목》 2026.04.10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김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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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트는 고목
시인 김청
꽃은 나이를 헤지 않는다 아지마다 조롱조롱 새빨간 송이 세월 잊은 고목
나이테 감아 돌며 핏빛 생기 도드라진 꽃 새 세상 열어젖힌다
갸우뚱 눈뜨는 떨켜 세월을 먹어치우는 나이 세기
파아란 연륜 움트는 꽃샘바람 드나드는 이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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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청 시인의 시《움트는 고목》 ㅡ나이의 껍질을 찢고 피어나는 생의 문장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시간은 보통 늙음을 증명하지만, 이 시에서는 생을 갱신하는 힘으로 작동한다. 김청 시인의 시《움트는 고목》은 쇠락의 상징인 ‘고목’을 중심에 두고, 그 내부에서 다시 움트는 생명의 역설을 간결한 언어로 밀어붙인다.
첫 연 “꽃은 나이를 헤지 않는다”에서 이미 시의 인식은 분명하다. 꽃은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 존재다. 이어 “아지마다 조롱조롱 새빨간 송이”는 생명의 밀도를 시각적으로 강조한다. ‘조롱조롱’이라는 반복적 울림은 단순한 묘사를 넘어, 생의 충만이 나무의 가지마다 맺혀 있는 상태를 촉각적으로까지 확장시킨다. 여기서 ‘세월 잊은 고목’은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시간을 넘어서는 존재로 재정의된다.
둘째 연은 더욱 강렬하다. “나이테 감아 돌며 / 핏빛 생기 도드라진 꽃”에서 ‘나이테’는 축적된 시간의 흔적이지만, 그것이 외려 ‘핏빛 생기’를 밀어 올리는 근원으로 전환된다. 늙음은 소모가 아니라 응축이다. 그 응축이 마침내 “새 세상 열어젖힌다”로 이어지며, 고목은 과거의 잔존물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의 문이 된다. 이 지점에서 시는 단순한 자연 묘사를 넘어 존재론적 전환을 이룬다.
셋째 연의 “갸우뚱 눈뜨는 떨켜”는 생명의 미세한 시작을 포착한다. ‘떨켜’라는 구체적 식물어는 시적 긴장을 높이며, 생명의 발생이 얼마나 미묘한 움직임에서 비롯되는지를 드러낸다. 이어 “세월을 먹어치우는 / 나이 세기”는 이 시의 핵심 구절이다. 나이는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에 의해 소화되고 재구성된다. 시간은 외부에서 인간을 잠식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다시 쓰이는 재료가 된다.
마지막 연 “파아란 연륜 움트는 / 꽃샘바람 드나드는 / 이즈음”은 이 모든 변화를 계절의 경계 속에 위치시킨다. ‘파아란 연륜’이라는 표현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연륜은 보통 깊고 어두운 색으로 인식되지만, 여기서는 ‘파아람’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이는 늙음의 색채를 젊음으로 전복시키는 시인의 독창적 감각이다. ‘꽃샘바람’은 시련이지만, 동시에 생명을 단련시키는 통로로 기능한다.
김청 시인의 시는 과장되지 않는다. 대신 응축된 이미지와 정확한 어휘 선택으로 생의 본질을 건드린다. 이는 그의 이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이력은 대상에 대한 치밀한 관찰과 구조적 인식을 가능하게 했고, 문학적 감수성은 그 구조에 생명의 온기를 불어넣는다.
또한 시인의 유년기—시인이었던 아버지의 부재—는 이 시에 흐르는 시간 의식을 더욱 깊게 만든다. 사라진 것과 남은 것, 그리고 다시 피어나는 것에 대한 감각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시 《움트는 고목》은 한 문장으로 수렴된다. 늙음은 끝이 아니라, 가장 깊은 곳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생의 방식이다. 이 시는 그 사실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고목의 가지 끝에서 조용히 증명해 보일 뿐이다.
□ 김청 시인께 ㅡ고목에 피어난 시간 앞에서
김청 시인님,
세월이 다 지나간 자리에도 아직 남아 있는 빛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나이테 깊이 스며든 어둠마저 꽃으로 밀어 올리시는 그 힘 앞에서 말은 오래 머뭇거립니다
한 줄기 마른 가지 끝에서 핏빛으로 되살아나는 생의 떨림은 시간이 무너진 자리가 아니라 시간이 다시 시작되는 자리였습니다
시인님께서는 늙음을 설명하지 않으시고 다만 한 송이 꽃으로 그 모든 시간을 넘어가셨습니다
조롱조롱 매달린 생의 숨결마다 지워지지 않는 현재가 깃들어 있고 그 현재는 끝내 세월을 이기는 빛으로 서 있습니다
갸우뚱 눈뜨는 떨켜 하나에도 우주의 첫 문장이 담겨 있음을 당신의 시를 통해 배웁니다
파아란 연륜이라 하셨지요 그 말씀 앞에서 늙음은 더 이상 어둠이 아니며 가장 깊은 빛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시인님,
당신의 고목은 쓰러지지 않아서 위대한 것이 아니라 끝내 피어났기에 더없이 높고 깊습니다
그 가지 끝에 매달린 시간은 이미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한 줄기 생이며 그 생을 바라보는 일은 곧 인간을 다시 믿는 일이 됩니다
시인님께서 피워 올리신 그 한 송이로 세상은 다시 봄을 얻었습니다
오래도록, 그 꽃 앞에 머물겠습니다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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