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삼이 장가가는 날 ㅡ청람 김왕식
달삼이 장가가는 날 2026.04.11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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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삼이 장가가는 날
들녘에 새벽이 먼저 깃들고 이슬은 아직 논둑을 떠나지 않았는데 호미를 쥔 손 하나
오늘은 흙을 뒤집지 않는다
평생을 흙과 말 섞어 살던 달삼이
그 이름 낮게 불리던 사내가 오늘은 제 이름을 새로 입는다
아랫녘 바람 따라 순덕이 소식 건너오던 날부터 가슴속에 씨앗 하나 묻어두었더니
계절은 돌고 돌아 마침내 꽃으로 오는 날이다
어제까지 소 등에 기대 하늘을 보던 사내가 오늘은 거울 앞에 서서 제 얼굴을 낯설게 들여다본다
가르마를 타고 기름을 발라 눌러도 바람에 흩날리던 머리칼은 여전히 들판의 결을 닮았다
동동그리므 찍어 바르니 어딘가 어설픈 광택이 돌고 입술은 말 대신 수줍은 숨만 머금는다
신사구두는 논두렁을 몰라서인지 발걸음마다 삐걱이며 묻는다
“정녕 네 길이 이 길이냐”고 양복은 몸에 걸쳤으되 몸은 아직도 햇볕과 바람 속에 서 있다
손톱 밑에 남은 새까만 흙
어젯밤 물에 불리고 긁어도 끝내 다 지워지지 않는다
그 흙은 지워지지 않으려 남은 것이 아니라 살아온 날들이 스스로 남아 있는 것이다
마을 어귀에 닿자 사람들은 벌써 모여 웃음으로 길을 닦아 놓았다
“달삼이 장가간다!” 아이들 소리 하늘을 먼저 들뜨게 하고 노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세월 하나 또 건너가는 것을 본다
순덕이는 문지방 안쪽에 서서 햇빛을 반쯤만 받는다
수줍어 고개 들지 못하고 고운 저고리 끝만 만지다가
겨우 한 번 흘깃 눈을 올린다
그 한 번의 눈길이 긴 세월보다 깊어 달삼의 가슴에 내려앉는다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눈으로만 서성이던 날들
그 모든 침묵이 오늘 한 자리에 모였다
하객들은 농담을 곁들여 웃음을 퍼붓고
장구 소리 없이도 마당은 흥으로 넘친다
“뽀뽀해라!” 짓궂은 외침이 하늘까지 밀어 올려지면
달삼은 평생 들어보지 못한 명령 앞에 두 손을 어디 둘지 몰라 허공을 더듬는다
순덕이는 더 깊이 고개를 숙이고 치맛자락 끝으로 얼굴의 불을 가린다
그 순간, 바람이 한 번 지나가고 들판의 냄새가 두 사람 사이를 잇는다
말보다 먼저 닿는 것 손보다 먼저 스미는 것
그것이 사랑임을 누구도 가르치지 않았으나
흙을 일구던 두 사람이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달삼의 손이 조심스레 다가가 순덕의 어깨 위에 머무를 때
그 손톱 밑의 흙까지 함께 떨리며 새로운 집을 짓기 시작한다
오늘, 한 사람의 인생이 다른 한 사람의 하루 속으로 들어가
둘의 시간은 이제 한 줄로 이어진다
들녘은 여전히 넓고 하늘은 예전처럼 멀지만 그 사이를 건너는 길 위에 두 사람이 함께 선다
흙 묻은 손과 수줍은 눈빛이 세상을 다 가진 듯 웃는 날
그날이 바로 달삼이 장가가는 날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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