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모란이 지고 난 뒤에야 남는 것 ㅡ청람 김왕식

모란이 지고 난 뒤에야 남는 것 2026.04.12
모란이 지고 난 뒤에야 남는 것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모란이 지고 난 뒤에야 남는 것

봄은 떠난 것이 아니었다

다만 꽃이 먼저 몸을 거두고 그 뒤를 따라 계절이 천천히 물러났을 뿐

보이던 빛이 사라진 자리에서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이 조용히 드러난다

영랑이 말하던 모란이 지고 난 뒤의 설움

그것은 잃음이 아니라 늦게 도착하는 깨달음이었다

꽃이 있을 때는 봄을 몰랐고 꽃이 지고 나서야

비로소 봄이 얼마나 깊이 머물렀는지 알게 된다

그래서인지 떨어진 자리마다 아직 따뜻한 빛이 남아 있고

이름 부르지 못한 마음 하나 늦게 피어나 가슴 안쪽에서 가만히 숨을 고른다

봄은 사라짐으로 완성되고

남겨진 것들은 더 오래 더 낮게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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