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인 ㅡ 제2 부 침묵의 결기 (1편)
윤동주 시인 ㅡ 제2 부 침묵의 결기 (1편) 2026.04.13
사랑스런 추억 ㅡ 윤동주 시인
[김왕식 문학평론가] 윤동주 시인 ㅡ 제2 부 침묵의 결기 ㅡ 1편
■ 1편
사랑스런 추억
운동주
높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조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 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가고 ㅡ 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ㅡ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있거라.
(1942.5.13)
■
윤동주 시 〈사랑스런 추억〉 ― 떠난 뒤에 더 또렷해지는 것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 시에는 큰 사건이 없다. 그래서 오래 남는다.〈사랑스런 추억〉은 떠남의 기록이 아니라, 떠난 뒤 남는 것의 기록이다.
윤동주는 “서울 어느 조그만 정거장”에서 시작한다. 정거장은 삶의 중간 지점이다.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이 동시에 존재하는 공간이며, 그래서 언제나 조용히 흔들린다. 그러나 시인은 그 흔들림을 격정으로 확대하지 않는다. 그는 기다린다.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린다고 말하지만, 그 기다림은 도착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기다림 자체가 이미 그의 삶의 형식이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자기 축소의 태도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라는 구절은 존재의 비율을 스스로 낮추는 장면이다. 여기서 간신함은 연약함이 아니라 절제다. 윤동주는 자신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다. 담배 연기와 비둘기의 비상은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것들이다. 그는 그것들을 붙잡지 않는다. 그저 바라보고 흘려보낸다. 이 태도는 체념이 아니라 균형이다. 붙잡지 않음으로써 외려 더 오래 남게 하는 시적 윤리다.
시의 중심에서 공간은 급격히 이동한다. “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 이 전환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의식의 이동이다. 몸은 일본에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서울의 거리 위에 남아 있다. 그래서 그리움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가 된다. 윤동주가 그리워하는 것은 특정한 풍경이 아니라 그 풍경 속에 남겨 둔 자기 자신이다. “옛 거리에 남은 나”라는 표현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자기 분열의 고백이다. 떠난 자아와 남겨진 자아 사이의 거리, 그것이 이 시의 긴장이다. 이 긴장은 기차의 반복 속에서 더욱 또렷해진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여기서 무의미는 허무가 아니라 사실이다. 삶은 대부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으로 이루어진다. 윤동주는 그 시간을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간을 정면으로 받아들인다. 기다림은 그에게 낭만이 아니라 지속이다. 그리고 이 지속 속에서 그는 스스로를 잃지 않는다.
마지막의 탄식은 조용하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있거라.” 이 문장은 붙잡는 말이 아니라 남겨 두는 말이다. 윤동주는 젊음을 되찾으려 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떠난 자리에서 오래 남아 있기를 바란다. 여기서 젊음은 단순한 나이가 아니라 감각의 온도이며, 세계를 향한 첫 마음이다. 그는 그것을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인정한다. 이 인정의 태도가 바로 윤동주의 품격이다.
〈사랑스런 추억〉은 과거를 미화하는 시가 아니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시다. 윤동주는 그리움에 기대 무너지지 않는다. 외려 그리움을 통해 버틴다. 그래서 이 시는 슬픔의 기록이 아니라 절제의 기록이다. 떠나면서도 남아 있고, 남아 있으면서도 떠나 있는 상태. 이 모순의 자리에 서 있는 태도야말로 윤동주 문학의 핵심이다. 그는 아무것도 붙잡지 않으면서도 아무것도 놓지 않는다. 기다림과 그리움 사이에서 끝내 자신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윤동주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조용한 윤리다.
■ 달삼과 오산학교 문예교사 청람의 대화
― “선생님, 왜 따뜻한데 아플까요”
운동장은 비어 있었는데, 이상하게 소리가 많았다. 달삼은 시집을 펼치지 못한 채 오래 들고 있었다.
“선생님…”
청람이 조용히 물었다.
“그래, 달삼아.”
달삼이 말했다.
“이 시요… 따뜻한데 왜 아파요?”
청람이 잠시 웃었다.
“따뜻한 것일수록 오래 남는다.”
달삼은 첫 구절을 다시 읽었다.
“‘서울 어느 조그만 정거장’… 왜 정거장일까요?”
청람이 말했다.
“정거장은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이 동시에 있는 곳이다.”
달삼이 물었다.
“그럼 윤동주는 떠나는 쪽이에요?”
청람이 고개를 저었다.
“몸은 떠났고, 마음은 남아 있었다.”
달삼은 잠시 침묵했다. 바람이 운동장을 스치며 모래를 조금 흔들었다.
“선생님… ‘간신한 그림자’라는 말이 너무 쓸쓸해요.”
청람이 말했다.
“그건 쓸쓸함이 아니라 절제다.”
“절제요?”
“윤동주는 자신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다. 작아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달삼은 다음 구절을 짚었다.
“근데요 선생님… 기차는 계속 나오는데 왜 아무 일도 안 일어나요?”
청람이 말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도 삶이다.”
달삼은 한참 말이 없었다. 조금 뒤 낮게 물었다.
“‘옛 거리에 남은 나’라는 말이요… 그거 너무 슬퍼요.”
청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은 다 어디엔가 자기 일부를 남겨 두고 산다.”
달삼이 조용히 말했다.
“…저도 그런 것 같아요.”
청람이 물었다.
“어디에 남겨 두었느냐?”
달삼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마지막 줄을 읽었다.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있거라’…”
달삼이 물었다.
“선생님… 이건 붙잡는 말이에요?”
청람이 대답했다.
“아니다. 남겨 두는 말이다.”
달삼은 한참 생각하다 말했다.
“그럼 이 시는… 기다리는 시네요.”
청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윤동주는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았다.”
달삼은 시집을 조용히 덮었다.
“선생님…”
“그래.”
“저도…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청람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기다림은 배우는 게 아니다. 버티는 거다.”
그 말이 운동장 끝 어둠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ㅡ청람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