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여름의 성급한 숨결 ㅡ청람 김왕식

여름의 성급한 숨결 2026.04.15
여름의 성급한 숨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여름의 성급한 숨결

여름은 늘 먼저 와 있다. 아직 계절은 완전히 넘어오지 않았는데, 공기만 앞서 달려온다. 창을 열면 따뜻함이 아니라 묘한 열기가 스민다. 봄의 부드러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여름의 숨결이 성급하게 자리를 차지한다. 그 기운은 무언가를 재촉하는 듯하지만, 정작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길가의 나무들은 어느새 짙어졌다. 연둣빛이던 잎은 깊은 초록으로 바뀌었고,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도 무거워졌다. 계절은 이렇게 소리 없이 넘어가는데, 마음만 뒤늦게 그 변화를 따라간다.

여름의 시작은 늘 급하다.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밀려오는 기운. 하여, 이 계절은 때로 숨이 가쁘다.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먼저 일어난다.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늦어버린 것 같은 조급함이 스며든다. 그 조급함은 어디서 온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계절이 밀어붙이는 것도 같고, 스스로 만들어낸 마음이기도 하다.

그럴 때면 잠시 멈춘다. 멈추지 않으면, 이 계절은 지나가버리기 때문이다. 햇살이 강해질수록 그림자는 또렷해진다. 빛이 앞서 나갈수록, 그 뒤에 따라오는 어둠도 분명해진다. 여름은 밝음만으로 이루어진 계절이 아니다. 그 안에는 함께 짙어지는 그림자가 있다.

그래서 여름은 드러내는 계절이기도 하다. 감추어 두었던 것들이 햇빛 아래로 나오고, 마음 깊은 곳에 두었던 생각들이 이유 없이 떠오른다. 숨길 수 없는 계절, 그것이 여름이다.

그 드러남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그 순간에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애써 외면했던 마음, 미루어 두었던 질문들이 더 이상 미뤄지지 않는다. 여름은 그렇게 스스로를 마주하게 한다.

성급한 것은 계절이 아니라, 마음일지도 모른다. 여름은 그저 제때를 따라왔을 뿐인데, 마음이 그것을 따라가지 못해 숨이 가빠진다. 그래서 이 계절에서는 조금 늦어도 괜찮다.

모든 것을 맞추려 하지 않아도 된다. 창가에 앉아 바람을 맞는다. 뜨거움 속에 섞여 있는 미세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완전히 멈추지 않은 공기, 그러나 서두르지 않는 흐름. 그 안에서 비로소 호흡이 고르게 된다.

여름은 완성된 계절이 아니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계속해서 변하는 시간이다. 그 속에서 중요한 것은 앞서가는 일이 아니라, 놓치지 않는 일이다. 빠르게 지나가려는 순간들을 붙잡기보다, 그 자리에 잠시 머무르는 일이다. 하루의 끝에 남는 것은 이루어낸 것이 아니라, 스쳐간 감각들이다. 햇살의 온도, 바람의 결, 그리고 잠시 멈추었던 순간의 고요.

여름의 숨결은 여전히 성급하다. 그 성급함 속에서도, 잠시 머물 수 있는 자리는 남아 있다.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 계절은 더 이상 빠르게 흐르지 않는다. 그저 안온히, 곁을 지나갈 뿐이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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