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으로 드러나는 사람 ㅡ청람 김왕식
침묵으로 드러나는 사람 2026.04.15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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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으로 드러나는 사람
사람을 오래 보게 되면 말보다 먼저 보이는 것이 있다. 태도다. 말은 순간을 채우지만, 태도는 시간을 드러낸다. 말은 그때그때 달라질 수 있지만, 태도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여, 사람은 말로 기억되지 않고, 그가 남긴 태도로 기억된다. 진짜 지혜는 말이 아니라 남아 있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아는 것이 많을수록 사람은 말하고 싶어진다. 알고 있는 것을 드러내고 싶고, 앞서 있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진다. 정말 깊이 아는 사람은 쉽게 입을 열지 않는다. 아는 척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른다는 뜻이 아니라, 알기에 서두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말이 앞서면 이해는 뒤로 밀리고, 침묵이 먼저 오면 이해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말은 자신을 드러내는 도구이지만, 침묵은 상대를 받아들이는 자리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먼저 듣는다.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소리를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다. 상대의 말속에 담긴 시간과 사정을 함께 건너가는 일이다. 그가 살아온 길, 그가 지나온 감정, 그가 미처 말하지 못한 부분까지도 조용히 헤아리는 일이다. 이러한 태도는 서두르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빠르게 반응하는 것이 능력처럼 보이는 시대지만, 한 박자 늦추는 사람에게는 다른 깊이가 있다. 즉답하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생각하려는 태도다. 그 짧은 멈춤 속에서 말은 가벼움을 벗고, 무게를 갖게 된다.
또한 지혜로운 사람은 감정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화가 나는 순간에도 말을 아낀다.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막지 않되, 그것이 곧바로 말이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 사이에 머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짧은 기다림이 관계를 지키고, 말을 단단하게 만든다.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도 다르다. 말보다 행동을 본다. 말은 순간의 선택일 수 있지만, 행동은 반복된다. 반복되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결이 된다. 지혜로운 사람은 한 번의 말로 판단하지 않는다. 여러 번의 행동을 통해 그 사람을 읽는다.
또한 쉽게 자신의 기준을 드러내지 않는다. 기준을 드러내는 순간, 그것은 판단으로 굳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한 걸음 물러나 상황을 바라본다. 가까이 있을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조금 떨어졌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 이 거리가 시선을 맑게 하고, 판단을 늦추게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특별한 말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말을 줄인다. 대신 태도를 남긴다. 그 태도는 설명하지 않아도 전해지고, 강조하지 않아도 드러난다. 오래 곁에 있을수록 더 분명해지는 것, 그것이 진짜 지혜다.
사람은 결국 무엇을 말했는가로 남지 않는다.
어떻게 듣고,
어떻게 기다렸으며,
어떻게 반응했는가로 남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이미 그의 태도가 그를 대신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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