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는 마음의 힘 ㅡ청람 김왕식
머무는 마음의 힘 2026.04.15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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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는 마음의 힘
화가 날 때 입을 닫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감정은 언제나 말보다 먼저 움직이기 때문이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불편함과 분노는 순간적으로 치고 올라와, 말을 밀어내듯 밖으로 튀어나오려 한다. 그때의 말은 빠르고, 날카롭고, 대개는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많은 관계는 감정이 지나가기 전에 무너진다. 말이 너무 빨랐기 때문이다. 감정이 아직 제 자리를 찾지 못했을 때, 말이 먼저 나와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그 순간에 다른 선택을 한다.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막으려 하지 않는다. 그것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대로 받아들인다. 다만, 그 감정을 따라가지 않는다. 그 자리에 머문다.
머문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이 아니다. 가장 어려운 선택이다. 감정이 움직이라고 재촉하는 그 순간에, 한 걸음 물러서서 그 흐름을 바라보는 일이다. 그 감정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오래 머물 것인지를 조용히 지켜보는 일이다.
감정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강하게 올라올수록, 더 빨리 지나간다. 그러나 그 순간을 견디지 못하면, 지나갈 감정을 붙잡아 말로 굳혀버린다. 그때의 말은 감정이 아니라 상처로 남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 사실을 안다. 그래서 감정이 지나갈 시간을 허락한다. 그 짧은 기다림 속에서, 마음은 조금씩 자리를 찾아간다. 격렬했던 감정은 결을 잃고, 거칠었던 생각은 부드러워진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말이 나온다.
그 말은 처음 떠올랐던 말과 다르다. 덜 날카롭고, 덜 급하며, 더 깊다. 감정이 아니라 이해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말은 상대를 향해 나가지만, 상처를 남기지 않는다. 오히려 관계를 지키고, 상황을 열어준다.
입을 닫는다는 것은 침묵을 선택하는 일이 아니다. 시간을 선택하는 일이다. 지금 말할 것인가, 아니면 조금 더 지나서 말할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일이다. 그 질문이 있는 사람은 쉽게 말하지 않는다. 또한 이 머묾은 자신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감정에 끌려다니지 않고,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는 자리로 돌아오는 일이다. 그 자리에서는 무엇이 중요한지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의 감정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이 순간이 지나가면 다른 시선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화가 날 때 입을 닫는 사람은 약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더 강한 사람이다. 순간의 감정에 자신을 맡기지 않고, 그 위에 머물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다.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다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기다림에는 선택이 필요하고, 그 선택에는 의지가 필요하다.
지혜는 여기에서 드러난다. 얼마나 빨리 말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가에서 드러난다. 감정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말, 그 말이야말로 진짜 자신의 말이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깊이는 그가 얼마나 잘 말하는가로 드러나지 않는다.
얼마나 잘 참는가, 얼마나 오래 머무는가, 그리고 그 기다림 끝에 어떤 말을 남기는가로 드러난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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