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그림자는 빛을 묻지 않는다 ㅡ청람 김왕식

그림자는 빛을 묻지 않는다 2026.04.22
그림자는 빛을 묻지 않는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그림자는 빛을 묻지 않는다

그림자는 언제나 따라다니지만, 자신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묻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의 결과이면서도, 원인을 향해 돌아보지 않는다. 인간의 삶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살아 있음은 분명하지만, 그 살아 있음이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쉽게 믿어진다.

손에 닿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이름으로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익숙함에 기대어 더 깊은 질문을 미룬다.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여기는 순간, 보이지 않는 것은 자연스럽게 밀려난다. 그렇게 삶은 점점 더 겉으로만 이해되고, 중심은 흐려진다.

몸은 분명히 존재한다. 움직이고, 느끼고, 반응하며, 세계와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러나 그 몸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 앞에서 인간은 쉽게 멈춘다.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살아가지만, 정작 가장 근본적인 물음은 피한다. 묻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묻지 않는 삶은 편안하다.

흔들리지 않고, 다시 확인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 편안함은 깊이가 없는 자리에서 유지된다. 질문이 없는 곳에서는 새로운 시선도 생겨나지 않는다. 인간은 그렇게 익숙함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중심에서 멀어진다.

빛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비추는 것으로 존재한다. 그림자는 그 빛에 의해 생겨나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인간 역시 생명과 함께 있으면서도,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다. 늘 곁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바라보지 않게 된다. 가까움은 인식을 돕기보다, 때로는 그것을 늦춘다.

보이는 것만을 믿는 태도는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그 확실함은 언제나 부분에 머문다. 삶의 중요한 순간들은 설명되지 않는 곳에서 시작된다. 이유 없이 흔들리는 마음, 갑자기 찾아오는 고요, 설명할 수 없는 기쁨. 이러한 것들은 보이는 것만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간은 여전히 보이는 것에 기대려 한다. 그것이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다. 확인할 수 있고, 붙잡을 수 있으며, 반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안전함은 동시에 좁은 틀을 만든다. 그 안에서는 더 깊은 것을 향한 움직임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림자는 빛과 떨어질 수 없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인간 또한 생명과 떨어질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항상 함께 있으면서도, 그 중심을 바라보지 않는다.

문제는 없는 것이 아니라, 묻지 않는 데 있다. 빛은 늘 그 자리에 있고, 생명은 한순간도 떠난 적이 없다. 다만, 그것을 향해 돌아서는 일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을 뿐이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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