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슬픔 사이에 놓인 이름, 사랑 ㅡ청람 김왕식
기쁨과 슬픔 사이에 놓인 이름, 사랑 2026.04.29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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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처음 말했는지는 모른다.
어떤 젊은 철학자는 그의 강의에서 역설한다.
“진정한 사랑은 만났을 때 기쁘고 헤어졌을 때 슬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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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 슬픔 사이에 놓인 이름, 사랑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말하지만, 그 말이 가리키는 깊이는 저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함께 있는 시간의 즐거움을 사랑이라 부르고, 어떤 이는 서로를 위한 희생을 사랑이라 여긴다. 그러나 사랑을 가장 단순하고도 정확하게 드러내는 한 문장이 있다. ” 만났을 때 기쁘고, 헤어졌을 때 슬프다면 그것은 이미 사랑”이라는 사실이다.
만남의 기쁨은 단순한 감정의 상승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확인이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마음이 밝아지고, 이유 없이 표정이 풀어지며, 사소한 이야기조차 의미를 얻는 순간, 사람은 비로소 자기 바깥에 또 하나의 중심이 생겼음을 느낀다. 그 중심은 강요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삶의 균형을 바꾸어 놓는다. 이전에는 중요하지 않던 시간이 기다림으로 바뀌고, 익숙했던 하루가 기대라는 결을 갖게 된다. 기쁨은 그렇게 상대를 통해 자신이 확장되는 경험이다.
그러나 사랑은 기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헤어짐의 슬픔이 그 기쁨을 증명한다. 만약 떠나는 순간 아무런 흔들림이 없다면, 그것은 아직 깊이 닿지 못한 관계일 가능성이 크다. 슬픔은 상실의 감정이 아니라, 이미 마음이 건너가 있었다는 증거다. 누군가가 떠났을 때 허전함이 남고, 아무 일 없는 일상 속에서도 문득 그 사람의 빈자리가 떠오른다면, 그 관계는 이미 삶의 일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두 감정은 서로를 보완한다. 만남의 기쁨만 있고 헤어짐의 슬픔이 없다면, 그것은 가벼운 호감일 수 있다. 반면, 슬픔만 있고 기쁨이 없다면, 그것은 집착이나 의존일 가능성이 크다. 사랑은 이 두 감정이 균형을 이루는 지점에서 비로소 맑아진다. 함께 있을 때 자연스럽고, 떨어져 있을 때 그리운 것. 그 단순한 흐름 속에 관계의 진실이 담겨 있다.
사랑은 거창한 언어로 증명되지 않는다. 외려 가장 일상적인 감정 속에서 드러난다. 함께 걷는 길이 짧게 느껴지고, 헤어지는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질 때, 사람은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결속을 체험한다. 그 결속은 계약도 아니고 약속도 아니다. 다만 마음이 스스로 선택한 방향일 뿐이다.
하여, 진정한 사랑은 애써 붙잡으려 하지 않는다. 붙잡지 않아도 머물고, 강요하지 않아도 이어진다. 만남의 기쁨을 소중히 여기고, 헤어짐의 슬픔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때, 사랑은 더욱 깊어진다. 슬픔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만이 기쁨의 의미를 온전히 알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감정의 크기가 아니라, 감정의 진실성이다. 만났을 때 기쁘고, 헤어졌을 때 슬픈 그 단순한 사실 안에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삶 속으로 조용히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는 고요한 선언이 담겨 있다. 그 선언은 소리 없이 이루어지지만, 한 번 이루어지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은 그렇게, 말보다 먼저 마음에 남는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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