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 문득 떠올랐다. ㅡ청람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 문득 떠올랐다. ㅡ청람 2026.04.29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 문득 떠올랐다.
ㅡ청람

ㅡ청람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에리히 프롬

어젯밤 늦은 시각, 한 통의 메일을 확인했다.

계간 잡지사에서였다. 현대인의 왜곡된 사랑을 주제로, 짧은 글을 청해온 것이었다.

한두 쪽 남짓한 분량이라 했으나, 그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

밤을 넘기며 오래 생각에 잠겼다. 사랑에 대해 충분히 깊이 사유해 보지 못한 사람이, 감히 사랑을 말할 수 있는가 하는 망설임이 먼저 앞섰다.

그 망설임 끝에서, 고교 시절 읽었던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 문득 떠올랐다.

그 오래된 사유의 결 위에, 조심스레 몇 줄을 얹어 보았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배워야 할 기술이다

청람 김왕식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능력이라는 말은 낯설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에리히 프롬의 저서 사랑의 기술은 바로 그 낯섦에서 출발한다. 그는 사랑을 “저절로 찾아오는 감정”이 아니라 “배우고 익혀야 할 기술”이라고 보았다. 이 관점 하나만으로도 사랑에 대한 통념은 근본에서부터 흔들린다.

프롬이 말하는 사랑의 핵심은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관심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가 잘 자라고 있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지속적으로 살피는 태도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향한 따뜻한 주의다.

둘째, 책임이다. 이는 의무감이 아니라 자발적 응답이다. 상대의 필요에 마음이 움직여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상태다.

셋째, 존중이다. 사랑은 상대를 내 뜻대로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그 사람으로 존재하도록 돕는 일이다.

넷째, 이해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 상처와 욕망, 두려움까지 깊이 알려고 하는 노력이다.

이 네 가지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관심이 없는 책임은 부담이 되고, 이해 없는 존중은 형식이 되며, 존중 없는 사랑은 지배로 변한다. 결국 사랑은 하나의 통합된 태도이며, 삶 전체의 방식이다.

하여, 프롬은 사랑을 잘하려면 먼저 인간으로서 성숙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독을 견딜 수 있는 힘,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태도, 타인을 도구가 아닌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사랑은 어떤가. 많은 경우 사랑은 기술이 아니라 소비가 되었다. 사람을 만나는 일조차 선택과 비교의 연속이 되었고, 관계는 유지가 아니라 교체의 대상이 되었다. 누군가를 깊이 이해하기보다, 더 나은 조건을 가진 다른 누군가를 찾는 데 익숙해졌다. 사랑은 점점 ‘경험’이 되고, 사람은 ‘대상’이 된다.

또한 감정 중심의 오해도 크다. 강렬한 끌림이나 설렘을 사랑의 전부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감정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감정이 식는 순간 사랑도 끝났다고 생각한다면, 그 관계는 처음부터 사랑이 아니라 순간의 흥분에 가까웠을 가능성이 크다.

프롬이 말한 사랑은 외려 그 이후에 시작된다. 감정이 잦아든 자리에서, 여전히 상대를 돌보고 이해하려는 의지가 남아 있을 때 비로소 사랑은 깊어진다.

또 다른 왜곡은 소유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를 통제하려 하고, 관계를 통해 자신의 불안을 채우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의존이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를 붙잡아 두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두면서도 함께 머무는 상태다. 혼자서도 온전할 수 있는 사람이 둘이 되었을 때, 그 관계는 비로소 건강해진다.

현대인은 바쁘다. 관계를 깊이 들여다볼 시간도, 마음도 부족하다. 그래서 사랑마저 효율과 속도의 기준으로 재단한다. 그러나 사랑은 빠르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쌓이는 것이다. 기술이란 반복과 훈련 속에서 완성되듯, 사랑도 시간과 성실함 속에서 자란다.

사랑은 선택이다. 매 순간 상대를 향해 마음을 기울일 것인가, 아니면 편의와 익숙함 속으로 물러날 것인가의 선택이다. 사랑은 자연스럽게 시작될 수 있지만, 유지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배우고, 연습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프롬의 말은 단순하다. 사랑받고 싶다면, 먼저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사랑할 줄 안다는 것은 감정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책임 있게 바라볼 수 있는 성숙한 태도를 갖추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오늘의 사랑이 가볍게 느껴진다면, 감정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술이 부족한 것일지도 모른다. 다시 배워야 한다. 사랑을, 처음부터.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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