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배진성 시인의 고팡새 ㅡ 청람 김왕식

배진성 시인의 고팡새 2026.04.30
배진성 시인의 고팡새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고팡새

시인 배진성

고팡새는 오늘도 고팡에서 노래한다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서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 날아간다 꽃이 시들어도 남는 그 무엇을 찾아서

나는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찾는다 나의 참된 모습 그림자 속에 갇힌 나를 깨우며 빛을 향해 나아가는 작은 날갯짓

소크라테스의 질문이 바람이 되어 고팡새의 가슴속을 지나간다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 물음은 사랑이 되어 울린다

플라톤의 하늘은 넓고도 깊어 보이는 것 너머의 세계를 부른다 이데아의 빛은 사라지지 않고 고팡새의 노래 속에 살아난다

어둠 속 동굴을 벗어나 태양을 향해 눈을 뜨면 진실은 멀리 있지 않고 사랑 속에 머물러 있다

고팡에는 가장 소중한 것들 말로 할 수 없는 마음들이 있다 고팡새는 그것을 알고 조용히 사랑을 부른다

플라토닉 러브 그 이름 없는 빛 닿을 수 없어 더 깊어지는 마음 소유하지 않아 더 자유로운 사랑 고팡새는 오늘도 그것을 노래한다

삼각형은 완벽할 수 없지만 그 본질은 사라지지 않듯이 우리의 사랑도 흔들리지만 그 의미는 영원히 남는다

질문은 노래가 되고 노래는 다시 사랑이 된다 지혜를 사랑하는 이 길 위에서 고팡새는 멈추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며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품고 오늘도 고팡의 작은 공간에서 우주의 넓이를 노래한다

고팡새는 안다 사랑이란 무엇인지 그것은 가지지 않아도 되는 것 그것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그것은 존재 자체를 비추는 빛

플라톤의 길을 따라가며 소크라테스의 물음을 품고 나는 오늘도 고팡에 앉아 사랑이라는 철학을 배운다

고팡새는 날아오르지 않아도 이미 하늘 속에 있고 작은 울음 하나로도 세상을 넓히고 있다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이여 그것이 바로 우리를 이끄는 길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해 고팡새와 함께 노래하자

오늘도 고팡에서 조용히 울리는 그 노래 사랑은 철학이 되고 철학은 다시 사랑이 된다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한 울음 ㅡ존재를 깨우는 사랑의 철학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언어가 새의 형상을 빌려 스스로 날아오르는 순간이 있다. 그 비상은 공중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한 점, 스스로를 묻는 자리에서 시작된다. 배진성 시인의 「고팡새」는 바로 그 보이지 않는 출발점에서 태어난 시다. 눈앞의 세계를 묘사하는 대신, 존재의 근원을 더듬어 올라가려는 사유의 움직임이 시 전편을 관통한다.

이 작품의 중심에는 ‘질문’이 있다. 단순한 의문이 아니라, 삶을 떠받치는 근원적 물음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출발점과 맞닿아 있으며, 시인은 이를 단순한 사상 인용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그 질문을 ‘고팡새’라는 상징적 존재의 내면으로 옮겨와 살아 움직이게 한다. 고팡새는 철학을 외부에서 배우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의 울음 속에서 철학을 발현하는 존재다.

이어지는 사유는 플라톤의 세계로 확장된다. 이데아, 동굴의 비유, 플라토닉 러브라는 개념들이 시 속에서 자연스럽게 융합된다. 그러나 이 시의 미덕은 개념의 나열에 있지 않다. 그것을 삶의 감각으로 번역해 내는 데 있다. “보이는 것 너머의 세계”는 관념으로 머물지 않고, 고팡이라는 구체적 공간 속에서 체온을 얻는다. 철학이 추상이 아니라, 삶 속에서 호흡하는 실재로 내려온다.

특히 ‘고팡’이라는 공간 설정은 이 시를 한 차원 끌어올리는 장치다. 고팡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다.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마음들이 머무는 자리이며, 존재의 본질이 조용히 드러나는 공간이다. 이는 시인이 제주라는 자연적·정신적 배경 속에서 사유를 깊게 가다듬고 있음을 반영한다. 현실의 한적한 공간이 곧 철학적 우주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사랑에 대한 인식 또한 주목할 만하다. 이 시에서 사랑은 감정의 과잉이 아니라, 존재를 비추는 방식으로 제시된다. “가지지 않아도 되는 것”,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이라는 정의는 플라토닉 러브의 본질을 간명하게 드러내며, 동시에 현대인의 소유 중심적 사랑을 전복한다.

사랑은 관계를 묶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드러내는 빛으로 기능한다. 형식적으로 보자면, 반복과 순환의 구조가 돋보인다. 질문은 노래가 되고, 노래는 다시 사랑으로 환원된다. 이 순환 구조는 시의 리듬을 형성하는 동시에, 삶과 철학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강화한다. 언어는 점층적으로 확장되면서도, 끝내 하나의 중심—‘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수렴된다.

배진성 시인의 시적 역량은 이 지점에서 분명해진다. 동아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이력은 단순한 출발점일 뿐, 그의 시는 이미 그 이상의 사유 깊이를 보여준다. 제주 이어도라는 상징적 공간에서 ‘지킴이’로 살아가며 글을 쓰는 그의 삶은, 이 시의 세계관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삶과 시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고팡새」는 철학을 설명하는 시가 아니다. 철학이 어떻게 살아 움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다. 질문을 품은 존재가 어떻게 사랑에 이르고, 그 사랑이 다시 세계를 확장하는지—그 과정을 한 마리 새의 울음으로 압축해 낸다. 진실은 먼 곳에 숨겨진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 안에 와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향해 묻지 않을 때만 멀어지는 것이다.

묻는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길이 열리고, 바라보는 시선이 머무를 때 비로소 세계가 깊어진다. 사랑이 그 모든 것을 품는 순간, 진실은 더 이상 찾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미 살아가고 있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고팡새의 울음은 그래서 멀리 퍼지지 않는다. 외려 가장 가까운 곳, 가장 안온한 자리에서 오래 머물며 스스로를 밝힌다. 남는 것은 하나다. 알아내는 일이 아니라, 끝내 그렇게 살아내는 일이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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