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돌 ㅡ청람 김왕식
섬돌 2026.05.06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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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돌
김왕식
봉당 끝, 비에 닳고 햇살에 익어 사람의 발자국을 오래 품어온 낮은 돌 하나
그 위에 어머니는 물 한 바가지의 마음으로 하루를 씻듯 닦아낸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짐처럼 아버지의 흰 고무신을 나란히 올려놓는다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데 신발은 아직 길을 기억하고 있다
낮이 오면 흰 구름 한 조각이 내려와 말없이 한 짝 위에 앉아 하늘의 안부를 대신 전하고
밤이 오면 그믐달의 여린 빛이 고무신 속에 스며들어 비워진 발의 자리를 조용히 어루만진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섬돌을 한 번 더 닦고 고무신의 먼지를 털며 눈물 한 방울을 가슴 깊이 삼킨다
울음은 밖으로 흐르지 못하고 돌 속으로 스며들어 시간보다 먼저 늙어 간다
사랑은 함께 웃던 날보다 홀로 남아 견디는 날에 더 또렷해진다는 것을
섬돌은 알고 있다
오늘도 아버지의 신발은 발 없는 길을 향해 놓여 있고
어머니의 하루는 돌보다 낮은 자리에서 안온히 저물어 간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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